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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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의 조가비 | 한숨의 불협화음

Seashells on Qingdao Beach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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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의 조가비 | 라오서 | 조가비 속에서 들려오는 한숨의 불협화음

“나는 그들의 악행들을 알죠. 그들은 선물 ᅳ 뇌물을 받으며 장사하는 사람을 억압하죠. 그들은 밀가루를 ‘헤로인’으로 둔갑시키고, 그들은 구휼미 도급을 맡아서 …… 나는 다 알아요. 내가 만약 그들의 비리를 누설하면, 총살감이에요, 총살!”(『칭다오의 조가비』, 「신시대의 구비극」, p113)
이상이란 아마 영원히 실제 생활과 일치될 수 없으며, 원앙새의 다채로운 깃털처럼 자연스럽게 조화미를 배합하듯이, 철학자일지라도 그의 인생철학과 일상생활을 완전히 하나로 연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칭다오의 조가비』, 「새로운 햄릿」, p184)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전 이미 「인력거꾼(혹은 낙타 샹쯔)」이라는 작품으로 서방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작가였던 라오서(老舍)와의 첫 만남이다. 라오서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해리슨 E. 솔즈베리(Harrison E. Salisbury)의 『새로운 황제들(The New Emperors: China in the Era of Mao and Deng)』(박월라 • 박병덕 옮김, 다섯수레)를 읽다가 문화대혁명의 광풍에 휩쓸린 끝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라오서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베이징에 살던 라오서는 홍위병에게 끌려가 구타를 당하고 1966년 8월 25일 타이핑 호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홍위병에게 살해당하고 호수에 버려진 거라는 소문도 있었으나 솔즈베리는 호숫가에서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그의 손에 무언가 쓰다 남긴 종잇조각이 쥐어져 있었다는 점과 8월 24일 ‘한 늙은이’가 종일 벤치에 앉아 있었다는 타이핑 공원 수위의 증언을 근거를 라오스가 자살했다는 설에 무게감을 둔다. 그가 죽은 후 수개월 동안 타이핑 호수에서는 상당히 많은 시체가 건져졌으며, 호수는 라오서가 죽은 후 도시 개발 과정에서 메워졌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나서 라오서의 소지품들은 모두 가족에게 돌려주었으나 그 종이는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예감한 라오서가 마지막으로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놓았다면, 이제는 그 종이에 적힌 내용은 그가 생전에 남긴 작품들로부터 유추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라오서의 중단편집 『칭다오의 조가비(Seashells on Qingdao Beach, 蛤藻集)』는 1930년 영국에서 귀국한 저자가 1937년까지 머물렀던 칭다오에서 남긴 작품으로 약삭빠른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잠식당하는 전통적 가치관(「오래된 상점」), 과거의 위세를 가슴 속에 묻은 채 은거하는 고수(「단혼창」), 흑심을 품지 않았기에 오히려 출세할 수 있었던 기가 막힌 처세술(「들은 이야기」), 한 가족의 위기와 기사회생에서 드러나는 이해타산적이고 기만적인 사회(「신시대의 구비극」), 자신의 딸에게 타도 당하는 매국노(「방안에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짓눌려 허우적대는 나약한 지식인(「새로운 햄릿」),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자기 기만적이고 계산적인 처세술이 부른 가난한 인력거꾼 아들의 죽음(「부고」) 등 1편의 중편과 6편의 단편이 들어 있다. 최하위층인 인력거꾼부터 점원, 은둔 고수, 지배 계급, 관료, 지식인, 상인, 지주 등 다양한 사회 계층 인물들의 일상과 소문, 신념, 계층과 세대 간의 갈등과 대립을 통해서 산업화와 자본주의화가 가져온 몰인정한 변화 속에서 부침하는 중국 사회의 단면을 소박하게 담아냈다.

Seashells on Qingdao Beach
<칭다오 해변>

『칭다오의 조가비』란 제목은 칭다오 해변에서 어린 딸의 손을 잡고 해변을 걷으며 모래밭에 별처럼 점점이 박힌 조가비를 줍는 평온하고도 아름다운 일상을 속에서 비롯되었다는 하지만, 그 크고 작은 조가비의 매끄러운 속껍질에 투영되는 작품들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한가로이 해변을 걷는 부녀의 모습처럼 마냥 평온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가만히 조가비에 귀 기울여 보면 제철소의 용광로도 식혀버릴 것 같은 차갑고도 묵직한 한숨이 조가비의 차가운 표면을 타고 귀를 통해 냉랭하게 전해져 온다.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옛것과 지나간 옛 영광에 대한 안타까움의 한숨,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민들의 서러움과 고통에 찌든 한숨, 인민의 등골을 뽑아먹고 사는 자의 포식에 겨운 한숨, 현실 도피적인 지식인의 자조 섞인 한숨 등 각양 각층이 만들어내는 한숨의 불협화음은 『칭다오의 조가비』 속에 진주처럼 숨겨진 중국 인민의 피와 땀, 인고의 세월이 응축된 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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