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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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 상징의 미화가 오용되었을 때

Twisted cherry tree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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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 오오누키 에미코 | 상징의 미화가 역사적 주체 세력에 의해 오용되었을 때

Original Title: ねじ曲げられた桜―美意識と軍国主義 by 大貫惠美子
이들 대원들은 모두 행동에서는 ‘천황 즉 국가를 위한 희생’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고 (思考)에서까지 그것을 그대로 재생산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다고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앞에서 거론한 일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의 행동을 촉구한 최대의 요인은 이상주의와 애국심 두 가지였다. (p402)

‘집단 광기’ 뒤에 숨은 우리가 모르는 비밀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는 전대미문의 특공작전으로 수천 명이나 되는 젊은이가 죽어나가는 비참한 상황이 되었다. 그 가운데 천 명 정도가 학도병 출신으로, 당시의 지적 엘리트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들 일본의 최고 지식인들이, 다시 말해 일본의 군사적 • 제국주의적 행동을 가장 지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그것도 일본이 질 것을 뻔히 알았을 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 그 이데올로기를 포용하지 않으면서도 행동으로는 그것을 재생산하고 죽음을 향해 날아갔을까. (p485)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보여준 ‘가미카제’ 특공대 특유의 충격적인 행동에 대해 일본 침략전쟁의 피해자 국민으로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은 아마도 매우 드물 것이다. 왜냐하면, 대다수 사람은 당시 일본국민은 군사정부의 국가내셔널리즘 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세뇌되었기 때문에 천황을 위해 기꺼이 죽어갔다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일본국민이 보여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우리는 보통 ‘집단광기’로 분석한다. 그러나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ねじ曲げられた桜―美意識と軍国主義)』에서 문화인류학자 오오누키 에미코(大貫惠美子)가 분석한 특공대 5명의 수기를 보면 군사정부에 의해 확산된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결코 국민 개개인의 마음과 사고까지 절대적으로 지배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광기’라고 싸잡아 말하는 것은 너무나 무성의한 평가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자와 기독교인도 다수 포함된 특공대원들은 왜 저항하지 않고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여 일말의 돌아올 희망도 없는 임무에 기꺼이 젊은 청춘을 바쳤던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 오오누키 에미코는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던진 것은 자신들의 죽음이 새로운 일본을 구축(構築)할 가능성을 가져올 것이라는 이상주의”와 서양제국, 마르크스주의자에게는 자본주의와 물질주의로부터 일본을 지키려는 ‘애국심’으로 충만한 ‘비정치적 개인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러한 학도병들의 이상주의적인 성향은 당시 학생들에게 널리 알려진 에머슨의 ‘너의 마차를 별에 걸어라’라는 구절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젊은이들의 순수한 애국심을 교묘히 이용하여 국가내셔널리즘을 그들의 사고에 침투시킬 수 있었고 그러한 역사적 과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든 매개체가 바로 ‘사쿠라’였던 것이다.

<Japanese Kamikaze pilots / 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사쿠라, 문화적 내셔널리즘에서 정치적 내셔널리즘으로

메이지 이전부터 사쿠라꽃은 일본인의 중요한 상징으로서 삶과 죽음 그리고 환생, 사랑과 생명력, 그리고 일본인의 집단적 자기를 가리켰고 이러한 상징은 문학과 예술을 통해서도 강조됨으로써 일본인의 사고 속에 ‘아름다운 사쿠라’로 각인되었다. 이렇게 문화적 내셔널리즘으로 작용한 사쿠라는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조국과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은 아름답게 핀 후에 아름답게 지는 사쿠라꽃과 같고 훗날 야스쿠니 신사에 다시 사쿠라꽃으로 환생한다는 정치적 내셔널리즘으로까지 확장되었다. 특공대를 포함한 병사들의 희생을 미화하고자 사쿠라를 전면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특공대원들의 수기에는 천황을 위해 죽는다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자기 죽음을 ‘지는 사쿠라’에 비유하는 말은 종종 나온다. 여기에서 바로 메코네상스, 즉 상징적 커뮤니케이션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인 ‘오인’이야말로 군국주의자들이 의식적으로 조작한 국가내셔널리즘의 핵심이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국가에 대해 바치는 헌신이 순수한 만큼 미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국가가 이 충성의 미적 가치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오인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사쿠라의 미적 가치를 일본인 모두가 공유했기 때문이다. 즉, 사쿠라의 아름다움에 미혹되어 그 밑에 숨겨진 정부의 흑막을 제대로 간파할 수 없었다.

