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제국 30년 | 롼밍 | 공산당원 눈에 비친 본 중국의 경제 성장이 가져온 불편한 진실
노예제도가 자유를 집어삼키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변화시키고 중국의 노예제도를 자유제도로 변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중국을 변화시키기 위한 전제 조건은 중국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자 덩샤오핑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다. (p22)
돈에 눈이 멀듯 성장에 현혹되다!
속된 말로 학생은 공부만 잘하면, 의사는 치료만 잘하면, 그리고 변호사는 변호만 잘하면 ─ 몇 개 더 추가한다면 여자는 얼굴만 예쁘고 남자는 돈만 잘 벌면 ─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한다. 좋게 보면 한 사람이 가진 재주나 장점을 극대화하거나, 직업인으로서 마땅히 갈고닦아야 할 능력을 고취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달리 보면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성이나 사회적 윤리나 직업윤리를 소홀히 하는 능력 제일주의의 한 폐단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같지도 않은 논리를 자본주의 사회로까지 비약적으로 확대 적용해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만 잘 벌면 최고이며 돈이 많으면 모든 것이 용서될 수 ─ 다르게 말하면 허용될 수 ─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인류와 문명이 품은 이상과 그 이상이 추구하는 정의를 깡그리 무시하는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은 잔혹하기 그지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부정한 방법으로 많은 돈을 번 사람을 겉으로는 비난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런 사람을 부러워하는 모순을 안고 산다. 올해 신혼부부 특별공급에서 10%가 부정청약이었다는 말은 ‘뭐든 안 걸리면 장땡이다!’라는 파렴치한 심보의 기회주의와 도덕적 불감증이 기성세대들에게서 젊은 세대들로 그대로 유전되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좀 더 많이 배우고 좀 더 나은 환경에 성장했다고 생각한 ─ 결국엔 착각이었지만 ─ 젊은 세대들조차 돈만 많이 가질 수 있다면 법을 어기고 욕쯤 먹는 것이 대수인가? 하는 뻔뻔한 작태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이 나라의 미래는 우울하다. 또한, 적발된 이들이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기라도 하는가? 높은 분이든 낮은 분이든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식으로 절대로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한국인의 고질적인 문제는 성찰이 없는 민족, 그래서 의식 발전은커녕 오히려 퇴보하는 감도 없지 않다. 어쨌든 욕먹는 사람이 오래 산다고도 하고 실질적으로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늘어나지 않았는가?
아무튼, 내가 초장부터 굳이 억지스러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는 중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에 현혹된 나머지 그 속에 감춰지거나 가려진 것 중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거나, 혹은 ‘불편한 진실’ 대하듯 애써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게 놓친 진실 중 제일 큼지막한 대어를 꼽으라면 개혁 • 개방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설계하고 건설했다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실상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덩샤오핑 제국’의 진실이기도 하다.
마오쩌둥 제국에서 진화한 신노예제도
한때(2004~2006) 타이완 총통부(總統府) 국책고문(國策顧問)으로 일했던 저자 롼밍(阮銘)은 『덩샤오핑 제국 30년(鄧小平帝國三十年)』에서 덩샤오핑 제국의 경제 성장과 그 경제 성장이 가져오는 이익에만 급급한 나머지 중국의 실체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던 점,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어두운 면을 왜곡하여 진실을 감추거나 고의로 외면하는 편협한 기존 역사관, 그리고 그런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어 한몫 잡으려는 욕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불편한 진실’을 의도적으로 간과해버린 서구의 안이하고 비겁한 시선을 비판한다.
그렇다면 롼밍이 바라보는 덩샤오핑 제국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신노예제도로서 마오쩌둥 제국의 폐쇄적인 공산 노예제도에서 진화한 개방적인 공산 노예제도다. 그리고 덩샤오핑이 주창하는 ‘개혁 • 개방’은 민주와 자유를 기조로 하는 보편적인 개혁 • 개방이 아니라 특권계급 독재 하의 개혁 • 개방이다.
