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낙양(风起洛阳, 2021) | ‘장안12시진‘ 시즌2 같은 느낌?
<「장안12시진」를 본 사람이라면 친숙한 풍경일 수도> |
세트, 연기, 연출, 의상, 분장, 액션, 스토리텔링, 촬영, 소품 등 규모가 자질구레한 것에서부터 큰 것에까지 흠잡을 데 없었던 「장안12시진(长安十二时辰)」 같은 스펙터클한 대작 드라마를 이렇게 금방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시대극 드라마가 꾸준함 이상으로 활발히 생산되는 것도 그렇지만, 이따금 이런 대작이 탄생하는 것을 보면 중국의 시대극에 대한 사랑과 투자는 시진핑의 축구 사랑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것 같다.
여기엔 한때 찬란했던 중국 역사에 대한 자부심도 포함되겠지만, 어찌 되었든 덕분에 타임머신을 타고 (아마도 당시 세계에서 최고로 화려하고 번화한 도시 중 하나였던) 당나라의 수도를 관광하는 듯한 고풍스럽고 우아한 재미를 만끽하면서 고질병을 시름시름 앓는 듯한 지루한 나날들을 견딜 수 있으니 나름 감사할 따름이다.
<이 포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
<견원지간이었던 두 사람(고병촉과 무사월)의 로맨스는 완성될까?> |
「풍기낙양」의 결점이라면, (「장안12시진」을 본 사람은 「풍기낙양」 1편만 보고도 대뜸 눈치챌 정도로) 세 명의 주인공 설정, 쵤영 장소,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 등이 「장안12시진」과 판박이라는 것이다.
「장안12시진」에서 저돌적으로 사건에 달려들던 장소경은 고병촉(둘 다 도시 最빈민층인 불량사 출신인 것도 같음), 「장안12시진」에서 유약한 서생이지만 머리가 좋아 사건 추적에 두뇌 역할을 하는 이심은 백리홍의, 「장안12시진」의 세 명의 주인공 중 홍일점이라 할 수 있는 무사 단기는 무사월 등 두 작품은 캐릭터 설정부터 ‘역모’라는 소재까지 매우 흡사하다.
아니나 다를까. 「풍기낙양」의 원작자 역시 마보융(马伯庸)이었다. 다만, 보통은 원작 소설이 출간되면, ‘인기’ 추세를 보고 ‘수익’을 저울질한 다음 원작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하기 마련인데, 「풍기낙양」 같은 경우는 원작 소설인 『洛阳』은 드라마 발표 이후 출판될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도 작가가 드라마 「장안12시진」에 대한 인기와 팬들의 호응에서 뭔가 큰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다.
사정이 이렇더라도 두 작품의 유사성이 큰 결점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재미도 판박이기 때문이다. 그냥 「장안12시진」 시즌2를 본다고 생각하면 딱 맞을 것이다.
<아집(雅集) 문화에서 비롯되었을 듯한 흐르는 물에 잔 띄우기> |
<성인(圣人)이란 명칭으로 등장하지만, 무씨 여황제는 그녀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
두 드라마의 역사적 배경이 당나라라는 점도 같다. 정권을 전복하려는 비밀 단체의 음모에 맞서는 출신 배경이 다른 세 명의 주인공들의 활약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같다. 다만,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는 당나라의 수도로 알려진 장안(시안, 长安)이 아니라 신도(神都)다.
아마 중국 역사에 밝은 사람은 이 ‘신도(낙양)’라는 명칭에서 당시가 무측천(武则天專政) 시대였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엔 품위가 하늘을 찌르고 인자함이 바다를 덮을 것 같은 무씨 성을 가진 황제가 등장하고, 무씨 일족이 황족으로서 핵심 관직을 독차지하고 있다.
무측천은 비록 잔혹하게 황제의 지위에 올랐다지만, 권력 쟁탈 같은 요원한 것이 아니라 굶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백성에게 소수 엘리트의 죽음 따위는 누구네 집 개와 아무개 집 개가 정을 통해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보다도 못한 사건이다.
드라마 「풍기낙양」에 등장하는 신도의 화려하고 다양한 볼거리와 백리홍의의 맛집 탐방은 무측천의 치세가 일부 역사가에 의해 '무주의 치(武周之治)'라고 칭송받을 정도로, 그리고 전후 50여 년 동안 당나라에서 민란과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백성들의 생활이 풍족했음을 주장한다. 특히 많은 엑스트라 속에 소수 민족과 외국인 복장을 한 사람들을 드문드문 심어놓음으로써 당나라의 도시가 명실상부한 국제도시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백성을 분노케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은 그것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
<액션도 쪼금 볼만> |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고 백성은 먹을 것을 생명으로 여기니, 백성은 배가 부르면 만사가 오케이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대통령 부부가 국내에서나 외국에서나 개망나니짓을 하고 다녀도 몰매를 맞지 않는 것은 국민의 배가 부르고 등이 따스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 부부가 18세기 말 프랑스 같은 상황에서도 그러고 다녔다면 부부의 목숨은 십중팔구 단두대의 검붉은 피딱지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 「풍기낙양」에서 무씨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음모를 꾸미는 그 사람들 역시 백성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의식(衣食)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허를 찌르는 공격은 예상하기도 어려웠지만, 이리 꼬고 저리 뒤집는 이야기 전개는 그런 예상이 머리에 떠오를 틈을 주지 않을 만큼 빠져들 만한 재미가 있다.
아무튼, 드라마 「풍기낙양」은 1편 첫 15분만 봐도 직감적으로 대작이라는 것을, 혹은 ‘이것은 꼭 봐야 할 드라마다!’라는 감흥을 벼락에라도 맞은 듯 짜릿하게 느끼게 할 정도로 잘 만든 드라마다. 중국 드라마가 흔히 초반부만 번쩍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하게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도 될 것 같다. 예상할 수 없는 전개가 고상한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풍기낙양」의 액션과 서스펜스는 「장안12시진」만큼은 못하지만, 나처럼 시대극에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라면 「장안12시진」처럼 놓칠 수 없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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