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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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 | 역사소설의 진국

Zhuge Liang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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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 | 진순신 | 역사와 문학적 상상력이 맺은 역사소설의 진국

공명은 자신의 지향과 유비의 지향이 거의 같은 방향에 있지만 다소 다른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한나라의 부흥에 공명은 그다지 열렬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천하 통일’이었다. 천하 인민의 평화를 위해서 통일이 요구된다면 천하를 통일하는 자가 유씨劉氏의 황통이 아니라도 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코 조조가 되어서는 안되었다. (p406)

역사소설 같지 않은 역사소설?

광활한 중국을 무대로 한 무협소설의 대가(大家)로 김용(金庸)이 있다면, 역시 같은 무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의 대가에는 진순신(陳舜臣)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사소설 같지 않은 역사소설 『제갈공명(諸葛孔明)』은 당대 최고의 중국역사문학가로 평가받는 진순신의 명성에 과히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소설 『제갈공명』을 ‘역사소설 같지 않은 역사소설’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첫째,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는 달리 철저한 고증과 참조할 수 있는 모든 사료를 기반으로 해서 빚어진 작품이니만큼 역사를 읽는 진중한 맛이 있으면서도, 둘째, 사료로는 채울 수 없는 이 빠진 듯한 공백들을 매끄럽게 메운 진순신의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즉, 역사소설에 평균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고증의 깊이, 혹은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서술했느냐는 보편적 잣대를 훌쩍 뛰어넘으면서도 소설과 책 읽기의 재미를 잃지 않는 고품격 역사소설이라는 말이다.

보통 역사소설은 역사에 충실하다 보면 이야기의 흐름이 딱딱해지기 쉽고, 반대로 허구에 충실하다 보면 진중한 맛이 떨어지기 십상인데, 앞서 말한 대로 진순신의 역사소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읽기 쉬운 소설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고 싶은 호기심 많은 독자에게도, 역사와는 상관없이 단순히 재밌는 책을 읽으면서 지루한 시간을 이겨내고 싶은 독자에게도 고루 호소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모든 것 즉, 진순신의 소설이 역사에 충실하면서도 소설적 창작성과 개연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로는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진순신의 문학적 상상력 자체가 역사에 정통한 학문적 토양 위에서 피어올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하기에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빈약한 사료와 시대적 간극이라는 고충을 유연하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 소개된 진순신의 작품은 비단 『제갈공명』뿐만 아니다. 무수히 많은 그중 전자도서관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는 책이 하나 있다.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사기』를 한 번에 엮은 동양 최대의 역사서인 『십팔사략(十八史略)』을 방대한 역사소설로 재구성한 『소설 십팔사략』이라는 작품이다. 무협지처럼 긴 작품(8권)이라 선뜻 손이 가지는 않지만, 날을 잡아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제갈량이 ‘천하통일’로 얻고자 했던 것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제갈량(諸葛亮)을 뛰어난 군사 전략가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제갈량은 군사 전략가로서의 재능만큼이나 내정, 즉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에도 밝았는데, 진순신의 소설은 이러한 점을 분명히 밝히려고 했던 것 같다. 만약 제갈량의 평범함을 뛰어넘는 치정 능력이 없었다면, 천하삼분(天下三分)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천하삼분이 가능해지려면 촉나라는 군사력으로나 경제력으로나 최소한 오나라에 맞먹는 능력을 갖추어야 했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이가 바로 제갈공명이다. ─ 유비(劉備) 사후 벌어지는 ─ 제갈량의 1차 북벌 실패, 그리고 이후 4차까지 무리하게 강행된 북벌, 그뿐만 아니라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운명을 다했음에도 이후 무려 30년 동안이나 촉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제갈량이 내정을 튼실하게 쌓아 올렸기에 가능했다. 비록 제갈량의 꿈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의 이상을 향해 충절 한 톨 잃지 않고 머리카락 한 올까지 기꺼이 불태웠다는 점에서,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칭송받아 마땅한 위인 중의 위인이다.

