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밤바 | 이노우에 야스시 | 찰칵, 앨범 속에 간직하고픈 추억 같은 소설
고사쿠는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할머니가 참 많이 늙어버렸음을. 마을의 어느 노인보다도. (『시로밤바(しろばんば)』, p434, p296)
큰집 식구들 말대로 할머니는 오래 못 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문득 ‘세상사 서글픈 일이 가득하다’라는 시험문제 속 문장이 떠올랐다. 인생이란 참으로 서글픈 일투성이였다.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이누카이 선생, 갈수록 흉하게 늙어가는 할머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버린 사키코. 별나게 고즈넉한 그 날 밤, 인생이라는 것이 너무도 서글픈 얼굴을 하고 고사쿠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로밤바(しろばんば)』, p434)
세상은 한 번 지나가면 절대 돌아오지 않는 아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어제’와 ‘오늘’이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며, 우리의 ‘유년 시절’, ‘젊은 시절’, 그리고 애틋한 ‘첫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말 못 할 비밀이 숨겨져 있고, 행복했던 때보다 슬펐을 때가 더 많았을지라도, 단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과거는 소중한 ‘추억’으로 포장되어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마음 한 켠 빛바랜 서랍 속에 고이 간직된다. 마음속 서랍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을지는 몰라도 빅뱅 후 우주로 뻗어 나간 시간의 지배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법, 망각이라는 세월의 성배 속에서 어느새 비밀은 녹이 슬어 감흥 없는 고물 덩어리로 퇴색되고, 슬픔에서 감로주처럼 발효된 시큼 달콤한 향기는 행복했던 기억에 풍미를 더해주면서 추억은 한 사람의 정신적 평온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이처럼 초장부터 주절주절 ‘추억’을 주워 담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거칠지만 순박하고 목가적인 시골의 삶을 담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의 『시로밤바(しろばんば)』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겪고 싶은, 혹은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고 달콤하면서도 씁쓰름한 우리 모두의 ‘추억’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의 유년 시절 추억이 떠올리는 것조차 진저리가 날 정도로 비참하다면, 이 작품으로 그 비참함을 어루만지며 소소한 위안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고사쿠가 살던 곳도 많이 변했겠지> |
일본의 국민 작가로 노벨상 후보였던 이노우에 야스시의 자전적 장편 소설이기도 한 『시로밤바(しろばんば)』는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도시에 사는 가족과 떨어져 한적한 시골 온천 마을 유가시마에서 소학교 시절을 보내게 된 고사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사쿠가 흙집에서 증조부의 첩과 단둘이 살게 된 복잡한 집안 내력만큼 고사쿠를 둘러싼 인간관계 역시 평범하지 않다. 첩에게 자신의 남편을 빼앗긴 원한에 사무친 큰할머니가 사는 큰집 친척들에게 고사쿠는 원수에게 붙들려간 인질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고사쿠에게 있어 할머니는 유일하게 자신을 애지중지 보살피고 어떤 일에서도 편들어 주는 든든한 보호자다. 고사쿠는 강아지 새끼처럼 할머니를 쪼르르 따르지만, 당연히 큰집에선 이런 고사쿠가 못마땅할 따름이다. 고사쿠에겐 큰집 식구들이야말로 피를 나눈 혈육이지만, 큰집에 가도 툭하면 미운 오리 새끼 취급받기 일쑤니 역시 할머니와 흙집에 사는 게 더 좋다.
견원지간처럼 날카롭게 대립하는 할머니와 큰집 식구들과의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해묵은 감정싸움이 가져오는 갈등을 경험하는 고사쿠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남몰래 사모하던 이모의 때 이른 죽음에서는 쓰라린 상실의 슬픔을 맛본다. 자신보다 어리지만 조숙했던 한 소녀에게서 사춘기의 풋사랑을 느낀 고사쿠는 예전처럼 멋대로 여자아이들을 대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는 걸 문득 깨닫기도 한다. 이 모든 경험은 고사쿠를 소년에서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시키는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한 인생의 자양분이다.
