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굴원 | 목도 | 문학 속에 잠든 숭고한 영혼의 환생
“대왕님, 굴평을 도와주소서. 어이하여 인간 세상에는 폭군이 나타나는 것이며 천지는 어이하여 그런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옵니까? 어이하여 진리는 현실과 어울리지 않고, 죄악이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드는 것이옵니까? 대왕께서는 어이하여 인간세상을 구하고 이 세상을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것이옵니까?” (『소설 굴원(屈原)』, 446쪽)
두 영혼의 시대를 뛰어넘는 오묘한 조화
자신의 경험과 사색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창작한 일반적 소설과는 다르게 역사소설은 때론 단 몇 문장의 역사적 사실만을 가지고 한 권의 책을 완성해야 한다. 오늘 소개하는 목도(穆陶)의 작품 『소설 굴원(屈原)』 이 그러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무려 2,300여 년 전에 살았던 인물과 사건에 대해 역사서에 기록된 단지 몇 줄의 빈약한 자료만으로 독자가 수긍하고 감동할 수 있는 한편의 이야기를 완성한 『소설 굴원(屈原)』은 인간의 놀라운 창작력을 대변한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무수히 빈 곳과 허점을 일반적 소설처럼 허구의 잣대를 들이대며 마구잡이로 채울 수도 없다. 왜냐하면, 저자 목도의 명확한 지적처럼 허구에도 반드시 토대가 있어야 하고 논리와 흐름이 통해야만 하는 것이며, 이런 토대는 역사 배경을 벗어날 수 없고 논리와 흐름은 사람의 영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자의 역사소설 쓰기 방법론의 신념과 실제로 그것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멱라강(汨罗江) 속에 고이 잠든 굴원의 영혼을 다시 현대인의 정신과 마음속에서 환생시키는 개가를 이룩하고, 저자와 굴원이라는 두 영혼의 시대를 뛰어넘는 오묘한 조화를 통해 기존의 사료로는 도저히 채워질 수 없는 수많은 틈을 충실히 메워준 작품 이 바로 『소설 굴원(屈原)』이다.
<굴원 초상, 不可考,亡佚 / Public domain> |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수구 세력
굴원은 자신이 남긴 아름다운 문장만으로도 마땅히 칭송받아야 하지만, 문장에 깃든 숭고한 이상을 불굴의 정신으로 몸소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자신이 구구절절 칭송한 옛 성현들 못지않은 품격과 자질을 갖춘 또 한 명의 성현으로서 후세에 기록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굴원 정신의 위대함은 그 자신이 왕족 출신임에도 자신이 꿈꾸던 아름다운 정치(美政)를 실현하고자 자신의 이익을 내던지는 개혁을 주장하며 국가와 백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가 고심분투했음에도 빛나는 그의 자질이 별똥별처럼 잠깐 빛을 발했을 뿐, 허무하게 곧 어둠 속으로 스러져 간 것은 변덕스럽고 결단력과 판단력이 부족했던 군주의 잘못도 있었지만, 굴원의 개혁으로 권력과 이익을 빼앗길 것을 염려한 수구 세력들의 간사하고 집요한 방해 때문이었다. 진보적인 사회 개혁이 요원한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
‘民爲貴’
2,300여 년 전, 굴원은 자신의 이상이라 할 수 있는 충정과 애국, 애민에 바탕을 둔 아름다운 정치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쳤다. 하지만, 때를 잘못 태어난 것일까. 군주를 잘못 만난 것일까. 아무튼, 굴원은 수구 세력들의 간악한 음모에 휘말린 끝내 조정에서 추방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수십 여년 동안 고달픈 방랑 세월을 보냈다. 이쯤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변할만하지만, 그럼에도 군주와 조국, 백성을 그리워하는 굴원의 마음은 늘 한결같았다. 자신의 문장을 통해 울분과 분노를 토로하고 수구 세력들을 비난하면서도, 군주와 백성에 대한 사랑만큼은 변함없었다. 결국, 비통한 마음을 금치 못한 굴원은 자신의 문장 속에 영혼을 깊이 새겨넣고는 빈 껍데기가 된 허탈한 육체는 미련없이 고기밥으로 내던진다. 맹자는 백성을 귀하게 여기라고(民爲貴) 가르쳤지만, 고금을 통틀어 그 누가 맹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던가 . 국민과 정부가 불신에 불신을 거듭하는, ‘헬조선’이라 일컬어지는 파국적인 정세에 국가와 국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굴원 같은 위정자 한 명이 없다는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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