그렇다면, 진순신이 소설을 통해 그려내는 제갈량의 이상은 무엇일까? 소설에서 제갈량은 유비 진영에 합류하기 전, 그러니까 양양 근처 융중에서 친구 서서(徐庶), 최주평(崔州平) 등과 천하의 일을 담론할 때 종종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밝히는데, 그것은 스스로 군주가 되어 천하를 평정하는 것보다는 제나라 환공(桓公)을 보좌하면서 나라를 초월한 단결과 일체감을 일궈낸 관중(管仲)을 본받고 싶어 했다. 난세에 태어난 제갈량은 고통받는 천하의 인민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받치고 싶었고, 관중이 환공을 보좌하듯 유비를 섬겼다. 그는 유비가 찾아오기 전부터 이미 이러한 포부를 품고 있었으니, 그 포부를 위해 제갈량이 유비를 선택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즉, 제갈량은 천하 통일의 대업을 달성해서 전란으로 끊임없이 고통받는 인민을 위무하고 인민에게 평화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갈량이 섬길 군주는 꼭 유비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천하를 통일할 자격을 갖춘 영웅이라면 제갈량은 누구라도 섬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제갈량은 조조를 선택하지 않고, 유비를 선택했다. 만약 제갈량이 조조를 선택했다면, 그의 능력은 지기인 서서뿐만 아니라 조조 밑에 있던 순유, 순욱, 곽가, 가후 등 내로라하는 책사들의 능력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조조에게 엄청난 경쟁력을 가져다줬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위나라의 천하 통일은 더욱더 빨리 이루어졌으리라.

조조가 아닌 유비를 선택한 제갈량

제갈량 역시 조조(曹操)가 걸출한 위인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어렸을 때 겪은 단 하나의 사건이 제갈량의 신념을 굳힌다. 그것은 조조 같은 사람은 천하를 통일할 자격이 없다는, 제갈량이 죽을 때까지 고수하게 될 신념이었다. 14세 때 고향을 떠난 제갈량은 숙부를 따라 양양으로 향했는데, 그때 일행은 하비를 지나가면서 조조의 만행이 나은 참담한 결과와 마주치게 된다. 조조는 아버지 복수를 위해 서주를 토벌했는데, 복수심에 눈이 먼 나머지 복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백성까지 잔혹하게 학살하고 마을을 깡그리 불태웠다. 제갈량은 아버지를 위해 복수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백성까지 도륙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이 일은 이후 제갈량의 마음속에 선명하게 각인되면서 조조를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게 된다. 제갈량의 생각으로는 만약 조조가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면, 제2의 시황제가 되어 천하 인민을 핍박할 것이 틀림없었다. 실상은 제갈량의 걱정과는 꽤 달랐지만 말이다.

제갈량이라고 유비의 모든 점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유비가 유표가 지배하는 형중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 제갈량은 유비에게 이미 인심을 잃은 유표를 치고 형주를 차지하라고 권한다. 유비도 제갈량이 말하고자 하는 대의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오갈 데 없는 어려운 처지였을 때 은혜를 입은 유비로서는 차마 유표를 배신할 수 없었다. 제갈량은 사사로운 의리와 정에 연연하는 유비가 못마땅했지만, 한편으론 그런 점에 매료되어 유비를 선택했다. 유비에게는 조조에게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덕’과 ‘정’이다. 이 두 미덕은 난세에는 군주가 과감한 결단력을 내려야 할 때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천하가 통일되고 안정되었을 때는 군주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미덕이기도 하다. 나머지 유비의 부족한 점은 제갈량 자신이 보충하면 될 터였다. 제갈량은 그렇게 미래까지 생각하고 끝까지 유비를 따랐던 것이리라. 유비의 따뜻한 미덕과 제갈량의 냉철한 지성이 조화를 이룬다면 천하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천하삼분으로 잠시나마 안정을 구할 수는 있을 터였다. 제갈량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제갈량은 그것을 이루어냈다.

