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 | 톨킨 | 꿈마저 메말라가는 현대인에게 샤이어 같은 위안을 주는 소설
“매우 친절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건 정말로 내게 걱정거리만 만들어 주는 겁니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그 보물을 다 싣고 집으로 가겠습니까? 도중에 틀림없이 전쟁이나 살인이 일어날 텐데요. 그리고 무사히 집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그 많은 보물을 내가 무엇에다 쓰겠습니까? 그러니 그 보물은 당신 손에 있는 것이 더 낫습니다.” (『호빗(The Hobbit)』, 420쪽)
톨킨(J. R. R. Tolkien)의 『호빗(The Hobbit)』은 판타지 문학의 고전 명작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의 60여 년 전 이야기를 다른 작품으로, 간달프 꼬임에 넘어간 골목쟁이네 빌보가 참나무방패 소린과 그의 동료 난쟁이들과 함께하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 『반지의 제왕』처럼 『호빗』 역시 3부작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은 원작 6권을 두 권씩 하나로 묶어 총 3부로 제작되었다. 소설 두 권 분량은 한 편의 영화로 전부 그려내기에는 상당한 양인 만큼 영화는 원작의 상당 부분을 생략하고 그 생략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각색을 통해 훌륭하게 다듬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영화 「호빗」의 원작은 달랑 한 권이다. 이 한 권을 가지고 3부작으로 나누어 제작한 만큼 원작에 없는 많은 이야기가 덧붙어지고 부풀려졌다. 특히 빌보가 어둠숲 요정의 성에 갇힌 난쟁이들을 술통에 넣어(원작은 뚜껑까지 꽉 덮은 상태에서 오크들의 추격도 없이 무사히 호수 마을에 도착한다) 강으로 흘려보내는 탈출 장면부터 시작하여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술통, 강기슭을 따라 내리달으며 난쟁이들을 맹렬하게 추격하는 오크들과 그 오크들을 이리저리 폴짝폴짝 뛰어넘으며 민첩하게 사냥하는 요정들이 펼치는 스릴감 넘치는 액션은 원작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다. 영화 「호빗」 3부작 중 마지막 편인 ‘다섯 군대 전투’는 몇 페이지 안 되는 전쟁 장면을 스펙타클한 그래픽으로 웅장한 영상을 빚어냄으로써 관객을 압도한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소유자에게 ‘투명인간’이라는 초현실적인 힘을 부여하는 ‘절대반지’가 등장한다.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압력에 눌린 인간 내면에 잠재한 부도덕한 욕망을 은밀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거부하기 어려운 타락한 매력이다. 현실에서 권력과 재력을 꿰찬 이들조차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절대반지만 있으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반지의 제왕』을 읽으면서 투명인간이 되는 상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상상력을 엿 바꿔 먹은 무뇌충이거나 짐짓 점잖은 척하는 위선자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절대반지가 내뿜는 유혹은 매우 강렬하다 못해 이름 그대로 ‘절대’적이다.
반면에, 『호빗』에서는 매우 현실적인 유혹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시시각각 우리의 눈을 멀게하는 ‘부(富)’이다. 소린의 할아버지 스로르는 현명한 조언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끊임없이 부를 쌓다 난쟁이들만큼이나 금과 보석 등의 보물을 좋아하는 용 스마우그의 침략을 받고는 끔찍한 파멸을 맞는다. 스마우그는 사용할 줄도 모르고 사용할 필요도 없는 금과 보석을 지키려다 축복받은 영생의 삶을 비참하게 마감한다. 외로운 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모험을 잘 이겨낸 소린은 스마우그가 죽고 마침내 용에게 빼앗긴 수많은 보물을 되찾자 황금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는다. 결국, 그도 자신의 선조처럼 지나친 탐욕의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영화에서 소린을 비롯한 난쟁이들은 멋진 활약도 종종 펼치지만, 원작에서 그들은 모험에서 그렇게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대신 그들은 ‘좀도둑’, ‘채소장수’라고 멸시하는 빌보에게 염치 불고하고 위험한 일 대부분을 미루거나 부탁하고, 빌보는 그러한 난쟁이들의 파렴치한 기대에 멋지게 부응해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다. 난쟁이들은 오직 빌보의 예상 밖의 활약 덕분에 험난한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외로운 산에 도착했을 땐 영화에서와는 달리 난쟁이들도 빌보가 가진 반지의 힘을 알고 있었기에 이때부턴 대놓고 어렵고 위험한 일은 모두 빌보에게 떠넘긴다. 난쟁이들을 거미 밥상에서, 그리고 요정 감옥에서 구출해 준 것, 외로운 산의 비밀 입구의 열쇠 구멍을 발견하고 호빗 특유의 예리한 눈으로 스마우그의 약점을 발견한 것도 빌보의 지혜와 용기 덕분이었다. 물론 반지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또한, 빌보는 정정당당하게 얻은 전리품인 ‘아르겐스톤’의 소유를(영화에서와는 달리 원작에서는 빌보가 용의 소굴에서 아르겐스톤을 발견하고 감출 때까지 아무도 아르겐스톤과 그것이 가진 의미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는다) 난쟁이들과 요정/인간 연합군과의 전쟁을 막고자 하는 선량한 목적에서 기꺼이 포기하고는 바르드에게 맡긴다. 이 숭고한 장면을 곁에서 직접 목격하는 요정 왕과 간달프는 빌보의 과감한 행동과 깨끗한 마음에 감탄과 함께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빌보는 절대반지에 대한 끈질긴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노회하고 안타까운 모습을 종종 보여주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빌보는 적당한 욕심에 선량한 마음도 적당히 갖춘, 그리고 때에 따라 불굴의 의지와 뜻밖의 용기도 보여주는 꽤 괜찮은 호빗이다. 이러한 것들이 툭 집안의 기질이라고는 하나, 아무튼 그러한 절제와 양보의 미덕이 있었기에 빌보의 모험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모험 내내 꿈에 그리던 그립고 정겨운 고향 샤이어로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판티지소설의 고전 『반지의 제왕』을 읽고 『호빗』을 읽는다면 뭔가 부족함에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반지의 제왕』이라는 대작을 완성하기 위한 밑거름 정도로 보일 수도 있다. 특히 원작보다 더 방대한 이야기를 펼쳐낸 영화와 책을 함께 보면 원작의 허전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이 책을 봐야 한다면 그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그것은 모험 내내 틈만 나면 도지는 빌보의 향수병과 비슷하다. 외지에서 추위에 떨고 허기지고 지치고 피곤하면 당연히 집이나 고향 생각이 나듯 삭막하고 황폐한 도시의 삶에 지친 나머지 달콤해야 할 새벽의 꿈마저 단조롭고 메말라가는 현대인에게 톨킨의 문학은 위안과 휴식, 그리고 풍부한 꿈의 재료를 제공해주는 정신적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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