6 • 4 학살의 유혈 속에서 부상한 덩샤오핑 제국은 대내적으로는 ‘자산계급 자유화에 반대’하는, 즉 반자유 • 반민주 • 반평등 • 반인권을 기조로 하면서 외국 자본과 중국 정부가 손을 잡고 농민의 토지와 자연 자원을 약탈하고, 생태 환경을 훼손시키고, 수억 명의 노동자 ‘농민공(農民工)’으로부터 대규모 이윤을 함께 착취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중국을 신속하게 전 세계의 제조공장으로 우뚝 세웠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막대한 부를 대표적인 보수 경제관료인 천윈(陳雲)의 ‘새장 경제’ 원칙에 따라 국가가 큰 몫을 갖고, 집단은 가운데 몫을 갖고, 개인은 작은 몫을 갖음으로써 중국 특색의 새로운 노예제도를 안착시켰다. 중국 인민은 ‘안정적인 노예가 되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현대 중국의 이른바 집단 시위는 바로 중국의 ‘노예가 되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이것이 중국의 신노예제도에 관한 롼밍의 대략적인 해석이다. 여기서 ‘안정적인 노예’는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했음에도 변변치 않은 사회주의 제도로 의료, 직업, 주택, 노후 문제를 그럭저럭 해결할 수 있었던 과거 마오쩌둥 시대를 말하는 것 같다. 아무튼, 경제발전을 이룩하면서도 고도의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독재정치체제가 세계화에 어울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본보기를 몸소 보여주면서 훗날 자유 민주주의와 대립할 가능성이 큰 그런 시스템을 창안한 사람이 바로 덩샤오핑이다.
경제에서는 ‘개혁 • 개방’, 정치와 사상에서는 ‘보수’
사실 ‘개혁 • 개방의 아버지’라는 진보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덩샤오핑의 정치는 권위주의적인 철권통치였다. 덩샤오핑은 경제적인 면에서는 확실하게 개혁 • 개방을 지지했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철저하게 보수파였다. 그것은 경제와 정치가 충돌했을 때 확고부동하게 정치를 지지한 데서도 덩샤오핑의 보수적인 면모를 알 수 있다. 그가 스스로 말한 바와 같이 경제 분야에서 문제가 출현하면 양보할 수 있었지만, 자유화와 관련해 문제가 발생하면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다. 따라서 반자유화를 위해서는 독재적인 수단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고, 톈안먼 학살은 덩샤오핑의 확고한 반자유 • 반인권 • 반민주 사상과 공산 독재만이 중국에 안정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자기기만에 가까운 확신에서 비롯된 예고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덩샤오핑의 입에서 한때나마 ‘민주’ 운운하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의 중대한 전환으로 일컬어지는 11기 3중전회(1978년)에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두 가지 범시(마오쩌둥의 정책과 지시는 무조건 옳다)와 문화대혁명이 철저하게 부정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으며, 11기 3중전회의 양대 주제였던 사상해방과 민주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3개월 후 덩샤오핑은 「4항 기본원칙의 견지(사회주의 노선의 견지, 인민 민주독재의 견지, 공산당 영도의 견지, 마르크스 • 레닌주의와 마오쩌둥주의의 견지)」를 발표함으로써 ‘자산계급 자유화 반대’와 함께 덩샤오핑 제국의 두 가지 범시를 성립했다. 그 이후 6~7년 동안 덩샤오핑의 견해와 주의력은 민주파와 보수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1987년 1월 후야오방(胡耀邦)이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덩샤오핑 제국의 반자유화 대전략이 최종적으로 확립되었다.
덩샤오핑 통치술의 핵심
그렇다면, 어떤 모습이 덩샤오핑의 참모습인가? 롼밍은 모두가 진짜 덩샤오핑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11기 3중전회에서 사상해방과 민주를 지지하던 덩샤오핑의 모습도 진짜고, 개혁 • 개방을 지지하는 덩샤오핑의 모습도 진짜고, 톈안먼 학살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덩샤오핑의 모습도 진짜라는 것이다. 즉, 이것이 바로 덩샤오핑 자신이 말한 “지도자의 견해와 주의력이 변함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다르게 말해 시세와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처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통치술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변칙적인 통치술이 바로 덩샤오핑 통치술의 핵심이기도 하다. 마오쩌둥도 변덕이 심하긴 했지만, 그것은 ‘변덕’이라고 표현될 수 있을 만큼 마오쩌둥 본인의 핵심 사상과는 크게 관계없는 일에 한해서였던 반면에 덩샤오핑은 ‘민주, 자유, 인권’과 ‘반민주, 반자유, 반인권’이라는 사상적인 면에서 완전히 서로 다른 양극단을 오고 갔었던 만큼 마오쩌둥보다 한 수 위라고 봐야겠다. 이뿐만 아니라 마오쩌둥이 지정한 후계자 화궈펑(华国锋)이 얼마 가지 못하고 거의 쫓겨나다시피 하여 권력에서 물러났던 것에 반해 덩샤오핑이 지정한 두 후계자(장쩌민과 후진타오)는 모두 완만하게 정권을 잇고 무난하게 국정을 꾸려나갔던 것을 보면 역시 후계자 선정 문제에서도 덩샤오핑의 능력은 그보다 탁월했다.