여전히 ‘제갈량’을 읽어야 하는 이유

천하의 제갈량이라도 빈틈이나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장점과 뛰어난 능력, 여기에 성인과 비교할 수 있는 청렴한 인품까지 갖춘 그였지만, 일면 그도 미완성의 사람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전투에서 패했다. 하지만, 패배의 책임만큼은 절대 회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책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만천하에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질책할 정도로 원대한 포부만큼이나 보기 드문 큰 그릇을 지닌 인물이다. 동료나 부하로부터의 직간도 달게 받았다. 한마디로 나라에 충성하는 데 필요한 미덕과 능력을 고루 갖춘 비범한 인재 중의 인재였다. 그는 나라나 군주에게 이롭게 충성하는 데 인재를 천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 그가 인재를 활용하는 가장 적극적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 배치를 소홀하게 여겼을 리는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갈량의 큰 실패 두 가지가 바로 인사 배치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제갈량은 관우(關羽)가 형주에서 오나라 세력과 대치하고 있을 때, 아랫사람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관우가 사대부나 윗사람에게는 까다롭다는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강릉 태수로 미방(糜芳)을 임명했다. 가뜩이나 평소에 사이가 안 좋았던 두 사람이었기에 이러한 인사 배치는 사전부터 불안한 요소가 가득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관우가 미방으로부터 군량 보급을 거절당하자 손권의 영토인 상관(湘關)의 군량을 털게 되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관우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로부터 유비 세력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준 이릉 전투가 발생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제갈량은 마속에 대해 “말이 실제보다 과하오. 크게 쓸 인물이 아니오”라는 유비의 유지가 있었음에도 1차 북벌 때 마속의 능력을 과대평가했다가 가정 전투에서 낭패를 본다. 동료의 만류에도 제갈량은 법에 따라 마속을 처형하고, 이로부터 신하를 법대로 처단하여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뜻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사자성어가 유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인사 배치에서 개개인의 능력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인품이나 성격,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발생할 수 있는 인물들 사이의 마찰이나 경쟁, 대립 구도도 사전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임을 시사한다. 그런 점 때문에 제갈량을 다룬 이야기가 인사 배치의 중요성이 주목받는 현대의 기업 • 국가 경영에서 반드시 읽히는 전략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제갈량의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인품과 사심 하나 없는 청명한 이상이지 않을까 싶다. 더럽고 야비한 수단으로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쌓는 일이 비일비재한 요즘 같은 세상에서 앞서 말한 제갈량의 공명정대한 미덕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아직 제갈량을 읽는다는 것은 시궁창 속에 살면서도 깨끗함의 미덕을 잃지 않으려는 무의식적인 발악이 우리의 의식과 양심 속에 희미하게나마 존재한다는 방증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시가 절로 읊퍼지는 절경>

‘제갈량’을 읽고 무엇을 느낄 것인가?

어떻게 보면 제갈량은 다정다감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사람을 마냥 무시한다거나,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데면데면하게 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예의범절과 사리에 밝았지만, 언제나 대의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에 있었기에 사사로운 정에 연연할 수가 없었다. 아니 연연해서는 안 되었다. 그런 사람은 유비 한 명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 기꺼이 소수를 희생시킬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한다는 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막상 그 소수를 앞에 두고 행동으로 옮기기는 절대 쉽지 않다. 머리는 행동으로 옮기라고 명령하지만, 가슴이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감정에 연연하여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응당 기회는 놓칠 수밖에 없다. 유비가 유표의 손에서 차마 형주를 빼앗지 못해 천하삼분의 시기가 늦어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인간으로서 응당 품을 수밖에 없는 감정조차 절제할 정도로 제갈량은 냉철하고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이자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하는 과감한 결단력의 소유자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공명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유비의 따뜻한 미덕을 통해 보완하고 싶었다. 냉철한 공명과 따뜻한 유비로 탄생한 중탕의 섭리는 전란으로 친지와 가족의 잇따른 죽음을 겪어야만 했던 인민의 분노한 마음을 식히면서도, 전란으로 삶의 희망을 잃은 인민들의 마음을 데워줄 것이었다. 천하 인민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고통을 위로하고 싶었던 제갈량의 그 절실함과 애통함이 진순신의 작품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을 휘감았다. 심금을 울렸다. 어느새 내 두 눈은 살며시 배어 나온 눈물로 침침해져 있었다. 흐릿해져 있었다. 감개가 무량했다. 아득한 옛일이 나의 마음을 사정없이 요동시키고 있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나는 읽으면서 이렇게 느꼈지만, 분명히 다른 누군가는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당연히 다르게 느껴져야 하고 그래야 좋은 작품, 좋은 책, 좋은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생각, 느낌, 감명을 주는 책은 삼류 소설이나, 아니면 특정 지식을 주입하는 확실한 목적의식 하나로 집필된 교과서나 가전제품 설명서, 자격증 참고서적 같은 책에서나 경험할 수 있다. 진순신의 소설 『제갈공명』은 역사이기에 앞서 한 편의 문학이다. 그러하기에 누구에게나 다르게 읽힐 여지가 충분하고 또한 그러해야 한다. 자, 당신은 제갈량에게서 무엇을 듣고 싶은가? 아니면 제갈량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이 책은 가상 인공지능 음성 비서 '샤오아이(XiaoAi)'처럼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적절한 것은 적절한 대로, 충분한 것은 충분한 대로 당신에게 제갈량을 이야기해 줄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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