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선생 | 다야마 가타이 | 평범함의 위대함을 깨달은 순간 그는 이미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Original Title: 田舎教師 by 田山 花袋
자신이 처한 환경 때문에 이상과 사랑까지도 좌절되면서 통한의 세월을 보내던 세이조는 어느 날 문득 체념으로부터 오는 평범한 삶이 주는 평온함을 깨닫는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 멋지게 살고 싶다. 그러나 평범하게 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집안의 행복 一 허약한 어머니의 행복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명예를 좇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은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p194)
다야마 가타이(田山 花袋)의 소설 『시골선생(田舎教師)』 에 등장하는 시골 소학교 선생 세이조는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단 한 문학청년의 이야기로써 저자는 청년이 남긴 일기와 원고를 읽고 그에게 공감하여 이 작품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그때의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현대의 젊은이들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하는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서 세이조처럼 출세나 성공, 또는 세상을 바꿔보려는 포부나 이상 등 한 번쯤은 원대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 실제 삶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루하루가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냉정한 현실을 절감하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삶에 물들고 철이 들면서 ‘이상’과 ‘현실’의 현격한 차이를 깨닫는 순간 이상은 공상 속의 한낱 꿈으로 희석되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아예 기억 속에서 잊힌다. 모두가 학창 시절에 꿈꾸던 대로 출세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마음먹은 대로 성공하는 것도 아닌 엄연한 현실 앞에서 그동안 품어왔던 꿈과 이상을 체념하고 적절한 선에서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자신의 삶을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미덕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그럴듯한 옷을 입고 그럴듯한 차를 몰며 그럴듯한 집에서 살고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는 잘 생기고 예쁜 선남선녀들이 나오는 드라마에 현혹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못다 한 꿈, 못 이룬 이상과 사랑, 그리고 성공이 그 한 폭의 화면 속에서는 고스란히 보란 듯 현실처럼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어떠한 식으로도 메우지 못하면 그것만으로도 세이조처럼 청춘의 번뇌는 시작된다. 자신이 오랜 시간 꿈꿔왔던 모든 것을 기약도 없이 먼 훗날로 미룬 채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또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에 절박하게 매달려야 한다는 것은 한창 꿈과 이상을 향해 열정을 불태울 청년에게는 어쩌면 굴욕일지도 모르며 그래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뇌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청년 세이조를 통해서도 잘 묘사되고 있다.
세이조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절감하고 허탈감에 빠진다. 넉넉한 집안 형편 때문에 도시로 진학한 친구들을 질투하고 시샘하기도 한다. 평생 시골에서 근무하는 선생으로 썩을 것 같은 두려움에 어떻게든 시골을 벗어나고 싶은 세이조는 붓을 들어보기도 하고 음악에도 손을 대보지만, 체계적으로 문학과 음악을 배우지 못한 그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시골 학교에 있는 풍금으로 연습한 실력으로 전문음악학교에 진학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명확하게 보여주며 더불어 세이조로서도 어쩔 수 없는 지식의 한계도 보여준다.
그러나 세이조는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면서 차츰 시골선생으로서의 보람과 시골 생활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화창하고 따뜻한 날에는 들판과 둑으로 나가 한적하고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학생들이 ‘선생님, 선생님’ 부르며 강아지 새끼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세이조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신기해하며 환호성을 지르는 것도 좋았다. 수업 중 음악 시간이 제일 재미있고 즐거웠으며, 마을 주민들의 관심도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따분하고 평온할 것만 같았던 평범하게만 보이는 시골에서도 도시처럼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마을 잔치가 있는 날이면 도시 못지않게 사람들이 들끓고 시끌벅적했다.
이런 심경의 변화는 동창생 오규를 대하는 세이조의 마음에서도 드러난다. 오규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우체국에 취직해서 불평불만 없이 태평하게 살아가는, 학창시절에는 세이조와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던 친구다. 세이조는 부임한 학교와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점 때문에 오규와 가깝게 지내면서도 즐거움도 취미도 없이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오규를 세이조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내심 못마땅하게 여겼다. 단지 정이 많고 친절한 친구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평범함의 위대함’을 깨달은 세이조에게 오규야말로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이다.
