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 이야기(秋菊打官司, 1992) | 사과만 받으려고 한 건데
"난 돈은 안 바래요. 옳고 그름을 원해요" - 귀주
"옳다니? 내가 꿀린 것 같아?" - 이장
새색시 귀주는 남편이 이장과의 말다툼 끝에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치자 시내의 리 공안을 찾아가 이장의 잘못을 호소한다.
리 공안은 이장이 폭력을 쓴 것은 잘못이지만, 관리로서, 그리고 마을 유지로서 체면이 있기에 이장이 주는 보상금을 받고 일을 마무리하라고 중재한다.
하지만, 귀주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이장의 진심이 담긴 사과 한마디였다. 리 공안의 중재에 만족하지 못한 귀주는 임신한 몸을 이끌고 지방 공안, 시 공안을 거쳐 결국 베이징까지 가 재판을 건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중국 특유의 관료주의와 그 영향력 아래에서 부침하는 귀주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사실주의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또한, 체면을 매우 중시하는 중국인의 특성이 매우 잘 나타나 있기도 하다. 그래서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주라는 말이 있는 것 아닌가. 한편으로는 사건을 돈으로 대충 얼버무리려는 이장의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사과 한마디로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귀주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대립시킴으로써 개혁 • 개방이 인민들에게 끼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장이 끝내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이장이 인격적으로 미흡한 인간이라기보다는 관리로서, 마을 유지로서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전통적 가치관의 반영이며, 이것은 관리로서의 위엄을 지키는 공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장은 귀주의 행동으로 불편한 심기를 보이기는 하면서도 원한은 품지 않는다. 이장은 영화 후반부에서 자신을 고소한 귀주의 출산을 적극적으로 도와 그녀와 갓 태어난 그녀 아들의 생명을 구하면서도 고소하려면 하고 항소하려면 얼마든지 하라고 다그친다. 사적인 일상에서는 얼마든지 양보하고 친절을 베풀 수 있지만, 공적인 일에서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그는 이장인 것이다. 또한, 귀주가 만난 지방 공안이나 시의 고위 관료에게서도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위압적인 모습은 없다. 베이징 시의 얀 국장은 친절하게 관용 차량으로 귀주를 숙소까지 태워주거나 음식을 대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도 관료주의적 타성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즉, 그들이 관료로서의 인성이 부족하기보다는 체제가 그들을 관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 같으면 피고인 • 고소인 관계가 한번 성립되면 피고인 • 고소인의 다른 가족이나 친척들은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더라도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장네 가족은 자신들의 가장을 고소한 귀주가 사건 때문에 집안을 들락거려도 꺼리기는커녕 예전처럼 변함없이 다정하게 받아들인다. 여기서도 공과 사는 엄격히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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