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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2015

[책 리뷰] ‘자기 같으면서도 남 같은’ 이야기 ~ 피안 지날 때까지(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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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같으면서도 남 같은’ 이야기

Original Title: 彼岸過迄 by 夏目漱石
내가 보기에는 두려워하지 않는 게 시인의 특색이고 두려워하는 게 철학자의 운명이다. (『피안 지날 때까지(彼岸過迄)』, p213)

학을 갓 졸업한 게이타로는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봐도 마땅한 자리를 얻지 못한다. 근대화로 갑자기 늘어난 지식 청년을 계산하지 못한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 탓도 있겠지만, 유달리 모험심이 강하고 한곳에 꾸준히 정착하지 못하는 게이타로의 성격 탓이기도 하다. 낭만적이고 공상력이 풍부한 그는 관습에 얽매이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매력적인 갈등을 찾는다. 요컨대 탐정 같은 일이 해보고 싶어 한다. 탐정은 남의 죄악을 폭로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그것으로 누군가를 함정에 빠뜨리기도 한다. 게이타로는 그런 나쁜 일은 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게이타로는 어떤 일에 진지하게 도전해보기도 전에 미리 그 결과를 자신의 사고 틀 안에서 가늠해보고는 쉽게 포기해 버린다.

대학을 갓 졸업한 게이타로가 취업도 잘 안 되는 상황에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쟁이를 찾아간다. 게이타로의 사주를 받고 그럴듯한 점괘를 풀어준 점쟁이는 마지막으로 자기 같으면서도 남 같고 긴 듯하면서도 짧으며 나올 듯도 하고 들어갈 듯도 한 물건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수수께끼 같은 점쟁이의 말을 곱씹으며 답을 찾으려던 게이타로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하숙비를 밀린 채 다롄으로 도망간 모리모토가 남긴 대나무 지팡이에서 답을 찾는다.

이타로는 현실과 충돌하는 자신의 성정 때문에 괴로워하고, 게이타로의 친구 스나가는 베일에 싸인 출생의 비밀과 사랑 없는 질투에 집착하며 자신을 괴롭힌다. 자신을 고등유민(高等遊民)이라 지칭하는 마쓰모토는 타인의 감정과 물질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는 삶이 진정한 여유라고 자부하면서 짐짓 속세에 초연한 표정을 짓지만, 그 역시 머릿속은 복잡하다. 마치 부단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사고형의 인간이야말로 근대화에 적합한 인간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점쟁이가 무슨 속뜻을 가지고 게이타로에게 선승이나 주고받을 듯한 화두 같은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이타로를 시작으로 스나가, 마쓰모토로 이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들은 소설에 등장하는 그럴듯한 허구적 상황의 대부분이 그렇듯 ‘자기 같으면서도 남 같은’, 친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에 따라 길고 짧음이 다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긴 듯하면서도 짧다.’ 이런 이야기들이 물 흐르듯 막힘없이 흐르다가도 때때로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독자는 ‘나올 듯도 하고 들어갈 듯’ 선뜻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기는 뭔가 꺼림칙하다.

점쟁이가 내던진 화두를 게이타로는 지팡이에 꿰어맞추고, 억지스러워 보이지만 나는 소설 『피안 지날 때까지(彼岸過迄)』에 꿰어맞춘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단어나 문장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분명할지 모르지만, 이것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는 한 작품으로서의 문학이 주는 의미와 해석, 그리고 감동과 여운의 깊이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렸다. 인생이 그런 것처럼 문학에도 정답이 없다. 독자는 ‘자기 같으면서도 남 같은’ 이야기 한쪽에 진지하게 한쪽 발을 지긋이 담근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 발은 살짝 현실에 걸친 채 허구와 현실이 경계를 이루는 울타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인생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이것이 문학이 주는 진정한 묘미이지 않을까.

설은 이야기로 말하지만, 여기에 기품을 더한 문학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텍스트 그 자체로도 말한다. 그런 면에서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문학은 그만의 정취와 멋이 있다. 뛰어난 기교나 멋을 추구하기보다는 단아하면서도 운치가 있는 그의 문장은 담백한 이야기와 함께 매우 멋들어진 궁합을 이룬다. 이런 독특한 문체로 인생의 한 조각을 차분하게 풀어쓴 그의 이야기는 작품을 음미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텍스트 자체를 읽는 즐거움도 함께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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