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소사 | 이보가 | 그들도 우리처럼 단지 발악했을 뿐이다
“우리 중국인에겐 남의 잘못을 꼬집는 특출한 재능이 있지. 그건 마치 거울과 같아서 눈꺼풀 위의 흉터가 어떤 모양인지, 얼굴에는 어떤 자국이 있는지 거의 한 치의 차이도 없으니, 과거를 숨길 생각일랑 아예 단념해야겠지요. 그런데 자기 자신을 말할 때는 거울로 되비춰 보려 하질 않소이다. 그러니 자신의 얼굴에 얼마나 많은 자국과 흉터가 있는지 전혀 모르지요! 황 선배는 제가 말하지 않더라도, 부자들이나 중당(中堂) 또는 권세 있는 상서倘書)를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며 비위를 맞춥니다. ….” (p430)
갈팡질팡하는 그들을 보고 웃어야 하나?
이 책에는 대략 청일전쟁 이후부터 러일전쟁 초기까지 중국의 시대상이 총 60회에 이르는 일화들로 잘게 쪼개져 담겨 있다. 겉보기에는 잘지만 속은 야무지고, 야무지지만 지나치게 딱딱하지 않기에 독자는 술술 내리 읽히는 일화들 속에서 어렵지 않게 중국 근대화의 초상을 발견하게 된다. 『문명소사(文明小史)(이보가(李寶嘉))』라는 책 제목이 시사하듯, 그 초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이 아니라 작은 역사, 여태껏 역사의 주필에서 소외되고 외면받아온 우리 같은 작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휩쓸리게 된 ‘근대화’라는 격랑 속에서 거듭되는 부침을 겪는가 하면, 때론 삶의 전통적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생존 위기에도 직면한다. 그들은 본의 아니게 인생에서 커다란 도전이라 할 수 있는 ‘시대적 변화’와 맞닥트린다. 약삭빠른 누군가는 재빨리 유신(維新)파임을 자처하며 실속을 챙기고, 둔감한 누군가는 새로운 것을 대충 흉내 내기에도 진땀을 흘린다. 또 다른 고지식한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에 급급한 나머지 역성을 들며 변화에 반대한다.
이러한 사정은 비단 그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다. 과거 한때 변화에 앞장선 덕분에 지금은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면, 자신이 이룬 것을 지키고자 변화에 반대하기 일쑤다. 하지만, 혈기 넘치고 아직 이룬 것이 없어 입신양명의 꿈을 향해 내달리는 젊은이들은 누구보다도 변화에 앞장서며 새로운 기회를 갈구한다. 누군가에게 변화는 패배와 좌절을 예고하는 불행의 신호탄이지만, 누군가에게 변화는 성공을 속삭이는 듯한 달콤한 기회다. 변화가 몰고 오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이런 상황은 이보가가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산업혁명 이후 변화는 언제나 진행형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문명소사』에서 변화의 물살에 휩쓸려 아등바등하는 민초들은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웃어넘기자니 꼭 나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기분이 찜찜하고, 진지하게 묵상하자니 별것도 아닌 일에 괜히 똥폼 잡는 것 같아 별꼴이다.
지금 우리는 이보가가 살았던 시대의 흐름이나 결과를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문명소사』에 담긴 일화들을 여유롭게 읽어 내려갈 수 있고,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라고 경멸하며 웃어넘길 수도 있다. 무심한 누군가는 박장대소한다. 하지만, 태풍의 눈에 있는 사람이 태풍의 실제 위력을 감지하기 어렵듯, 매일매일 ─ 크든 작든 ─ 변화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 변화의 성질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생각해 봐라.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같은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조차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한 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일기장에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一 오후에 수영강습”이라고 적었다. 이 유명한 일화는 인류 최초의 세계대전이라는 대격변을 바로 코앞에 두고도 한 사람이 그 의미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이것은 미래 세대가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일지라도, 그것이 실제로 발생해 나타나는 시기에 사는 우리는 그 중요성을 인식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이러하니 현재 우리가 옳다고 판단하고 이것이 최선이라고 여기면서 행동한 모든 것들, 이 모든 것들이 미래 세대에게는 한낱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문명소사』에 등장하는 어쭙잖은 지식인과 고리타분한 관료들이 펼치는 난센스를 보며 실소를 터트리는 경솔한 상황과 진배없다.
단지 살아가고자 발악했던 것일 뿐이다!