학교생활, 수험 준비, 여행, 친구, 소녀, 복잡한 친척 관계, 낯선 도시 생활과 정겨운 시골 등 차곡차곡 나이를 먹고 학년을 올라가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고사쿠에게 가장 가깝고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는 작품의 제목 ‘시로밤바’(백발의 할머니)에서도 알 수 있듯 바로 할머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바라보는 고사쿠의 인식 변화는 고사쿠의 내적 성장의 변화를 감지하는 척도다. 아침마다 할머니가 준비한 오메자(단 과자)를 받아먹고 나서야 일어나는 늦잠꾸러기 ‘아가(고사쿠)’는 어느 날 문득 할머니의 가늘고 앙상한 팔과 눈에 띄게 허리가 굽은 할머니의 등을 통해 비로소 할머니가 참 많이 늙어버렸음을 깨닫는다. 자신을 애지중지 키워준 할머니, 혹은 엄마가 늙어가고 있음을 문득 깨달았을 때만큼 온몸을 통째로 불사르고 싶을 정도로 슬프고 억울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그 착잡하고 무겁고 쓰라린 심정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한 고사쿠는 죽기 전에 고향을 방문하고 싶은 할머니 여행에 기꺼이 동참하게 된다.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는 ‘아가’ 고사쿠에서 이제는 할머니를 돌봐줄 수 있는 어엿한 고사쿠로 성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러일전쟁을 막 끝내고 1차대전을 지나치는 20세기 초 격동기임에도 ‘전쟁’, ‘천황’, ‘식민지’, ‘군인’ 등의 당시 역사적 상황을 대변해주는 정치적 단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역사적 배경이 제거된 유가시마 마을은 마치 동화 속나 등장할법한 평온하고 목가적인 마을과 다름없다. 투박하면서도 어딘가 정겹고 소박한 일본 특유의 시골 풍경은 『시로밤바(しろばんば)』가 발표될 당시 패전의 참혹한 고통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채 인내와 고난의 재건 시절을 보내던 일본인에게 달콤한 솜사탕과도 같은 추억과 위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을 서정적인 필치로 한껏 담아낸 이 작품은 일본 국민이 간직한 ‘일본의 추억’이고 그래서 그들은 이 작품에 매료되었던 것이리라. 비단 일본인에게뿐만 아니라 목가적인 생활을 동경하는 나 같은 도시인에게도 서정적인 분위기로 한층 더 아름답게 포장된 고사쿠의 추억은 은근한 시샘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난 『시로밤바(しろばんば)』를 읽는 내내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방학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댁으로 놀러 가곤 했는데, 양반처럼 상투를 틀고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시곤 했던 엄격한 외할아버지와는 달리 외할머니는 고사쿠의 할머니처럼 손자들에게 이것저것 챙겨주시기에 바쁘셨다. 특히 도시 생활을 하는 내가 시골 밥상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 봐 걱정하셨던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 몰래 다락방에 – 시골집의 다락방은 곶감, 약과, 사탕, 말린 생선, 누군가 사다 놓은 통조림, 먹다 남은 술 등 아이들에게 있어 보물 창고나 다름없었다 - 라면을 숨겨 놓았다가 외할아버지가 외출하실 때 종종 끓여주시곤 했다. 사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거나 잘 먹는 식성이지만, 아무튼 그때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이름 모를 라면의 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진다. 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를 갔다 오고 난 후부터는 특별한 이유 없이 명절 때조차도 잘 내려가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 말년에 치매에 걸리신 외할머니는 아들 셋이 건장하게 살아있음에도 딸 집들만을 버려진 개처럼 배회하시다 우리 집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시고 말았다. 당시 일을 핑계로 외할머니 일을 모조리 어머니에게만 맡겨둔 채 틈틈이 손 한 번 따스하게 잡아드리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후회막심하다. 그래서 그럴까. ‘시로밤바’가 ‘아가’ 곁을 떠나던 날, 고사쿠가 아닌 또 한 명의 아가도 통렬한 회한의 눈물을 흘렸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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