검색되지 않을 자유 | 임태훈 | 나는 검색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절망의 반대편에는 희망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정밀한 이해가 있을 뿐입니다. 이 책 역시 질문하는 책입니다. 한국의 정보자본주의, 디지털 신자유주의의 실체와 폐해, 허상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검색되지 않을 자유』, 10쪽)
당신은 예측 가능한 사람입니까?
누군가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예측 가능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예측 불가능한 사람입니까?’
수십 년 전, 아니 불과 몇 년 전만이라도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면 충분히 웃음거리가 되고도 남았을 법한 황당한 질문이다. 열길 우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고, 또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빅데이터(big data)’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도 앞선 질문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비웃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경각심이 전혀 없거나 핵폭발의 한복판에 있어도 살아날 구멍이 있다고 믿는 매우 낙천적인 사람이거나, 혹은 디지털 혁명 시대를 경험하는 산증인으로서의 역사적 사명을 포기하고 스스로 무지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정보자본주의에 길든 새로운 노예, 호모 익스펙트롤(Expectrol)
사람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불투명성, 불확실성, 예측 불가능성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근원적인 토대이자 원동력이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사람의 존엄과 실존, 자유 그 자체다. 사람은 지금 이 시간 이후 모든 것들이 불확실하기에 두려움을 품으며 적절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그 두려움을 삶에서 최대한 분리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 노력하면서 삶에 집착한다. 그러한 집착은 알게 모르게 한데 모여 우리 사회를 이루는 뼈대를 형성하고, 경제가 원활하게 기능하도록 윤활제 같은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에 사람이 물질이나 정념에 쏟아붓는 집착과는 달리 (분수만 지킨다면) 아름답고 활기차 보인다. 그러하기에 집착이라기보다는 애착에 가깝다.
그런데 만약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삶에서 살아간다면, 불확실성이 제거된 세계에서 살아간다면, 사람이 무엇을 하든 모든 것이 예측된 그대로라면 과연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지금과 같은 삶에 대한 집착과 애착이 사회 •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적절한 한도 이내로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의미가 있다면 예측 가능한 삶을 실현하게 해 준 빅데이터를 지배하는 기업과 정부에겐 이 모든 것이 무한한 권력과 안정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더불어 삶에 대한 집착과 애착은 투명한 미래에 잠식당하고, 로봇처럼 프로그래밍이 된 일상이 사람의 삶을 교과서처럼 지배하려 들 것이다. 즉, 그들은 빅데이터를 독점하며 권력을 행사하는 빅브라더(big brother)이고,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임태훈이 『검색되지 않을 자유: 빅데이터에 포박된 인간과 사회를 넘어서』에서 제시한 정보자본주의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최적화된 새로운 종 호모 익스펙트롤(Expectrol)이다. 이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며 로봇처럼 탁월이 통제될 수 있는 존재로서 정보자본주의에 길든 새로운 노예다 .
<검색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검색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
이미 현실 속으로 파고든 ‘빅데이터’ 활용
이 모든 것은 SF에서나 등장할법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매우 스피드한 시대답게 초 단위까지 세밀하게 기록된 신용카드 명세서만으로도 그 사람의 다음 소비에 대한 예측과 잠재적 욕망까지 속속들이 드러난다. 여기에 이메일 계정을 뚫고 SNS를 흩어보면 한 사람의 사생활은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검색되지 않을 자유』에 실린 한 사례는 이 모든 것이 현실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는 것을 증명한다. 미국의 할인매장 ‘타깃(Target)’에서는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 기술로 한 고등학생 소녀의 소비 패턴에서 소녀의 가족들조차 모르는 임신 사실을 알아낸 다음 소녀에게 아기 옷이랑 아기 침대 할인쿠폰을 보냈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한국 할인매장에서도 고객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자주 구매하는 물품들 위주로 할인쿠폰을 보낸다. 당신의 사유가 자본이 친절히 매개해 주고 그럴싸하게 포장한 꿈속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다면, 이런 이야기들이 더는 SF에서나 등장할법한 이야기라고 비웃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땐 이미 당신은 충실한 호모 익스펙트롤이 되었으리라 .
사유화기를 멈춘 당신은 이미 호모 익스펙트롤로 진화 중
빅브라더의 현신을 경고하는 것이 『검색되지 않을 자유: 빅데이터에 포박된 인간과 사회를 넘어서』의 전부는 아니다. 『검색되지 않을 자유』는 부의 불평등한 재분배, 인간적 존엄을 말살하는 노동 환경, 수탈적 금융자본이라는 현실이 디지털 신자유주의의 실체라고 질타한다. 또한, 토건족이 지배하는 아파트 공화국의 획일적 풍경과 일상은 삶과 사유의 다양성을 말살하는 최악의 환경을 조성해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 이전에 빅데이터 분석에 알맞은 인간형의 일반화라는 필수조건을 이 나라에서 이미 완성한 상태라고 역설한다.
왜 우리는 노동 소외와 인간성 왜곡을 심화시키는 이 시대의 야만적인 폭력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건축이 휘두른 폭력에 황폐해진 도시의 폐해를 몸소 겪으면서도 왜 우리는 살아보지 못한 삶을 이리도 쉽게 포기하는 것일까. 불처럼 타오르는 정념에 채굴기가 온몸을 훑고 지나가듯 분노에 치를 떨고 시대의 비참함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지만, 사유하기를 멈춘 당신은 이런 글은 찌질이들의 푸념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가계 부채 1,200조 시대에, 상위 10%가 전체 부의 70% 정도를 차지한 세습자본주의 시대에, 돈과 노동력뿐만 아니라 정보와 시간, 미래까지 착취당할 시대에 찌질해지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요즘은 눈감으면 코를 베어 가는 세상이 아니라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 가는, 알고도 당하는 시대다.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당신의 욕망, 꿈, 희망, 야망, 정신과 육체 등 당신의 모든 것이 비트화되어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 시대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면, 시대에 질문하지 않는다면, 시대를 사유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훌륭하게도 이미 호모 익스펙트롤로 진화해가는 중이다 . 디지털화될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진중히 사유하고, 그것들을 우리 삶 안에서 소중히 지켜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검색되지 않을 자유』의 가르침이 당신의 시대를 향한 숭고한 사유를 다시 일으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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