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전쟁 | 백지원 | 임진왜란에 대한 새로운 해석
어느덧 도서관 대출 인생 5년 차로 접어들었고, 그동안 조선시대와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조일전쟁’이라는 단어는 이 책을 통하여 처음 만나게 되었다. 스스로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어렵고도 긴 싸움에 뛰어든 저자 백지원의 소개로 다시 만난, 그동안 임진왜란이라고 알고 있었던 조일전쟁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해석을 이 책을 통해서 만나 보았다.
역사 새로 알기의 첫 출발점으로, 1592년에 일본의 조선 침략을 ‘임진왜란’이 아닌 ‘조일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점을 보자. ‘난 亂’이라는 말은 ‘난리’, ‘아무개의 난’ 등 전쟁보다는 규모가 작은 국지적인 반란 등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해왔다. 1592년 일본의 침략은 단순히 조선 조정에 봉기한 반란이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었으며, 당시 선조와 조정의 어처구니 없는 무사안일한 태도로 200만이라는 엄청난 인명 피해와 한반도 대부분이 전쟁 중 초토화되는 물적 피해를 보았다. 그럼에도, 단지 ‘난’이라는 단어로 축소 왜곡한 것은 조정의 무능을 조금이라도 덮어두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면은 어느 세계의 역사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가진 정부의 무능이나 잘못된 점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들은 은폐하거나 축소하고, 조금이라도 괜찮은 점은 과장 확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독자들은 역사서를 읽고 판단해야 한다. 단어 하나일 뿐이라고 우습게 보지 말자. 이런 표현 하나도 제대로 바로잡지 못하면서 딱딱한 머릿속에 박힌 몇십 년 묵은 편견은 어떻게 바로잡겠는가?
두 번째로, 조일전쟁이 시작하자마자 연패를 거듭한 조선군과 조정은 이것에 대한 변명거리로 일본의 조총을 핑계로 댄다. 이것 역시 조선 지도층의 무능이 한몫한 것이다. 물론 일본의 조총이 우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최무선의 화약 개발 이후 당시 조선은 화약 무기 면에서는, 특히 중화기 면에서는 절대 일본에 뒤지지 않는 전력이 있었다. 수군에서 절대 우위를 점할 수 있던 것도 함포가 장착된 판옥선으로 함포조차 없었던 일본 배를 상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개인화기 면에서만 조총이 우세했던 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사거리 긴 조선의 각궁이나 중화기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조총이 개발된 이후로 몰락한 몽골 기마병들과 프랑스-영국 백년전쟁에서 증명되었듯이 조총 부대의 밥인 기마대로 무모하게 공격해서 전멸한 신립 등 전혀 준비가 안 된 도망 다니기 바빴던 지도층의 무능이 일본의 빠른 진격과 조선군의 처절한 패배에 한몫했음을 알고 넘어가자.
그뿐만 아니라 그 당시 지도층들도 그러했겠지만, 현재의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점 중의 하나가 당시 일본은 섬나라이니까 육군전력보다는 수군 전력이 월등히 앞설 것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역시 그 당시 일본의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공을 등에 업고 100여 년이 넘는 약육강식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생각해 보면 일본의 육군이야말로 아마 당시 최강이지 않았을까.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장수들과 어렸을 때부터 칼과 창으로 단련된 무사들을 상대했을 조선군을 생각하면 정말 때를 잘못 만나 어육이 된 그들의 불행한 운명을 탓할 수밖에 없으리라.
세 번째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많이 부풀려진 이야기들을 얘기해 보자. 우선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정몽주 전 회장이 유럽에서 첫 수주를 따낼 때 한국 돈을 보여주어서 성공했다는 일화에 등장하는 철갑선인 거북선. 하지만, 조선의 기록 어디에도 거북선이 철갑선이었다는 기록은 없다. 적군이 배의 등 부문 위로 접근하지 못하게 못 등으로 무장했다는 기록뿐이다. 철갑선이었다는 얘기는 일본 측 기록인 <정한위략>에 등장한다. 아무래도 일본의 수군이 조선 수군에게 대판 깨지니까 우리가 조총 핑계 대듯이 거짓말을 좀 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거북선은 거대한 만큼 기동력이 떨어져 칠천량해전에서 3~4척 있던 거북선이 전부 소실되고 나서는 다시 제작했다는 기록이 없는 걸로 봐서 전투에서는 크게 효용이 있었던 것은 아닌 듯싶다. 또한, 조선의 첫 거북선은 태종 13년(1413)에 첫 건조 되었고, 이순신 장군은 그걸 고쳐서 실전에 배치했다.
이순신 장군의 연전연승 신화도 저자의 꼼꼼한 계산을 예를 들면 16전 13승 3패란 결과가 나온다. 이 중 3패는 보는 이의 판단에 따라서 무승부가 될 수도 있어 보이지만, 최소한 1패는 확실해 보이고, 따라서 연전연승 신화는 거품이다. 당시 일본 수군의 배에는 함포도 없었던 걸 떠올리면, 20문의 포가 장착된 판옥선을 대량 보유한 조선의 수군이 전력 면에서는 월등히 앞서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당시 서양의 레판토 해전이나 칼레해전의 규모 등을 비교해 보면 이들과 붙어도 전혀 꿀릴 것은 없었으리라.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에 대해 말하면 고니시 유키나가의 간계에 걸려든 선조와 조선 조정, 그리고 거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이순신 장군 자신의 행동 때문에 삭탈관직 되는 것이지, 원균 장군의 모함으로 그렇게 된 점이 아니라는 점과 이순신 장군의 첫 해전인 옥포해전 승리 후 이순신 장군이 원균 장군이나 그의 부하 장수들은 거의 언급을 안 하고 모든 공적을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로 만들어서 올린 장계 때문에 둘 사이가 틀어졌다는 점 등 이 모든 면이 그도 한 사람의 인간이었던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할 수는 있겠지만, 장군의 가치를 떨어트리거나 명예를 훼손시키지는 못한다.
