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숙한 솜씨 | 피에르 르메트르 | 모든 것이 그의 작품이었다?
“현실은 결국 허구와 결합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지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 나로 말미암아 예술과 세상 현실의 혼융이 이루어지는 셈이었습니다.” (『능숙한 솜씨』, 243쪽)
두 명의 여자가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토막’이라는 섬뜩한 단어조차 내장까지 파헤쳐진 시신의 처참한 상태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할 정도로 현장은 피와 살점의 아수라장이었다. 형사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벽에 못 박힌 젊은 여자의 머리통은 차마 말은 못하고 눈물 대신 피를 흘리며 자신의 억울함과 고통을 하소연하는듯했다. 대담한 범인은 희생자의 혈흔으로 “내가 돌아왔다”라는 글자를 큼지막하게 벽 위에 남겼다. 그리고 서명을 남기듯 가짜 손가락 지문도 남겼다. 이 지문은 미해결 사건인 일명 ‘비극적인 쓰레기하치장’ 사건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범인의 살해 방식과 현장 구성이 특정 범죄 소설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한 형사들은 앞의 두 사건을 포함해 다섯 권의 범죄 소설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다섯 건의 미해결 살인 사건을 찾아낸다.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나 탐정들은 소설의 주인공이니만큼 하나같이 평범하지는 않다. 독특한 성장 배경, 유난히 튀거나 까칠한 성격, 박학한 지식, 비범한 추리 능력 등 주로 내적이고 지적인 면을 강조하지만, 가끔은 이런 점에 덧붙여 더벅머리를 긁적거리는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는 긴다이치 코스케, 헌칠한 키에 말쑥한 옷차림을 한 신사인 엘러리 퀸 등 부가적으로 외모적인 독특함이 추가되기도 한다. 물론 외모가 좀 어수룩하다고 해서 두뇌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범인을 쫓는 추격전과 주먹 다툼이 일상 다반사로 일어나는 험난한 강력계에서 겨우 키 145cm의 형사가 반장으로 현장을 지휘한다니,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능숙한 솜씨』는 카미유 반장의 과히 유별난 외모에서부터 독자를 당혹하게 한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줄담배 때문에 야기된 발육부진이 그가 마땅히 얻어야 할 ‘높이’를 까먹은 대신에 다른 특별한 재능을 준 것도 아니다. 그는 명실공히 주인공임에도 작은 키를 제외하고는 비범한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타고난 여타 소설의 형사나 탐정과 비교하면 그리 특별한 점도 없다. 그래서 독자는 더욱 당혹스럽다.
그러나 더욱 독자를 당혹스럽다 못해 혼란하게 하는 것은 허를 찌르는 충격적인 반전이다. 범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범죄 소설에 등장하는 살해 방식과 그 현장을 수년에 걸친 치밀한 계획으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한다. 마치 원작 소설을 영화로 제작하는 영화감독처럼 책 속의 허구를 현실로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범인은 더 대범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성공한다. 범인이 ‘능숙한 솜씨’로 준비한 완벽한 반전 앞에서 카미유 반장을 비롯한 강력반의 형사들은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몸부림쳐보지만 결국 범인이 마련한 무대에서의 꼭두각시 역할을 벗어나지 못한다. 범인과 작가가 공모하고 작품의 반 이상을 할애해서 준비한 대범한 반전 앞에서 ‘서술 트릭’은 애들 장난일 뿐이었으며, 독자는 녹다운된다. ‘텍스트’를 통째로 삼켜버리는 이 완전무결한 반전이야말로 이 작품의 빛나는 가치다.
추리소설을 중간쯤 읽고 나면 독자는 작품 속의 형사나 탐정이 되어 지금까지의 단서를 가지고 범인을 추리해 본다. 그러나 거꾸로 범인이 되어 앞으로 어떤 식으로 형사나 탐정을 농락하고 어떻게 자신의 범죄를 완성할지 등 범인의 처지에서 작품을 바라보게 하는 추리소설은 많지 않다. ‘역할 바꾸기’ 또한 범인을 추리하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능숙한 솜씨』를 읽으며 범인이 된 자신을 상상한다는 것은 문명이라는 얄팍한 껍질 속에 감춰진 사람의 야성을 직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설 『능숙한 솜씨』에 등장하는 잔혹한 살해 방법 중 몇몇은 실제 살인 사건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실제로 행하며 즐기고, 누군가는 그것을 글로 재구성하며 즐기고, 누군가는 그렇게 재구성한 소설을 읽으며 즐긴다.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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