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 톨스토이 | 자기모순적 소년의 성장이 잉태한 성찰의 고귀함
원제: Отрочество(Boyhood) by Leo Tolstoy
원래는 유년시절, 소년시절, 청년시절 3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도서관 책장을 뒤지다 눈에 띄어 별생각 없이 대출해놓고 보니 예전에 대출한 적이 있었던 책이다. 다만, 출판사만 달랐다. 워낙 오래전에 봤던 작품이라 그런지 감흥은 고사하고 처음으로 대면하는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읽고 나니 언젠가 한번 읽은 듯한, 너무나 아득하고 희미한 기억이라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각 에피소드 중간마다 약간의 친근감을 찾을 수 있었다.
작품 『유년시절』 속으로 들어가 보면 크게 줄거리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작가의 자서전적인 어린 시절의 회상으로서, 특별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는 않지만 니콜레니카라는 작가를 상징하는 소년의 솔직 담백한 시선과 마음을 통하여 그날그날의 일상적인 삶의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심플 스토리』를 연상시킨다고 할까? 하지만, 단순하고도 평범한 이야기에서 시적인 감흥과 예술적 성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작가의 천부적인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주인공 소년의 10살 무렵에서 대학 입학하고 2학년 진급 시험에 낙제하는 16살까지 기록된 이 작품의 전체적 의도는 『장년시절』이 포함된 4부작으로 계획된 작품이지만 아쉽게도 마지막 부분은 완성되지 못한 채 작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청년시절』의 마지막 장에서 니콜레니카는 낙제를 경험함으로써 교만했던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새로운 규칙도 배반하지 않겠고 다짐하는 장면에서 마무리되는 점과 실제 그 시기에 작가의 삶을 회상해 본다면 미완성 된 부분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어느 정도 상상해 볼 수는 있다.
단순하고도 깊이와 아름다움이 있는 이 작품에 대해 지금까지 떠든 내용만으로도 부끄럽고 고개가 숙여지지만, 꼭 한 번쯤 읽어야 할 너무나도 좋은 작품이기에 조금 더 생각나는 데로 적어보기로 하자. 그럼 왜 이 작품을 읽어야 하고 우리는 이 작품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몇 자 적어 보면,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위대한 작가의 꾸밈없고 숨김없는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다.
아름답고 한적한 시골 영지에서 공상과 상상 속에서 자란 철없던 소년에게 대학 준비를 위해 모스크바로 이주하고 새 친구들을 만나는 새로운 경험은 내면의 성장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를 통해 소년은 ‘예의 바른 인간’, 즉 도적적 완성을 향한 이상을 가지게 되는 동시에 실생활에서는 오만하고 거만한 행동과 언행으로 타인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청년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내재한 선과 악의 공존과 갈등의 모순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적나라하고 엄격한 자기비판을 통한 자기성찰의 과정은 이 작품을 예술적 완성으로 도달할 수 있게 한 점이 아닌가 싶다. 겉으로는 거만하고 허영으로 가득 찬 모습이지만 사실은 순진하고 솔직한 내성적인 소년의 내면은 도덕적 이상을 향한 끊임없는 열정이 끓어오르는 활화산과 다름없다. 이렇게 자기모순적인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이상과 행위의 불일치로 말미암은 낙심과 회의, 성찰을 통해 독자들도 뭔가를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유년시절』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여기서부터는 잡담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내 나름대로, 어설픈 지식을 총동원하여 한국에 톨스토이 문학이 다른 서구작가들보다 빨리 알려지고 정착하게 된 계기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일단 한국의 해방 전 근대문학 작품을 읽게 되면 많이 거론되는 작가가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다. 해방 전 작품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혹은 지식인들이나 좀 배웠다고 하는 인물들이 알은 채 하고자 거론하는 작가나 작품으로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혹은 그들의 작품들이 등장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해방 전 이미 어느 정도 알려졌던 것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당시 일본에서 사회주의 열풍으로 러시아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러시아 문학도 같이 일본에 넘어왔을 테고, 일본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던 조선의 지식인들이나 사회주의 작가들의 영향으로 조선 사회에 소개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미 조선도 카프의 결성으로 사회주의 흐름을 타고 있었던 만큼 젊은 청년들이나 지식인들에게 10월 혁명이 성공한 러시아는 동경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러시아 작가들이 조선에 들어온 것도 그 흐름의 하나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내가 아는 대로 한 번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가 7살 많은 형이었지만, 둘 사이에 교제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톨스토이는 백작 집안의 귀족으로 태어났고, 도스토옙스키는 의사 아들로 태어났지만, 죽을 때까지 가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톨스토이가 크게 상심했다고 한 것을 보면 톨스토이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재능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작가의 명성을 생각하면 도스토옙스키의 가난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실제 그 시기에는 도스토옙스키보다는 톨스토이가 대중적인 작가로 크게 성공했었고, 그 차이는 원고료로도 쉽게 비교할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프스까야가 지은 『도스또예프스끼와 함께한 나날들』을 보면 톨스토이는 인쇄 지면 한 페이지당 200루블 정도의 고료를 받았고, 도스토옙스키는 절반도 안 되는 50루블 정도밖에 못 받았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생각보다 적게 받았던 이유는 그 시대의 비평가들이나 편집자들에게 크게 인정을 못 받은 것과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일, 그 이후 계속된 실패와 자신의 경제적 사정을 알고 있던 편집자들의 횡포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또한,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에 이미 방탕한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자신의 도덕적 이상의 완성을 위한 선구적인 길을 간 반면에 도스토옙스키는 도박의 늪에서 늦은 시기까지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나마 말년에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고 하지만 헌신적인 아내 안나 덕분에 사후에야 모든 빚을 갚았다고 한다.
두 거장의 작품을 생산하는 스타일도 판이하게 틀리다. 톨스토이는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글을 쓰고 꼼꼼하게 교정하는 노력형이라고 볼 수 있고, 반면에 항상 마감과 돈에 쫓겼던 도스토옙스키는 한 번 솟아난 영감으로 한 작품 전체를 구술해 버리고 나서는 일절 돌아보지 않는(항상 쫓기다 보니 교정할 시간도 없었겠지만) 천재형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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