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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1일 일요일

[책 리뷰] 집착의 자학(自虐)과 중도(中道)의 여유 ~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류전원)

I am Not Madame Bovary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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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의 자학(自虐)과 중도(中道)의 여유

원제: 我不是潘金莲 by 刘震云
“소가 나한테 고소하지 말라고 한 것은 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그런 거예요. 여러분이 나한테 고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날더러 계속 억울한 마음을 품고 살라는 것이니 다를 수밖에요.”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 205쪽)

이머우(张艺谋) 감독의 『귀주 이야기(秋菊打官司, 1992)』에서 시골 아낙네 귀주는 남편이 이장에게 맞은 사건을 지방 공안부터 시작해 시를 거쳐 결국 베이징까지 가지고 가 고소한다. 귀주가 그토록 남편이 맞은 일에 매달렸던 것은 단순히 물질적 보상을 바란 것이 아니라 이장의 진심이 담긴 사과 한마디를 받고 싶어서다. 그녀로서는 사과 한마디면 한 푼의 보상금 없이도 이장을 용서할 수 있는데, 동네 유지로서, 그리고 관리로서 체면을 중시하는 이장은 보상금을 줄 용의는 있지만, 새파란 시골 아낙네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결국, 이장은 폭력을 휘두른 대가로 응당 오랏줄에 묶이는 신세가 된다. 철창으로 끌려가는 이장을 보며 귀주도 놀라 허겁지겁 뛰쳐나가지만, 이미 사건은 그녀의 손을 떠나 걷잡을 수 없이 커졌기에 인제 와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지만, 경직된 관료주의와 공연한 체면치레는 작은 눈송이를 거대한 눈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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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手机)』의 저자 류전윈(刘震云)의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我不是潘金莲)』에 등장하는 리설련의 가짜 이혼 사건도 귀주와 비슷한 진퇴양난과 우여곡절의 심란한 과정을 거쳐 베이징까지 도달한다. 그녀가 진과 현, 그리고 시를 거쳐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극적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에까지 엮이면서 한 농촌 여자의 극히 개인적이고 작은 일이었던 이혼 사건은 참깨에서 수박으로, 개미에서 코끼리로 변한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인민의 마음을 헤아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보다는 직업의 귀천을 가리고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를 타듯 인민을 타고 노는 재미에 길든 관리들은 그 누구도 리설련의 하소연을 귀담아듣지 않고 내버려두다가, 리설련의 기막힌 사정이 한 영도자의 귀에 들어가자 거인이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크게 다친 것처럼 사건에 연루된 고위 관리들은 줄줄이 사탕으로 파직당한다. 그럼에도, 어떻게 된 일인지 리설련의 이혼 사건만은 해결되지 않는다.

여전히 억울함을 풀지 못한 리설련은 이후에도 20년 동안이나 고소한다고 난리 치며 사건에 엮인 관리들을 좌불안석 불안에 떨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키우던 소가 남긴 기특한 유언 한마디를 귀담아듣고 나서는 더는 고소를 안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이것이 또 하나의 발단이 되어 또다시 참깨가 수박이 되고 개미가 코끼리로 변한다. 한때 베이징까지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녀가 더는 고소를 하지 않겠다면 법원장이나 현장, 시장 역시 더는 그녀 때문에 잘릴까 봐 두려움에 떨 필요도 없으니 이보다 좋은 일은 없다. 그런데 애초 리설련의 문제가 그녀의 진심을 믿지 않았다는데서 시작되었듯, 이번에도 관리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 거머리처럼 끈덕지게 그녀의 의중을 떠보던 관리들은 마침내 각서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또다시 그녀의 분노는 폭발하고 만다. 그녀는 관리들의 집요하다 못해 악착스럽기까지 한 각서 요구에 질린 나머지 고소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번복한다. 관리들은 그녀의 변심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탄식하기보다는 ‘그러면 그렇지!’라며 이제야 일이 바로 잡혔다는 듯 한시름 던다.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는 리설련의 가짜 이혼 사건이 참깨에서 수박이 되고 개미가 코끼리로 변해가는 웃지 못할 일화를 통해 인민 대중의 애환과 고통을 마음에 담아 두기는커녕 억울함을 호소하는 가난한 농민에게 폭언을 서슴지 않고 하늘이 무너져도 자기 자리만 시키려는 사심에만 눈이 먼 관리들을 에둘러 비난하는 영악한 풍자가 유쾌할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이름 풀이와 실제 행동을 대치시킨 언어유희도 재밌는 소설이다.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는 일상의 사소한 사건이 경직된 관리주의라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고 그곳에서 보신에만 연연하는 관리들과 맞닥트렸을 때, 간단히 해결될 수 있었던 사건이 어떻게 오도되고 변형되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거대한 사건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리설련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통해 실제 삶이 돌아가는 어처구니없는 원리를 은유하고 있다 .

그러나 고난의 행군인 대장정 같은 리설련의 20년 고소 인생을 통해 독자가 가장 크게 느끼는 바는 바로 다름 아닌 중도(中道)의 마음가짐이 가져오는 삶의 안정일 것이다. 그녀처럼 20년이나 넘게 억울함을 안고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삶이고 그럼으로써 그녀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한쪽으로만 지나치게 마음을 두지 않고, 너무 한 가지 일에만 지나치게 몰두하지 않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삶의 여유와 평안, 즉 리설련 때문에 억울하게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역시 그녀 덕분에 중도의 삶을 배우게 된 전(前) 현장 사위민처럼, 그리고 그녀의 동창 조대두의 말처럼 고개를 돌리면 거기가 피안(彼岸)이다 . 참고로 류전원의 소설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는 판빙빙이 주연하는 영화 「아부시반금련(我不是潘金莲, I am Not Madame Bovary, 2016」로 제작되었다. 보고 싶은데 한글자막이 없다. 이 기회에 아주아주 오랜만에 자막이나 만들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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