특공대원들이 남긴 수기

책에 소개된 특공대원이 읽은 확인된 책의 권수만 해도 무려 1,355권이나 된다. 그들이 전사한 나이가 주로 20대 초 그 전후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독서량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들은 철학, 문학, 음악, 예술 등 전공과는 상관없이 다방면의 책들을 읽으며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추구했고 ‘개인’ 혹은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이라는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러나 ‘개인’은 ‘삶’이고 ‘사회적 책임’은 ‘죽음’이라는 역사의 흐름을 그들의 개인적 역량으로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웠다. 설령 ‘삶’을 선택하면 살아남을 수는 있겠지만, 죽어가는 동료나 친구를 대하기가 너무나 견디기 어려웠고 ‘죽음’을 회피했다는 비난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불명예로 다가와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혔을 것이다. 그렇다고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 역시 괴로웠다. 한창 삶에 대한 다양한 욕구가 왕성한 젊은 나이에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그들에겐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이 남아 있었다. 그러한 그들의 복잡한 감정, 전쟁과 정부에 대한 의문과 비판, 삶에 대한 집착과 번뇌 등은 그들의 수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공대원으로서 23세의 나이에 전사한 육군소위 아나자와 토시오는 부모가 반대한 연인에 대해 변함없는 사랑이 담긴, “치에코, 행복해야 해. 진정으로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인간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어. 나의 장래는 나에게 가장 고귀한 감정인 당신의 행복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득할 거야.”라는 글을 일기에 남겼다. 또한, 특공대원으로서 24세의 나이에 전사한 해군소위 하야시 이치조오는 마지막 출격을 얼마 안 남기고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 “저는 아직 엄마한테 어리광을 부리고 싶습니다.”, “역시 엄마 품에 안겨 잠들고 싶습니다.”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고 한다.

연인과 어머니를 사랑했던 남자가 사쿠라처럼 지는 것을 진정으로 기뻐했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다고 저자가 술회하듯 나 역시 믿기지 않는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조장된 국가이데올로기라는 무언의 압력에 굴복하여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선택하고 그 죽음이 속칭 ‘개죽음’처럼 무가치해지는 것이 두려워 평소에 품어 왔던 이상주의적인 가치를 자신들의 죽음에 부여하여 나름대로 정당화하려고 노력했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 죽음이 무의미해지는 것만큼 참기 어려운 것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수기를 통해 확실히 드러난 사실은 그들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들로선 절대 찾을 수 없는 해답을 두고 죽음을 하루 앞둔 출격 전날까지 번민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해군기지에서 학도병을 위해 식사, 세탁 등의 잡일을 맡았던 카스가 타케오라는 사람이 남긴 편지를 보면 그들이 죽음을 하루 앞둔 날의 처참하고 착잡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본문에 인용된 편지 내용에서 그 일부분만 여기에 적어 본다.

내일은 마침내 출격, 일본제국을 위해, 천황폐하를 위해서라고, 젊고 고귀한 청춘의 목숨을 바칠 각오는 다짐하고 있지만, 흐트러진 테이블에 엎드린 사람, 유서를 쓰는 사람, 팔짱을 끼고 명상하는 사람, 엉망이 된 송별회장을 떠나는 사람, 몇 시간이나 묵묵히 뭔가를 쓰는 사람, 미친 듯이 춤을 추면서 꽃병을 부수는 사람. 이 처참한 출격 전야의 어찌할 바를 모르는 학도병사의 심경은 너무나도 알려져 있지 않다. (p305)

출격 당일 사쿠라꽃을 머리에 꽂은 채 환하게 미소 짓고 손을 흔들며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당당하게 이륙하던 영웅적인 모습으로 널리 알려진 특공대원들의 인상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그 마지막 미소야말로 그들의 참혹한 심정을 역설적으로 잘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둔 그들에겐 그나마 당당한 영웅적인 모습을 세상에 남길 수 있다는 것이 마지막 위안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이 두려워 질질 짜는 비굴한 모습을 남기고 싶은 군인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면서...

이상의 세계에 살면서 진실이나 인생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학생들이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개인적 삶’을 체념한 채 ‘사회적 책임’의 완수라고 착각한 특공대원으로 죽어가는 과정은 상징의 미화가 역사적 주체 세력에 의해 오용되었을 때 불러오는 놀라운 파괴력을 절감시킨다. 오오누키 에미코 또한 그러한 점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으며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에 나 역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치의 상징이었던 갈고리 십자가가 독일의 패전 후 전 세계의 문화공간에서 신속하게 말살되었던 것에 비해 사쿠라꽃은 여전히 일본의 문화적 내셔널리즘으로 온전하게 작동하고 있다. 또한, 한국도 언제부터인가 벚꽃 놀이가 범국민적 꽃놀이로서 정착되었다. 현재 일본인과 한국인이 벚꽃놀이를 즐기는 것은 단지 그 꽃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싶으며,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난 오래전부터 벚꽃을 보면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위화감의 정체가 조금은 선명해지는 것도 같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무서운 말이 있지만, 우리 주변에 흔해진 벚꽃을 보며 사쿠라로 상징되었던 잔혹한 과거를 떠올리는 번거로운 수고가 회의주의자의 쓸데없는 기우로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이 리뷰는 2015년 12월 3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비록 보잘 것 없지만 광고 수익(Ad revenue)은 블로거의 콘텐츠 창작 의욕을 북돋우는 강장제이자 때론 하루하루를 이어주는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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