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버먼의 자본론 | 리오 휴버먼 | 잘못의 본질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있다
노예 사회에서 국가의 힘은 노예 소유주의 이익에 따라 사용되었다. 봉건 사회에서 국가의 힘은 봉건 영주와 교회의 이익에 따라 사용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힘은 자본가들의 이익에 따라 사용된다. (『휴버먼의 자본론』, 162쪽)
‘기업이익 중 직원에게 돌아가는 몫은 7%, 주주 몫은 36%’(『실업자(Cadres Noirs by Pierre Lemaitre)』, 임호경 옮김, 다산책방).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더니, 자본주의 시스템이야말로 딱 그런 격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열렬히 부르짖는,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 신화처럼 기회는 정말 균등한가. 조너선 포릿(Jonathon Porritt)의 『성장 자본주의의 종말(Capitalism as if the World Matters)』(안의정 옮김, 바이북스)을 보면 미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여 상위 5퍼센트에 속하는 부자 층에 들어갈 확률이 22퍼센트인데 비해 가난한 가정 출신의 아이는 1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놀라운 사실은 정작 미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발표되는 설문 조사 결과에 의하면 미국인의 75퍼센트는 여전히 열심히 일하면 누구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 신화를 믿는다. 즉, 자본주의는 누구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달콤한 희망으로 포장한 미끼로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소득 분배에 대한 통계를 보면 단지 희망은 희망으로 남을 뿐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보여준다. 사실상 이러한 미끼는 자자손손 이어져 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체제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눈먼 졸병이 되도록 한다. 낡을 대로 낡은 자본주의에 혁신적인 변화가 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본 계급과 자본 계급의 훌륭한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정부들의 거센 반발도 한몫하지만,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공허한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서민들의 무지와 나약함도 한몫한다.
굳이 자본주의의 집약체인 미국 통계를 살펴보지 않아도 The World Wealth and Income Database에서 제공하는 한국의 소득 불평등(Income inequality) 통계를 살펴보면,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이 27.0%(1979)에서 44.9(2012)로, 상위 1%의 소득점유율은 7.5%에서 12.2%로 껑충 뛴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도 여지없이 소득 불평등이 날이 가면 갈수록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가 일으킨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비단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다. 『휴버먼의 자본론: 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는가(The truth about socialism by Leo Huberman)』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해인 1929년, 미국의 국민소득이 신기록을 달성했던 바로 그 해에도 미국의 일반 대중 대부분은 매우 가난했음을 신빙성 있는 통계와 자료들을 통해 증명한다. 또한, 휴버먼은 자본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적으로 비판 분석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 중 상당수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자가 아닌 역대 미국 대통령 등 체제 옹호자들의 발언과 기록물을 인용하면서 설득력을 높인다.
휴버먼이 『휴버먼의 자본론』에서 언급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비단 빈부 격차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는 비효율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하며, 정의롭지도 못한, 그래서 퇴조를 거듭 하는 맹점을 가짐으로써 착취, 가난, 불안, 전쟁, 불황을 고착시킨다. 그리고 또 하나, 휴버먼이 살았던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은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은 앞서 언급했던 문제들만큼이나 더 심각하게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를 들 수 있다. 자본주의는 자연 자본을 빠르게 고갈시킴으로써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일으킨 주범이다. 한마디로 자본주의는 노쇠한 낡은 시스템이다. 이에 대해 휴버먼은 세상의 모든 경제 시스템은 태어나고 발전하고 성숙해지고 쇠퇴한 다음 다른 경제 시스템으로 대체된다며 봉건주의가 그랬듯, 자본주의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이을 대체자로 과학적 사회주의를 지목한다.
<모든 사람이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날이 올까?> |
리오 휴버먼은 『휴버먼의 자본론』은 전반적인 윤곽을 그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관한 입문서’일 뿐이라고 집필 의도를 명확하게 밝힌다. 그런 만큼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자본의 성질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이해득실을 비교적 단순하고 분명한 설명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값어치는 사회주의 인식에 대한 오해의 근원을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는 과학적 사회주의 대한 명쾌한 설명이다. 더불어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도 한 방에 날려버림으로써 사회주의가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는 공상에 대한 신중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사회주의가 에덴의 동산 같은 지상 천국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본주의 체제의 주요 해악인 착취, 가난, 불안, 전쟁을 없애고 인간의 복지와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병폐는 이제 어느 한 국가 내부로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휴버먼이 언급했던 모든 문제가 이제 한 국가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이 기업을, 국가가 국가를 착취하는 국제적 수준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자본주의 병폐는 어제오늘만의 일도 아니고 이제는 대부분 사람이 한두 번쯤 심각하게 생각하는 대중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지하게 사회주의로의 전환은 고려해보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것은 사회주의라는 말만 나오면 침 튀기며 신랄한 비난을 퍼붓는 자본 계급의 지대한 영향 탓도 있겠지만, 중국과 소련의 쓰라린 역사적 경험도 무시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옮긴이의 탁월한 비유처럼 사기꾼 목사의 어처구니없는 짓을 들어 ‘사랑’을 중심으로 삼은 예수의 메시지까지 매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병폐를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그것이 사회주의든, 아니면 사회주의 비슷한 것이든 간에 쓰레기통에 처박는 짓이 과연 옳은 일인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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