우리에게 ─ 이미 여러 역사책 등으로 정연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 ‘근대화’라는 격변을 살아가게 된 중국인들이 유신의 언저리를 맴돌면서 펼치는 얼치기 근대화 담론은 포복절도할 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피식 멋쩍은 미소를 짓게 한다. 하지만, 그러한 행태가 나름의 살길을 모색하기 위한 방도를 마련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애착과 그 절실함에서 나왔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잠시 그들을 비웃었던 나를 꾸짖지 않을 수가 없다. 오만하게도 작금의 잣대로 그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삶의 굴레와 우여곡절을 제멋대로 재단한 자신의 얄팍한 지성이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현재의 어주리없는 지식으로 그들의 행태와 양식이 얼토당토않다며 비웃을 수 있지만, 그들에겐 우리에게 한낱 비웃음거리로만 보였던 그 모든 것들이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변화의 물살 앞에서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서의 대처이자, 하루살이처럼 위태로운 삶을 근근이 연명하고자 구두에 밟힌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몸부림치던 발악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매일매일 치열한 생존 경쟁에 시달리며 발악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변화의 물살 앞에 사람은 나약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고, 그 나약함은 훗날 촌극으로 기록됨을 이보가는 수고스럽게도 『문명소사』의 존재를 통해 가르치는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얼치기 지식인들을 비웃고, 손가락질하든 내 알 바 아니지만, 우리의 삶을 속속들이 파헤쳐보면 『문명소사』의 주류를 이루는 얼치기 지식인이나 무능한 관리처럼 아는 체하고, 잘난 체하고, 자신보다 못 배우고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이런 주책바가지 같았던 일화들이 당신의 인생에서 한 번도 없었다고는, 양심을 엿 바꿔먹은 철면피가 아니고서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Rishengzhang Piaohao (日升昌票號)> |
그들처럼 우리도 달리 어찌할 수 없지 않은가?
어쩌면, 외국어에 능숙할 정도로 유신에 열성이었다가 그 열성의 무분별함 때문에 도피자 신세로 전락한 왕제천의 깨달음처럼 유신이니 수구니 하는 것은 모두 거짓부렁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유신이 이득이 되면 유신을 따르고, 수구가 이득이 되면 수구를 따르는 것이 변화무쌍한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가 쥐어짜 낼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인지도 모른다. 아주 좋게 풀어보면, 시세와 상황에 따라 선택과 처세를 달리하고,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용(中庸)과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이보가는 전면적인 개혁이나 혁명을 주창하기보다는 차근차근 내실을 다져가며 현실에 맞는 유신을 점진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을 선호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고지식한 관리와 얼치기 지식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질질 싸대는 무능, 부패, 부조리를 너그럽게 표현하자면 풍자와 해학으로, 솔직하게 말하자면 신랄하게 꼬집은 것은 다름 아니라 현재의 폐단을 수습함으로써 개혁을 받아들일 발판을 마련하자는 뜻이다.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협잡꾼들이 융성하는 와중에서도 단체를 결성하여 힘을 집중시키는 것, 국가 통화를 통폐합하여 개혁의 경제적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도와주는 정부 은행 설립, 근대적인 입법 제정, 근대적인 여성 학교 설립 등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한마디로 그는 중도적인 개혁가였다.
『문명소사』에 등장하는 온갖 군상들처럼 아무것도 모르면서 유신을 자처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듯, 작금에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XX임을 자처하는 부류들이 넘쳐난다. 아마 이런 사람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기생충이나 박쥐 같은 존재들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이보가가 살았던 그 당시의 세태와 다를 바 없이 지금도 손에 큰돈이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속으로는, 그리고 그들이 안 보는 곳에서는 양심을 속이고 얻은 것이라고 욕하고 손가락질하면서도, 그들 앞에서는 굽신거리고 갖은 알랑방귀를 뀌어가며 그들을 따른다. 떡고물 하나라도 더 받아먹으려고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보가가 현재의 우리를 보고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에 든 것이 없는 속 빈 강정 같다고 실소를 터트린다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분명히 재밌고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책이지만, 앞서 말한 이런저런 이유로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한낱 촌극으로만 여긴다는 것은 근대화의 부침 속에서 유명을 달리했던 모든 조상을 모독하는 것이 될 테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물어보자면, 그들이 달리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 또한, 당신이 지금 달리 어찌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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