<Carter DengXiaoping, Schumacher, Karl H. / Public domain> |
공산 노예제도와 자유 민주의의 대립?
‘덩샤오핑 제국’에 대한 롼밍의 총평이라 할 수 있는 ‘개방적인 공산 노예제도’라는 말에는 공감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롼밍은 더 나아가 중국의 공산 노예제도가 자유 민주의의 물결에 대해 또 한 번의 도전이라고 웅변한다. 과거 파시즘 세력과 자유 민주주의 세력이 대립하고,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이 대립했던 것처럼 덩샤오핑 제국의 산물인 공산 노예제도의 확장이 인류의 자유에 대한 거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데, 이 말에는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저자의 편집증적인 망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야오방 밑에서 일하다가 1985년에 당적을 박탈당한 분노와 원한을 그런 식으로 풀어보려는 심보는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짐바브웨 군부 쿠데타 관련 뉴스에서 중국이 정권교체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 순간 중국의 투자가 아프리카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과 아프리카에는 여전히 절대 독재국가와 전체주의 국가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잇달아 떠올랐다. 소름이 돋았다. 덩샤오핑이 1974년 UN 연설에서 중국은 절대 패권을 차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마오쩌둥의 장기인 상대를 일단 안심시키고 나서 기습하는 기만술이자 덩샤오핑 특유의 변칙적인 처세술이었단 말인가?
중국이 장차 패권 국가로 성장한다면 가까운 이웃 나라이자 중국에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다. 과거 미국이 민주와 자유를 전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골목대장 노릇을 하며 수많은 나라의 내정에 간섭해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던 사실에 비추어보면, 훗날 중국의 군사력이 미국을 압도하게 되면 어떤 괴물로 다시 태어날지 참으로 두렵다. 그런 중국의 속마음과 진의를 꿰뚫어 보기 위해서라도 중국 현대사의 굵직한 한 획을 긋는 덩샤오핑 제국 30년이 드리운 어둡고 깊은 그림자를 비판적 관점으로 낱낱이 해부한 이 책을 읽어볼 가치가 있다.
마치면서...
이 책은 후야오방 밑에서 일했단 진짜 공산당 당원으로서 덩샤오핑 제국의 형성 과정을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고 두 눈으로 똑똑히 봤던 롼밍의 독특한 역사적 체험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특히 이 책에는 공산당원만이 설명하고 제시할 수 있는 증거와 정치 공작의 세밀한 내막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무슨 무슨 회의마다 발표되는 강령, 강화 등의 글이 발표되는 정치적 배경과 경위가 그러하다. 예를 들어 1979년 3월 30일에 덩샤오핑이 발표한 「4항 기본원칙의 견지」라는 글은 후차오무(胡喬木)가 기초한 것이지만, 이보다 3개월 전인 11기 3중전회 때에는 덩샤오핑이 후차오무의 원고를 퇴짜놓으며 후야오방에게 원고를 청탁했다는 일화 등이다. 덩샤오핑이 어떤 글을 채택하고 그 글을 누가 작성했느냐는 것을 따져보기만 해도 독자는 자연스럽게 덩샤오핑의 정치적 행로나 사상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한편, 『덩샤오핑 제국 30년』은 내심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올라섰을 때 당연히 패권을 추구할 것이라는 전제가 가정되고, 그래서 중국의 민주화를 바라는 절실하고 긴박한 마음에서 집필한 만큼 때론 격하게 끓어오르는 저자의 감정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감정의 힘과 압박이 문장에 고스란히 실리다 보니 마치 선동하는 글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불편만 조금 감수한다면, 저자의 값지고 독보적인 정치 체험 속에서 현장의 복잡하고 미묘하면서도 살벌한 정치 흐름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그리고 중국 현대사를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날카로운 안목을 길러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보위했지만, 끝내 비운의 결말을 맞이하며 화궈펑처럼 역사에서 지워진 후야오방의 철학과 이상주의를 조명한 것은 새롭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에즈라 보걸(Ezra Vogel)이 중국 개혁 • 개방의 모든 공을 덩샤오핑 한 사람에게 몰아준 것에 대해, 그리고 개혁 • 개방의 역사를 한 사람의 전기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던 롼밍이 사돈 남 말 하듯 후야오방을 중국 민주화의 구세주라고 되었던 것처럼 너무 치켜세우는 것도 같아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무튼,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국가, 즉 인민은 빈곤하지만 국가는 부유한 초강대국 중국의 화려한 경제 성장이 은폐할 수밖에 없었던 덩샤오핑 제국의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다뤘다는 것만으로도 두고두고 화자가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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