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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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투 더 쿨 | 자연은 구배 차이를 싫어해

인투 더 쿨(Into The Cool) | 자연은 구배 차이를 싫어해!

책 리뷰 | 인투 더 쿨(Into The Cool) | 자연은 구배 차이를 싫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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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책 리뷰 | 인투 더 쿨(Into The Cool) | 자연은 구배 차이를 싫어해!
<왼쪽은 마지막 저장 로그, 오른쪽은 롤백되었다는 로그>

참으로 김빠지는 일이 생겼다. 울화통이 터진다. 뇌를 쥐어짜 내며 힘들게 작성해 놓은 리뷰가 홀라당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동안 믿고 의지하던 바이두 넷디스크 동기화 프로그램 때문에 말이다.

사실 바이두 동기화 프로그램(baiduyun.exe)은 2년 전 버전 3.9.12를 끝으로 바이두 홈페이지에서 사라진, 한마디로 공식 지원이 끊긴 프로그램이다. 고로 사용 중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만큼 진즉에 사용하지 말았어야 할 것인데, 이 녀석 덕분에 잃어버린 소중한 파일을 찾게 되어 길거리에 떨어진 돈을 주웠을 때 같은 기쁨으로 충만했던 경험이 왕왕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 일 없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에 계속 사용해 왔는데, 오늘에서야 일이 터지고 말았다.

위 스크린샷 왼쪽에서 알 수 있듯 「인투 더 쿨」 리뷰 작성을 그럭저럭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저장했을 때의 문서 크기는 76KB였는데, 이것이 어느 순간에 26KB짜리 파일로 회춘했다. 26KB짜리 문서를 열어보니 가장 처음에 저장한 문서인데, 위 스크린샷의 동기화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 오늘의 문제는 한컴 오피스 프로그램이 아니라 76KB였던 문서를 알 수 없는 이유로 26KB짜리 초기 문서로 롤백시킨 바이두 서버가 문제다(온라인 게임 같은 경우라면 ‘백섭’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바이두 휴지통을 뒤져보고, PE로 부팅해서 이런저런 복구 프로그램들을 총동원해도 SSD 특성상 76M도 아닌 76KB짜리 문서를 되찾을 방도는 없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는지 영영 알 수는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 수년 동안 바이두 동기화 프로그램을 사용해 오면서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인투 더 쿨(Into the Cool)』과는 악연이라는 섬뜩한 생각이 든다. 2주 조금 넘는 지루하고도 힘겨웠던 장기전 끝에 완독했다는 사실도 진저리나지만, 고군분투 끝에 완독한 책에 대해 있는 없는 글솜씨 다 동원하여 쓴 글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날려 먹었으니 악연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아니면, 요즘 「주온」이나 「수해촌」 같은 ‘저주’와 관련된 영화를 하도 많이 봐서 그야말로 저주라도 받은 것일까?

해방되었다고 여긴 논문이나 숙제를 다시 하게 되었으니 정신이 온전할 리가 없다. 멘붕이 온다. 다시 쓸려고 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머릿속이 암담하다.

자연은 구배 차이를 싫어해

책 리뷰 | 인투 더 쿨(Into The Cool) | 자연은 구배 차이를 싫어해!
<베나르 세포(Benard cell)(출처: people.duke.edu)>
책 리뷰 | 인투 더 쿨(Into The Cool) | 자연은 구배 차이를 싫어해!
<레일리-베나르(Rayleigh-Bénard) 대류(출처: 책 본문)>

베나르 시스템은 분자들이 오직 기울기(책에선 구용어인 ‘구배(gradient)’로 지칭) 차이에 의해 서로 모이고, 조직화하여 기울기 차이를 소멸시키는 최적의 구조로 나아간다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보여준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광자 에너지에 의한 기울기 차이를 소멸시키고, 이 과정에서 낮은 엔트로피인 산소를 발생시킨다. 산소에 의한 기울기 차이는 (인류를 포함한) 다양한 생명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면서 소멸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똥, 이산화탄소 등의 낮은 엔트로피 역시 또 다른 생물들에 의해 재활용된다. 결국 쓸모없는 열만 남는데, (모든 생명을 포함하는) 생태계는 엔트로피를 우주 공간에 열로 내뿜으면서 스스로 차가워진다.

태양의 무자비한 핵 융합반응으로 달궈지는 지구와 냉랭한 외부 우주 공간 사이의 온도 차이를 평준화하는 경향은 열 기울기 차이를 소멸시키려는 열역학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다(차가운 실외와 따뜻한 실내 사이에 조그만 창문만 열어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실내와 외부 온도가 같아지는 이치와 같다).