어째서 이 친구에게는 야심이 없는 걸까. 어떻게 그런 보통의 평범한 세상 속에 안주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나와는 종류가 다른 인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일기에 “오규는 내가 아끼는 친구다. 이해타산이나 도덕성을 따져서 친구 사이를 깨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썼다. 또한 “예전에 이 친구를 평범하다고 본 것은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아직 미숙했던 탓이다. 오규에 비하면 나는 세상물정도 많이 모르고 인정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오바타나 이쿠지와 이 친구를 비교해보니, 지금 처음으로 평범함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라고 썼다. (p286~287)
어쩌면 명예와 출세를 쫓는 삶이야말로 평범한 삶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명예와 출세는 대부분의 사람이 바라는 바이니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다. 세이조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진학도 포기하고 건강 문제로 군대에도 지원하지 못해 의기소침하고 아쉬워하지만, 그는 끝까지 어머니에 대한 사랑만은 잃지 않는다. 그동안 청운의 꿈을 향해 불태웠던 그 뜨거운 열정으로 자신을 한 줌의 재로 남을 때까지 효심으로 태워버린다. 그가 이처럼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시골에 남아서 끝까지 효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애처로우면서도 갸륵한 모습이야말로 보통 사람으로서는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세이조가 명예와 출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 그래서 ‘평범함의 위대함’ 깨달았던 순간 이미 그는 평범한 사람을 넘어선 것이다.
사람의 성격이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어느 사람의 삶도 서로 같은 것은 없으며 나름의 사연과 우여곡절을 가진다. 단지 그 곡절이 가지는 굴곡의 높낮이가 조금은 평탄해 보인다고 해서 ‘평범’이라는 잣대를 인생에까지 들이대는 것은 개개인에게는 너무 억울한 일이다. 얼핏 보면 평탄해 보이는 굴곡일지라도 막상 가까이 다가가 보면 멀리서는 볼 수 없었던 생을 마감하는 노인네의 이맛살에 깊이 새겨진 주름 같은 무수한 상처가 있을 수도 있으며, 그 굴곡을 일으킨 주인 또한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룬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느끼는 삶에 대한 가치와 의미이지 않을까? 그래서 ‘평범함의 위대함’이란 다름 아닌 내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이 책에는 청운의 이상을 품은 청년이 만만치 않은 세상 물정에 부딪히고 어려운 환경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의 꿈이 물거품처럼 좌절되면서 느끼는 허탈감, 그리고 나름의 조그만 사회를 형성한 시골의 삶과 선생 일에 조금씩 적응해가면서 느끼는 삶의 의미와 소소한 행복을 통해 ‘명예와 출세’에 대한 집착을 체념함으로써 얻게 된 평범한 삶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을 깨닫기까지의 청춘의 고뇌로 가득한 짧지 않은 여로가 담겨 있다. 다야마 가타이는 이를 마치 지나가던 여행객이 잠시 마을에서 머무르고 남긴 수기처럼 인물과 사건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관조하는 담담한 태도로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은 이야기의 흐름 주변을 풍성하게 메우는 목가적인 시골 풍경이다. 계절마다, 때로는 달마다 시시각각 변화는 농촌의 들판과 강둑, 그리고 산의 풍경과 농촌의 일상을 수려하지는 않지만 치우침 없이 부족하지 않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세이조가 음악에 실패하고 나서 관심을 두게 된 꽃과 나무 등 다양한 식물과 꽃이 피고 지는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표현한 부분이 눈에 띄게 많은 것도 특징이다.
작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목가적인 전원생활과 그 배경을 이루는 들판과 강둑, 강과 산에 대한 풍부한 묘사는 잠시 눈의 피로를 풀고자 두 눈을 감을라치면 그 빛과 어둠의 혼돈 속으로 아물아물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곳엔 어렸을 때 방학이면 연례행사처럼 빠짐없이 놀러 가곤 했던 외할머니가 계셨던 시골처럼, 언제 어느 땐가 꼭 한 번쯤 가본 듯 느껴지게 하는 정겹고 따뜻함이 물씬 스며들어 있다. 자연주의 문학의 묘미를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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