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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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얼구나 강의 오른쪽 | 애증, 비통, 영혼을 노래하는

The right bank of the EerguNa River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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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얼구나 강의 오른쪽 | 츠쯔젠 | 애증, 비통, 영혼을 노래하는 부족민의 시

니하오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삶의 마지막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어얼구나 강아,
너는 은하수로 흘러가는구나.
메마른 세상은.....(『어얼구나 강의 오른쪽(額爾古納河右岸)』, 451쪽)

우리의 삭막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동화 그 이상의 이야기

나무와 풀, 비와 불, 바람과 강물, 그리고 순록과 곰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밭고랑처럼 주름진 할머니의 이마에 고이 간직되어 있던 비밀스럽고 순결한,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곰방대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무심결에 하늘에 그린 그림처럼 아득하면서도 아늑한 이야기. 전설과 신화, 꿈과 상상의 나래, 있었을 법하거나 정말 있었을 것 같은 이야기. 할머니가 옹알거리며 떼쓰는 손자 • 손녀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를 한 솥에 들어붓고 소죽처럼 끓인 구수한 츠쯔젠(遲子建)의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額爾古納河右岸)』의 이야기를 듣는 당신은 문득 성냥갑에 갇혀 사는 자신의 비좁은 현실을 되돌아보며 갑갑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순록이 이제 막 영근 맑고 깨끗한 이슬을 밝고 서서 파릇하게 돋아난 풀을 먹을 때면 그 평온한 주위에는 꽃봉오리와 나비가 함께 있고, 시렁주에서 잠잘 때면 우아한 달빛과 청명한 별들로 채색된 밤하늘을 벗으로 삼는, 그렇게 드높고 아득한 숲에서 숲과 동물하고 교감하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전생과 내세를 믿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루소의 말처럼 인류가 뱉어낸 가래침 속에서 사는 나 같은 도시인은 잃어버렸지만, 잃어버린 것조차 모르는 소중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

The right bank of the Guna River by Chi Zijian
<포유동물의 체온 같은 따스함이 느껴지는 이야기>

잃어버린 세계이자 다시 찾고 싶은 세계

온갖 비바람을 겪으면서도 고목처럼 쓰러지지 않은 이야기꾼 할머니는 가장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물건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쉽게 손에서 떠나는 법이라고 말한다. 한 부모에게 있어 가장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은 자식이고, 한 사회와 국가에서 가장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일궈낸 문명이라면, 지구에 사는 인류에게 있어 가장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삭막하고 위압적인 잿빛 건물 숲에 포위된 채 빠듯한 일정에 쫓기고 치열한 경쟁에 치여 사는 도시인에게 소설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은 잃어버린 세계이자 다시 찾고 싶은 세계이다.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모든 단어를 다 나열한다 해도 부족한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이 전해주는 다양한 감정의 기복과 교착은 잃어버린 인간성 그 자체다 . 운명의 야속함과 짓궂음을 희로애락이라는 익숙한 감정으로 부드럽게 순화시키고, 애처롭지만 우아하게 소화해낸 할머니의 풍부한 이야기 덕분에 잃어버린 세계를 다시 갈망하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비통함과 애틋함에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할머니 고목에 붙어 있는 할머니의 자식과 손자들 같은 무성한 잔가지에 새로 돋아난 새 가지가 되어 잃어버린 세계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순록을 담은 그림이 바람에 일렁이며 차갑지만 맑은 영혼이 담긴 달빛의 정기를 받으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출발 신호를 받은 트랙에 선 육상 선수처럼 순록들이 종이 밖으로 후다닥 뛰쳐나오고 순록의 목에 달린 방울들에선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은, 그렇게 그림 속 인물이 너무나 생생한 나머지 화폭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과 생생함이 철철 흘러넘치는 구구절절한 문장에 빠져드는 당신은 더는 하늘나라와 인간세상을 구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비록 보잘 것 없지만 광고 수익(Ad revenue)은 블로거의 콘텐츠 창작 의욕을 북돋우는 강장제이자 때론 하루하루를 이어주는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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