하지만, 살아있는 유기 생명체에게 열역학적 평형인 ‘열 죽음’ 말 그대로 죽음과도 같다. 우리 같은 살아 있는 동물이 열역학적 평형에 도달한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하는 죽음을 뜻하고, 지구 같은 행성이 열역학적 평형에 도달하는 것은 백색왜성이나 중성자별 같은 생명이 살 수 없는 불모의 행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는 아직 열역학적 평형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것은 왜일까?

지구가 뜨겁게 달궈지지도 않고 절대 온도로도 식지 않는 것은 생태계가 태양과 우주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비평형 에너지를 소산하면서 열역학적 평형에 도달하는 것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생태계는 거대한 기울기 차이의 감소자다. 우리 같은 유기 생명체들 역시 열역학적 평형에 저항하기 위해서 조직된 열역학적 반항아이자 기울기 차이의 감소자다.

에릭 D. 슈나이더(Eric D. Schneider), 도리언 세이건(Dorion Sagan)의 『인투 더 쿨(Into the Cool)』은 자연이 구배 차이를 혐오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의 확장 버전인 비평형 열역학(non-equilibrium thermodynamics)으로 설명되는 에너지 흐름이 유기 생명체의 성장과 발전, 초기 생명의 기원과 역사, 생태계의 발전은 물론, 어떻게 하면 인류가 지구상에서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넓은 혜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참고로 ‘에너지 흐름’으로 생명을 설명하는 개념은 생명은 기계가 아니라 자신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재구축하면서도 정교한 균형을 유지하는 질서를 유발하는 ‘흐름’으로 파악한 루돌프 쇤하이머(Rudolf Schoenheimer)의 ‘동적평형(『후쿠오카 신이치 | 동적평형』)’ 이론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문제일까?

생명의 기원과 역사, 진화 메커니즘, 그리고 생명의 복잡성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의 기능 등을 비평형 열역학에 의한 에너지 흐름으로 설명한다는 소재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서문에서도 언급했듯 600페이지도 안 되는 책 한 권을 읽는데 2주가 조금 넘었다는 사실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것이 고소장을 검토하는 것처럼 매우 고되고 고됐음을 뜻한다. 단어의 선택 • 배열 자체가 엇꼬여 있어 문장을 해독하는 단계부터 막히기 때문에 내용이 어렵다니 쉽다니 판단하는 것도 난감하다. 한마디로 나처럼 수준 미달의 지능을 가진 사림이 읽으면 한국어인지 영어인지 외계어인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책이다. 저자가 인용한 다른 사람 글도 사정이 마찬가지인 것을 보면, 원문의 문제라기보다는 번역의 문제로 보인다.

사실 책 뒷부분에 「옮긴이의 말」이 있다는 것을 보고 (‘주온’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던 내가) 대뜸 놀랐을 정도다. 왜냐하면, 읽는 중간마다 구글이나 파파고 같은 기계 번역으로 번역된 문서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읽기가 매끄럽지 못했는데, 그 정도가 지금까지 읽은 책 천여 권 중 가장 심한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원문 보기

원문 몇 단락을 어렵게 구해 구글 번역해 본 결과 다행스럽게도 한국어 번역본이 구글 번역보다 나은 수준이었다. 그렇더라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일본 추리소설의 3대 기서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오구리 무시타로(小栗 虫太郎)의 『흑사관 살인사건(黒死館殺人事件)』조차 『인투 더 쿨(Into the Cool)』에 비교하면 양반이라는 생각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흑사관 살인사건’은 그저 문장을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운 정도지만, ‘인투 더 쿨’은 (내가 보기엔) 다소 성의 없는 번역에서 기인하는 카오스 같은 문장 구조로 문장을 읽는 시도 자체를 불허한다.

이 모든 불만 • 불평은 물론 나의 볼품없는 독해력이 외계어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저자(그리고 옮긴이)의 태산처럼 우뚝 솟은 지성에 발끝만큼도 못 미치기 때문일 수 있다.

누군가가 이 책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말릴 이유야 없겠지만 다 읽고 난 후의 소감 한두 마디 정도는 꼭 듣고 싶다. ‘이렇게 쉽고 재밌는 책을 당신만 이해하지 못했어’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면, 정말이지 절필(혹은 절독絕讀?)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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