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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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 말의 전달 수단과 인간성 타락

핸드폰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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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 류전윈 | 말의 전달 수단의 변천에 따른 인간성의 타락

한 언어학자는 내게 이 세상에 진정으로 유용한 말은 하루에 열 마디를 넘지 않는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매일 3천 마디가 넘는 말을 뱉어내고 있는 것이다. (『핸드폰(手机)』, 5쪽)

작품의 특이한 구성

저자 류전윈(刘震云)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핸드폰(手机)』은 모든 사람에게 말의 역사를 밝히기 위한 작품이라고 명시한다. 독자가 작품의 의미를 미꾸라지 움켜쥐듯 쉽게 놓칠까 봐 노파심에 한 마디 남긴 것 같은데, 아닌게아니라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제2장만 본다면 입만 살은 한 유명 방송인의 산만한 인생 이야기를 담은 통속적 소설로 비치기 딱 십상이다. ‘말의 역사’를 밝히겠다는 저자의 의지는 마지막 제3장까지 본 후 제1장과 제2장을 소처럼 되새김질하고 나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감지해낼 수가 있는 것이 소설 『핸드폰(手机)』의 묘한 구성적 특성이다 .

Mobile phone by Liu Zhenyun
<'말'의 가치를 떨어트린 주범>

과거, 현재, 다시 먼 과거로

문화대혁명 시기인 제1장에선 아직 소년인 옌셔우이가 새색시 뤄구이화의 부탁으로 그녀의 남편이 일하는 제3탄광에 안부를 전화고자 마을에서 40리나 떨어진 시내에 딱 한 대뿐인 전화기를 이용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가 남편에게 남긴 메시지는 커다란 확성기로 방송되어 탄광의 이 산 저 산 모두에 메아리쳐 모든 광부가 듣게 되고 결국 노래로까지 만들어져서 유행가처럼 불리지만, 훗날 뤄구이화는 이러한 사실을 부인한다. 현대로 돌아온 제2장에선 <진실을 말한다>라는 유명 프로그램 진행자로 일약 스타가 된 옌셔우이의 습관적인 거짓말과 핸드폰의 상관관계를 짚어본다. 입만 살은 옌셔우이는 (많은 핸드폰 사용자들이 그러하듯) 상대방이 이쪽을 볼 수 없다는 상황을 악용해 밥 먹듯 거짓말을 해대고 아내 몰래 다른 여자도 만난다. 그러다 어느 날 출근하면서 실수로 핸드폰을 집에 두고 온 것 때문에 모든 것이 아내에게 탄로 나고 만다. 제1장보다 더 멀리 과거로 돌아가 옌셔우이의 할머니가 시집갈 때쯤의 시기를 다룬 제3장은 한 아버지가 멀리 떨어진 자식에게 한마디 말을 전하는데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다니는 장사꾼에게 부탁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전할 말을 부탁받은 장사꾼이 여행 도중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게 되자 그는 인연이 닿은 다른 장사꾼에게 아버지의 부탁을 대신 맡긴다.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을 걸친 끝에 아버지가 전하는 말은 2년 만에 아들에게 소식을 전하게 된다.

말의 전달 수단의 변천에 따른 인간관계의 변화

대충 이렇게 개괄해 놓고 보니 ‘말의 역사’보다는 말의 전달 수단의 변천에 따른 인간관계의 단편화와 인간성의 타락이 더 눈에 들어오는데, 특히 가장 최근인 제2장과 과거인 제3장을 비교해보면 앞의 분석은 더욱더 선명해진다.

통신 수단이 인편뿐이었던 과거에는 마을을 떠도는 장사꾼이 집배원 같은 역할을 했다. 이러한 약정은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약간의 수고비나 조촐한 한 상 대접에 장사꾼들은 흔쾌히 전령 역할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중간에 개인적 사정으로 더는 여행이 어려워지면, 다른 장사꾼에게 자신이 맡은 부탁을 다시 부탁함으로써 책임을 다한다. 제3장에서 아버지의 메시지는 한 달 정도 후면 아들에게 전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이런 저러한 사정으로 3명의 장사꾼을 걸친 끝에 2년여 만에 아들에게 전해진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아들에게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애틋함도 눈물겹지만, 인편의 역할로서 의리와 책임을 다한 장사꾼들의 노고도 눈물겹다. 제2장에서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 뤄구이화의 애정 어린 말이 귀하고 귀한 전화기로 첩첩산중의 광산으로 어렵사리 전달되었을 때 광부들은 뤄구이화의 말을 한 곡의 노래로 만들어 매일 식사시간마다 불렀다. 말의 소중함과 그 뜻에 담긴 간절함과 애정이 그것을 말하는 사람에게서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하는 사람, 그리고 곁에서 듣는 사람에게까지도 느껴지는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핸드폰 등의 통시 수단의 비약적인 발달로 말(言)이 매일 홍수처럼 범람하는 현대에서는 필요 이상의 말이 남발되며 말의 가치를 떨어트린다. 말의 가치가 떨어진 만큼 거짓말도 쉽게 내뱉어지고 거짓말이 늘어난 만큼 인간관계의 진실성도 희미해진다 . 핸드폰은 말을 빠르고 쉽게 전할 수 있다는 기능 때문에 인간관계를 넓힐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때론 필요 없는 말, 해서는 안 될 말, 그리고 거짓말 등도 쉽고 빠르게 전파되기 때문에 기껏 넓혀진 인간관계를 팥소 없는 찐빵으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눈부신 통신 수단의 발달로 과거보다 인간관계도 넓어지고 다양한 소통이 가능해졌음에도 현대인이 외로움과 고독,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마치면서...

솔직히 제3장을 다 읽을 때까지는 불륜, 이혼 등을 다룬 그저 그런 통속적인 소설로 여겨지기도 한 작품이다. 그것은 각각의 장이 의미하는 바가 애매하기도 하지만, 퍼즐처럼 마지막 장을 끼워 맞추어야 비로소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가 완성될 수 있기에 마지막 장을 다 읽기 전까지 작품을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 장은 길지도 않고 조촐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과 작품 의도를 완성하는 열쇠가 숨겨진 장 이기에 『핸드폰(手机)』의 마지막 장을 읽기 전까진 작품의 의도를 일찌감치 판단하려고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빈 광주리에 이것저것 쓸어 담듯 그저 편하게 텍스트를 마음과 머릿속으로 잘 쓸어 담으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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