영웅은 꼭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 필요는 없다. 매번 패하다가도 그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전투에서 단 한 번의 승리로도 충분히 역사에 남을 영웅이 되고도 남는다. 이순신 장군에게는 그 전투가 바로 명량해전이었다. 트라팔가르해전의 넬슨 제독과 행주대첩의 권율 장군처럼 명량해전의 승리 하나만 가지고도 이순신 장군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영웅이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조일전쟁을 극복해 낼 수 있었던 힘은 이순신 장군 한 사람의 업적 때문만이 아니라, 거기에 명의 원군과 의병의 활약, 즉 이 삼박자가 고루 활약을 해주었기에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저자는 절대 승리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한국전쟁을 떠올려 보라. 조일전쟁과 한국전쟁은 그런 면에서 유사한 점이 꽤 있는 것 같다. 두 전쟁의 최대 공통점은 정부의 무능한 정책으로 아무것도 몰랐던 죄 없는 백성만 피똥 싸며 고생했다는 것.
이와 더불어 불패의 정기룡 장군, 의병장 곽재우, 진주대첩의 영웅 진주 목사 김시민, 같은 숨겨진 영웅들의 활약과 선조와 그 간신들의 무능하고 비겁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의병장 김덕룡, 김명원의 무고로 참수된 신각 등 여러 인물의 상황과 전후 사정을 통해 조선 양반 사회에 뿌리내린 성리학의 고질적인 병폐인 명분만 내세우다 현실에서 괴리된 지도층의 사상과 행동 등의 문제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조선 사회뿐만 아니라 일본 전후의 사회 모습도 설명해 주고 있어 조선전쟁을 좀 더 포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재미있고 쉽게 정독할 수 있는 괜찮은 대중 교양 역사서임은 분명하나, 아무리 무능하고 욕을 먹을 만한 짓을 했더라도 자꾸 등신, 등신 선조를 부르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런 식으로 좀 과격하고 험한 말로 이야기의 끝이나 중간에 아주 개인적인 언사를 내뱉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것 같아 속이 후련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특히 어린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이 책을 본다고 생각하니 민망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적인 술자리에서나 허용될 것 같은 그러한 거친 언사가 결국 이 책의 전체적인 질을 떨어트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조일전쟁에 관련된 많은 내용이 폭넓게 포함되어 있지만, 전에 읽었던 다른 대중교양역사서처럼 전체적인 구성은 그리 깔끔하지는 못한 편이다. 군더더기가 좀 있다고 할까나. 그리고 한 맺힌 울분을 토하는 정의에 불타는 저자의 언사는 강단에서는 말발이 아주 잘 섰을 것 같다. 문제는 책도 그런 식으로 집필한 것이 아닐까? 독자들이 이 점을 고려해서 읽는다면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진부적인 말이지만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대비한다는 이 말이 왜 이렇게 우리 모두에게는 와 닿지 않는 걸까. 일본을 봐라. 국민의 독서량 좀 떨어졌다고 걱정이다. 우리는? 돈 버는 책이나 입사, 진급에 관한 책을 제외하고는 도통 책을 읽지 않으니 걱정할 것도 없다. 메이지 유신 이후 발 빠른 신문의 보급과 더불어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이 무려 20만 부나 판매되었다 한다. 이런 꾸준한 독서열이 오늘날의 경제 대국 일본의 원동력이다. 돈? 로또라도 당첨되면 하루아침에 부자는 될 수 있다. 하지만, 뛰어난 천재가 아닌 이상 하루아침에 수백 권의 지식을 습득할 수는 없다. 그렇게 보면 일본은 이미 우리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앞서 있는 것이 된다. 시작이 반이라고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TV, 스마트폰, 컴퓨터 등에 시간을 뺏기지 말고 독서에 관심을 둬라. 부모가 맨날 TV나 보고 자빠져 있는데, 자녀가 뭘 보고 배우겠나.
부모나 조상 세대들이 일본에 대해 악감정만 품고 옹졸하게 욕만 하던 시대는 충분하지 않았던가. 이제 욕은 그쯤에서 멈추고 그들보다 조금 더 배웠다고 자부하는 우리는, 비록 그 대상이 일본일지라도 그들에게서 배울 만한 점들은 모조리 배우고 다듬어 언제가 그들을 뛰어넘게 되는 날을 위해 튼튼한 기반을 다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용서하자는 말은 아니다. 이미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슬픈 과거를 직접 보고 겪었던 세대는 이미 흙이 되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교과서의 단 몇 페이지만이 배움의 전부였던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설령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더라도 아직은 그들을 용서해 주어서는 안 된다. 용서하는 순간 과거는 잊히기 마련이고, 그들은 다시 과거의 비뚤어진 영광을 되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린 또다시 잊힌 과거를 떠올릴 만한 절대 반갑지 않은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워하고 증오하자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들이 우리에게 기꺼이 선사했던 끔찍하고 피비린내나는 과거에 대해 만족할 만한 진실을 알게 될 때까지, 그들이 수긍할 만한 해명을 할 때까지 용서는 아직 때가 이르다. 그 거룩한 역사적 사명은 우리가 남긴 유산을 토대로 조금 더 많이 알게 되고, 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후손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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