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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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제국 | 상상력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Nadens Omkret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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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제국 | 외르겐 브레케 | 상상력은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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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연쇄살인범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 어린 시절 상상력이 풍부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라면서 현실의 어려움과 맞부딪칠 때마다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상상의 세계는 어둡고 슬픈 곳, 폭력과 억압, 무자비한 행위가 난무하는 곳으로 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연쇄살인범이 통제력을 행할 수 있는 곳으로 남아 있게 된다. 이 아이들이 훗날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살인 장소에서 자기 상상력의 현실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강사의 말은 펠리시어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연쇄살인범은 영화제작자와 작가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는 것 아닐까요? 그들이 하는 작업의 본질은 같습니다. 연쇄살인은 허구를 현실화 하는 일이니까요.”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 99쪽)

외르겐 브레케(Jorgen Brekke)의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이 저지른 살인에는 두 가지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한 가지는 과거나 지금이나 많은 살인 사건의 원인이자 강력한 집행자인 질투다. 다른 한 가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섬뜩한 예술적 광기가 번득이는 엽기적인 상상력의 현실화이다. 소설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 속 연쇄살인범처럼 인간의 피부에 비상한 관심을 둔 상상력이 풍부한 자는 비단 현대의 연쇄살인범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설 속 소설’ 형식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16세기 중세에도 인간의 상상력은 막힘이 없었다. 다만, 현재의 연쇄살인범은 주로 기괴하고 잔인한 관상 취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의 피부에 비상한 관심을 두었다면, 16세기에는 좀 더 실용적인 목적에 인간의 피부를 활용했다. 바로 양피지에 쓰일 최고급 가죽의 재료로 사용했던 것이다. 실제로 사람의 피부가 양피지로 제작되었던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해부학 실험을 위해 공동묘지에서 신선한 시체를 직접 가져와 실험하기도 했다는 유명한 해부학자 베살리우스의 행적과 인간의 광적인 수집욕을 떠올리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Nadens Omkrets by Jørgen Brekke

소설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은 현대와 500여 년 전의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두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독자를 현혹한다. 그럴 뿐만 아니라 미국과 노르웨이에서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국적 연쇄살인이라는 이색적인 발상을 펼친다. 독특한 개성과 사연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텍스트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며 우수 어린 인생의 향연으로 소설에 활기를 더한다. 뇌종양 수술로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채 이제 막 복귀한 싱사커 형사, 성폭행과 마약 중독이라는 불행한 과거를 안고 경찰이 된 펠리시어 형사, 추리 소설 마니아로 홈스 같은 날카로운 관찰력과 명철한 추리력을 보여주는 자유분방한 홀룸, 한때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용의자로 주목을 받은 것도 모자라 새로운 사건에서 또다시 용의자 선상에 오른 바텐 등 저마다 드라마틱한 과거를 소유한 등장인물들은 미국과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살인 사건에 역시나 드라마틱하게 얽히고설킨다. 개인적인 불행으로 점철된 지난 과거가 그들 인생의 제1막이었다면 ‘우아한 사건’에 우아하지 못하게 엮인 제2막은 가슴이 시리도록 비극적인 드라마다.

끝내 범인의 정체는 드러나고 지긋지긋했던 사건은 종결되지만, 단지 불운과 우연 때문에 삶을 송두리째 잃은 한 개인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과거로 묻히고 만다. 그래서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면, 범인이 잡히면서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이나 쾌감, 통쾌함보다는 사람의 지나친 상상력과 지나치게 부족한 상상력의 부조화가 불러온 비극적 결말에 할 말을 잃는다. 여기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이 중요했던 것일까?

아무튼, 범인은 바로 독자 앞에 존재하지만, 외르겐 브레케는 맨 마지막까지 히든카드를 내보이지 않기 때문에 엘러리 퀸의 ‘독자와의 대결’ 같은 페어플레이 방식의 추리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대와 중세를 넘나드는 이중의 시공간적 구성과 중세 특유의 음울하고 퀴퀴한 냄새가 스며든 고서의 비밀을 파헤치는 모험 속으로 빨려가는 듯 전개되는 이야기는 누구라도 풍덩 빠져들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소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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