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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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 부패할 수 없는 파수꾼

Robespierre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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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 장 마생 | 부패할 수 없는 혁명의 파수꾼

나는 충분히 살았습니다. 나는 프랑스 민중이 비천함과 예속의 한 가운데에서 영광과 자유의 정점으로 도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민중들의 족쇄가 깨지고 세상을 짓누르는 비난받아 마땅한 왕좌들이 승리한 민중들의 손 아래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p599)

부패할 수 없는 혁명의 파수꾼

부패할 수 없는,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파수꾼이자 자유의 사도로 불린 사람. 헌법의 서문인 인권선언의 이름으로 3년 동안 헌법의 해악들에 대항해 투쟁했던 사람.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사상의 아들로 자유를 얻은 위대한 민중의 한가운데에서 자연의 선의를 찬양하는 꿈을 꾸고 있던 사람. 그 사람은 바로 프랑스 혁명이 나은 부르주아 혁명가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다. 그가 민중으로부터 ‘혁명의 파수꾼’이라는 찬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부르주아로서 혁명의 소용돌이에 발을 막 들여놓았을 때 다른 부르주아들이 보려고도, 결코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로베스피에르만은 보았기 때문이다. 바스티유 함락은 만 명에 이르는 생탕투안 포부르(faubourg Saint-Antoine)의 가난한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장 폴 마라(Jean-Paul Marat)의 일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은 오직 민중을 신뢰할 때에만, 그리고 혁명 수호에 그들을 참여시킬 수 있을 때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혁명의 불씨가 본의 아니게 부르주아에서 민중으로 튄 꼴이 되었을지라도 로베스피에르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미 민중 속으로 파고든 혁명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는 혁명의 용광로로 진화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료를 공급하는데 자신의 젊음과 나머지 생애를 기꺼이 바치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Robespierre by Jean Massin
<로베스피에르 체포(1794년 7월 27 일), After Fulchran-Jean Harriet / Public domain>

커피를 마시는 것 같은 진한 혁명의 체취와 온기

바스티유 습격으로 프랑스 혁명이 이제 막 동이 틀 무렵, 이로부터 권총 자살이 불운으로 실패하고 단두대에서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그에게 남은 시간은 달랑 5년뿐이었다. 이 시기에 로베스피에르는 전력 질주와 휴식을 반복하며 훈련하는 육상 선수처럼 때론 왕성한 활동력과 열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론 신중하고 병약한 침체기를 보여주기도 하는 등 심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뚜렷한 기복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코 그는 다른 부르주아들처럼 혁명과 반혁명 사이를 줏대 없이 천방지축 날뛰며 오락가락하지 않았다. 지레 겁먹고 주춤주춤 후퇴하는 법은 더더욱 없었다. 험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혁명의 길을 나홀로 묵묵히 걸어간 그가 남긴 발자취를 두고 훗날의 사람들은 공상가, 유토피아주의자, 냉철한 현실주의자, 순진한 혁명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것을 인정하고, 또한 그가 혁명 활동 중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오류를 적지 않게 범하며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는 사실 역시 인정하더라도, 로베스피에르가 남긴 부정할 수 없는 업적이 있다. 그는 당시 혁명가 중 모호함과 장황함이 가장 적은 인물이었고, 혁명이 발발했을 때의 그 격렬함과 열정을 생생하게 피부와 호흡으로 흡수했던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고, 또한 그는 혁명의 원칙과 신념을 끝까지 고수했다. 이로써 그는 상퀼로트 민중을 정치적 활동의 경험 속으로 인도한, 그리고 정치 권력의 행사와 결합한 첫 부르주아 혁명가였다.

장 마생(Jean Massin)은 자칫 역사의 무심함과 역사가들의 편협함 속에 묻힐뻔했던 로베스피에르의 참모습을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Robespierre)』으로 복원했다. 기존 해석과 어긋나기도 하고 대치되기도 하는 복원된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내키지 않거나 껄끄러운 사람도 있겠지만, 이 책에는 민중을 향한 로베스피에르의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온기가 마치 보온병에 담긴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처럼 진한 혁명의 체취와 함께 전해진다. 두툼한 이 책을 가슴에 안고 있노라면 마치 강아지를 품에 안은 것처럼 따뜻한 혁명적 온기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해져 오는 것 같다.

로베스피에르는 민중이 혁명의 심장이자 팔이라며 믿었을지는 몰라도, 산악파 부르주아지가 여전히 혁명의 두뇌여야 한다는, 훗날의 엘리트 의식이라 불리게 될 한계를 명백히 드러내기도 한다. 민중(프롤레타리아)을 계몽하고 자극하고 선동하여 혁명 전차를 이끌게 하되, 전차 부대 지휘는 직업 혁명가가 맡아야 한다는 엘리트 의식은 훗날 러시아와 중국 혁명에서 그대로 실현된다. 그럼에도, 당시 부르주아 대부분이 민중을 멸시하거나 적당히 꼬드겨 이용할 먹을 생각만 하고 있었을 때, 그리고 민중은 이러한 부르주아를 불신하고 있었을 때, 이 거대한 두 힘이 충돌하여 혁명이 자폭하지 않도록 그 사이에서 고독한 완충재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 바로 로베스피에르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공포 정치가 시작되기도 전에 혁명의 불씨가 일찌감치 꺼졌거나 반동적인 부르주아의 민중 학살이 공포 정치를 대신했을지도 모른다.

마치면서...

이 책에 대해 가장 아쉬운 점은 불충분한 자료가 가져온 한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상적이거나 의회 연설을 제외한 다른 혁명 활동, 민중과의 교류 등 로베스피에르의 구체적인 동선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연설이나 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장 마생의 분석과 해석이 주를 이루다 보니, 다시 말해 액션 영화를 보는데 액션 장면은 없고 대신 현학적인 해설자가 생략된 액션 장면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듣는 꼴이라 좀 지루하고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인권선언, 기본권, 자유, 평등, 우애, 혁명, 국민, 국민국가, 국민주권, 시민권, 헌법, 대의제, 정교분리, 의무교육, 국민군, 입헌주의, 자유민주주의 등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민주주의적인 키워드 전부가 프랑스 혁명에서 탄생한 것도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유토피아적 이상에서 현실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실재적인 무언가로 윤곽을 드러냈고, 그럼으로써 근대 사회의 민주주의적 가치관이 꽃 피울 수 있도록 씨앗과 영양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로베스피에르가 프랑스 혁명에서 이룬 과업과 부닥친 한계를 명확히 밝힌 이 책의 가치는 유효하다. 또한, 혁명의 도덕군자 로베스피에르가 완고하게 강조했던 혁명의 덕성이 비록 그의 순진성을 드러낼지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보편적인 도덕성이 날로 희미해져 가는 요즘 우리는 ‘부패할 수 없는’ 그의 강직함에서 더 높은 민주주의와 자유로의 도약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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