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존스 | 헨리 필딩 | 위선을 읽다
헨리 필딩의 『톰 존스(The History of Tom Jones, a Foundling by Henry Fielding)』는 따로 추천사가 필요없는 고전 명작이다.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은 어느 세대에게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나 화두를 내놓기에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인정받고 사랑받는다고 한다면, 헬리 필딩의 『톰 존스』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심오한 한마디를 선뜻 내뱉는가 하면, 철학자들이나 다룰 법한 고리타분한 재료를 가지고 여러 요리를 선보일 거라는 예시, 그리고 신물 나게 덕성을 강조하는 작가의 주장을 독자는 서두에서부터 마주치게 된다. 얼핏 말 많은 목사처럼 도덕과 양심, 윤리를 강조하고 설교하는 고루하고 따분한 내용은 아닐까 걱정이 들 수도 있지만,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어느 정도 책을 읽고 나면 『톰 존스』가 18세기에 쓰인 책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품에서 표출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다양한 요리들은 현대인의 삶에 풍부한 영양분을 제공해 준다는 걸 깨닫게 된다. 각 권 앞에 있는 서론들은 건너 띄고 읽어도 무방하겠지만, 마음의 양식을 뛰어넘어 뭔가 더 얻고 싶은 독자라면 지루하더라도 한 번쯤은 꼭 읽어봐도 손해 볼 것은 없다.
필딩이 요리해 주는 다양한 인간 본성 중에서도 '위선'은 메인 메뉴로 등장한다. 위선 또는, '가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닌 그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사회의 각종 조직 속에서 접하게 되는 의무적이고 가식적인 친절. 부모 앞에서는 착한 아이나 학생처럼 행동하고, 타인 앞에서는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 직장에서는 괜찮은 직원, 또는 인정 많은 상사라는 말을 듣지만, 막상 집에서는 독재자처럼 군림하려는 아버지나 남편들. 헨리 필딩은 그런 위선을 '괴물', '혐오스러운 악'이라고 평가하지만, 현대인들은 처세술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로 덮어버린다. 친구 앞에서 행동이 다르고, 또 직장 동료 앞에서 행동이 다르고, 집에서의 행동이 다르다면 이 중에서 우리의 진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만약 배우자를 선택한다면 어떤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해야 할까. 위선이 일상화된 요즘 세상 속에서 사람들의 진짜 모습은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탐욕과 야망 속에 삼켜져 버린다.
어찌 되었든 분명한 건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위험한 사람일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렇다면 조심하게 접근하거나 되도록 피해야 할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품은 진짜 의도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이나 분별력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한 권의 책이 이 모든 걸 충족시켜 줄 수는 없지만, 인간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시간만큼은 충분히 제공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출판물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세종대왕처럼 죽을 때까지 책 속에 파묻혀 살아도 이 세상에 출판된 모든 책 중에서 극히 일부분의 책만을 읽을 수 있다. 고로 한 권을 읽는 시간이라도 낭비하지 않으려면 신중을 기해 책을 선택해야 할 것이고, 그래서 난 최근의 출판된 작품보다는 시간의 무게를 이겨낸 고전이나 근대문학을 더 선호한다. 물론 현대문학에서도 『톰 존스』처럼 명작으로 남을 작품들이 나오겠지만, 그런 명작은 공장에서 찍어대는 상품처럼 매년 쏟아지는 책 중에서 불과 몇 작품 안될 것이고, 그런 작품을 판단하고 찾아내기에는 나의 안목이나 능력이 많이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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