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세계사 | 스티븐 솔로몬 | 신이 인류에게 내린 최후의 문제, 물
근대 세계의 참을 수 없는 갈증, 산업 기술의 발전, 그리고 60억에서 90억으로 향하는 인구 증가 같은 요소 때문에 현재의 관행과 기술로는 자연으로부터 얻는 깨끗한 물의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물의 세계사』, 10쪽)
생명과 문명의 토대, 물
생명은 물이고 물은 곧 생명이다. 우리 몸의 70%는 물로 채워져 있고, 우연인지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인지 신의 섭리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도 70%가 물이다. 물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인류는 비옥한 삼각주와 범람원에 정착함으로써 문명의 싹을 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초기 문명은 강의 유량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매년 되풀이되는 범람과 홍수의 정도에 따라 시시때때로 기근과 풍요를 겪었다. 기근이 닥칠 땐 왕조가 쇠퇴하고 새로운 권력이 들어섰으며, 풍요로울 땐 국경이 확장되고 인구가 증가하는 등 문명은 물의 흐름에 따라 확장과 쇠퇴를 거듭하였다. 강의 유량을 통제할 수 있는 관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문명들은 하류에서 상류로 이동하면서 수원지를 장악할 수 있었고, 이렇게 최적의 전략적 위치를 차지한 쪽으로 정치권력의 무게 중심도 이동했다. 수원지를 확보하고 지속적인 관개 기술의 혁신과 확장으로 안정된 물 공급을 확보한 정부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고, 안정된 기반 위에서 문명은 탄력을 받아 역사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또한, 인류는 물을 항해에 이용함으로써 운송과 상업을 통한 시장 경제적인 발전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물레방아, 더 나아가 증기기관의 발명, 다목적 댐 건설 등 물을 산업적인 힘으로 전환하고 더불어 위생 혁명에 성공함으로써 현재의 경이로운 발전에 도달했다.
최후의 통첩 앞에 선 물 위기
인류의 존속뿐만 아니라 문명이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물은 앞으로도 인류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물 공급이 수요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정점을 지났다는 전 지구적인 위기의 신호는 이미 중동, 아프리카에서 물을 사이에 둔 폭력 사태로 현실화됨으로써 인류의 장래를 더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비단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세계 인구의 37%를 차지하면서도 담수량은 11%에 불과한 중국과 인도가 물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주요 곡물 수출국에서 주요 수입국으로 처지가 바뀐다면 세계 곡물 가격을 급격히 상승시키고, 가뜩이나 만성적인 물 부족으로 빈곤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증가 추세를 보이는 세계 인구와 세계 인구 증가 속도보다 두 배 이상 빠른 물 사용량 증가 속도, 그리고 물이 에너지, 식량, 기후변화와 불가분의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인류는 지구의 자원을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공평하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최후의 통첩 앞에 선 셈이다.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인류가 위기 때마다 놀라운 혁신과 의지로 위기를 극복하고 그 탄력으로 문명을 발전시키고 유지해 온 것처럼 현재의 물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다면,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은 (과거 코페르니쿠스의 발견, 르네상스 등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며,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듯이 물 혁명을 주도한 국가는 세계질서의 중심 국가로 우뚝 설 것이다.
누구는 펑펑 쓰지만, 누구는 한 모금에도 허덕이게 하는 물
중국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바이두에 로그인하면 건강을 위해 하루에 8잔의 물을 마시라는 안내 문구가 나온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의 가정집에서는 수도꼭지를 틀면 8잔이 아니라 욕조도 한가득 쉽게 채울 수 있다. 그럼에도, 하루 8잔 마시기가 쉽지 않다. 건강해지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고 물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단지 물 마시기가 귀찮아서이다. 그러나 수백만의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교육과 생산적인 일을 포기하고 대신 매일 수 킬로미터를 걸어서 그날그날의 생존에 필요한 물을 길어야 한다. 11억이 하루 생존에 필요한 최소 식수도 구하지 못하지만, 또 다른 11억은 이들보다 열 배 이상이나 많은 물을 사용한다. 누군가는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생수통 뚜껑을 열어, 혹은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마시지만, 누군가는 한 모금이 없어 갈증에 허덕인다.
생존에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물과 관련된 문제는 다른 자원보다 특별한 위치에 있으며 그만큼 해결도 쉽지 않다. 물은 석유, 가스, 철, 석탄 같은 저장이 가능한 천연자원들과는 달리 풍족한 국가들이 아껴쓴다고 해서 부족한 국가로 쉽게 돌릴 수 있는 자원이 아니며 1인당 최소 필요량도 다른 자원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석유처럼 운송으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만능 해결법은 없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는 책 『물의 세계사(Water: the epic struggle for wealth power and civilization)』 저자 스티븐 솔로몬(Steven Solomon) 역시 물 부족이라는 지구적 위기를 해결할 단 하나의 만능해결책은 없으며 어떠한 선행 모델이나 제도적 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일을 해 나가면서 풀어야 한다 고 설명한다. 즉, 국가 간 혁신적인 물관리 기술은 공유하면서 각각의 국가는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리적 조건들에 맞게 최적화된 물관리 프로세스를 독자적으로 진행하며 전 지구적인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어느 정도 체계적인 물관리 기술을 확보하고 현실 적용에 성공한 선진국들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수도 있겠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물 부족을 겪고 온 저개발 국가나 빈곤국가들엔 엄청난 부담이다. 물은 곧 생명이기 때문에 물 부족 국가들은 최후의 위기에 닥치면 자포자기적인 심정으로 돌발적인 전쟁을 일으킬 소지도 다분하다. 이는 곧 세계의 위기로 치달을 것이다.
만능 해결법은 없을지라도 세계 공동체가 누구나 하루에 필요한 최소량의 깨끗한 물을 누려야 한다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믿음에서 물 위기를 바라본다면, 그리고 우리의 도덕성, 지성과 인류애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면 물 위기는 전 인류가 하나의 구심점으로 새 문명, 새 시대로 도약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물이 공기처럼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신과 자연이 인류에게 내린 최후의 시험대일 수도 있다.
마치면서...
고대를 시작으로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까지 모든 시대 모든 문명을 아우르는 방대함에 놀라고, 이렇게 방대한 세계사를 다룸에도 세밀함을 놓치지 않았다는 치밀함에 다시 한번 놀란다. 물이 흐른 자국에 스며든 인류의 피와 땀은 고스란히 인류의 문명으로 피어났고, 그것을 기록한 책 『물의 세계사』는 독보적인 사서다. 사람이 곧 물이고 물이 곧 사람이며 인류의 정치와 권력 투쟁, 자원 경쟁,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생존의 근원에는 물이 흐르고 있으니, ‘물이 세계사’는 곧 ‘인류사’이기 때문에 인류의 부단한 문명사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겐 스티븐 솔로몬의 『물의 세계사』는 필독서이며, 현재의 물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는 사람에겐 이 책의 한 장 한 장이 현실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비판하는 데 필요한 지적 거름을 줄 수 있는 귀중한 조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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