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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30일 토요일

[책 리뷰] 꿈마저 메말라가는 현대인에게 ‘샤이어’ 같은 위안을 주는 ~ 호빗(톨킨)

The Hobbit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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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마저 메말라가는 현대인에게 ‘샤이어’ 같은 위안을 주는

원제: The Hobbit by J. R. R. Tolkien
“매우 친절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건 정말로 내게 걱정거리만 만들어 주는 겁니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그 보물을 다 싣고 집으로 가겠습니까? 도중에 틀림없이 전쟁이나 살인이 일어날 텐데요. 그리고 무사히 집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그 많은 보물을 내가 무엇에다 쓰겠습니까? 그러니 그 보물은 당신 손에 있는 것이 더 낫습니다.” (『호빗(The Hobbit)』, 420쪽)

킨(J. R. R. Tolkien)의 『호빗(The Hobbit)』은 판타지 문학의 고전 명작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의 60여 년 전 이야기를 다른 작품으로, 간달프 꼬임에 넘어간 골목쟁이네 빌보가 참나무방패 소린과 그의 동료 난쟁이들과 함께하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 『반지의 제왕』처럼 『호빗』 역시 3부작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은 원작 6권을 두 권씩 하나로 묶어 총 3부로 제작되었다. 소설 두 권 분량은 한 편의 영화로 전부 그려내기에는 상당한 양인 만큼 영화는 원작의 상당 부분을 생략하고 그 생략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각색을 통해 훌륭하게 다듬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영화 「호빗」의 원작은 달랑 한 권이다. 이 한 권을 가지고 3부작으로 나누어 제작한 만큼 원작에 없는 많은 이야기가 덧붙어지고 부풀려졌다. 특히 빌보가 어둠숲 요정의 성에 갇힌 난쟁이들을 술통에 넣어(원작은 뚜껑까지 꽉 덮은 상태에서 오크들의 추격도 없이 무사히 호수 마을에 도착한다) 강으로 흘려보내는 탈출 장면부터 시작하여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술통, 강기슭을 따라 내리달으며 난쟁이들을 맹렬하게 추격하는 오크들과 그 오크들을 이리저리 폴짝폴짝 뛰어넘으며 민첩하게 사냥하는 요정들이 펼치는 스릴감 넘치는 액션은 원작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다. 영화 「호빗」 3부작 중 마지막 편인 ‘다섯 군대 전투’는 몇 페이지 안 되는 전쟁 장면을 스펙타클한 그래픽으로 웅장한 영상을 빚어냄으로써 관객을 압도한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소유자에게 ‘투명인간’이라는 초현실적인 힘을 부여하는 ‘절대반지’가 등장한다.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압력에 눌린 인간 내면에 잠재한 부도덕한 욕망을 은밀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거부하기 어려운 타락한 매력이다. 현실에서 권력과 재력을 꿰찬 이들조차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절대반지만 있으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반지의 제왕』을 읽으면서 투명인간이 되는 상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상상력을 엿 바꿔 먹은 무뇌충이거나 짐짓 점잖은 척하는 위선자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절대반지가 내뿜는 유혹은 매우 강렬하다 못해 이름 그대로 ‘절대’적이다.

반면에, 『호빗』에서는 매우 현실적인 유혹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시시각각 우리의 눈을 멀게하는 ‘부(富)’이다. 소린의 할아버지 스로르는 현명한 조언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끊임없이 부를 쌓다 난쟁이들만큼이나 금과 보석 등의 보물을 좋아하는 용 스마우그의 침략을 받고는 끔찍한 파멸을 맞는다. 스마우그는 사용할 줄도 모르고 사용할 필요도 없는 금과 보석을 지키려다 축복받은 영생의 삶을 비참하게 마감한다. 외로운 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모험을 잘 이겨낸 소린은 스마우그가 죽고 마침내 용에게 빼앗긴 수많은 보물을 되찾자 황금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는다. 결국, 그도 자신의 선조처럼 지나친 탐욕의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영화에서 소린을 비롯한 난쟁이들은 멋진 활약도 종종 펼치지만, 원작에서 그들은 모험에서 그렇게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대신 그들은 ‘좀도둑’, ‘채소장수’라고 멸시하는 빌보에게 염치 불고하고 위험한 일 대부분을 미루거나 부탁하고, 빌보는 그러한 난쟁이들의 파렴치한 기대에 멋지게 부응해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다. 난쟁이들은 오직 빌보의 예상 밖의 활약 덕분에 험난한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외로운 산에 도착했을 땐 영화에서와는 달리 난쟁이들도 빌보가 가진 반지의 힘을 알고 있었기에 이때부턴 대놓고 어렵고 위험한 일은 모두 빌보에게 떠넘긴다. 난쟁이들을 거미 밥상에서, 그리고 요정 감옥에서 구출해 준 것, 외로운 산의 비밀 입구의 열쇠 구멍을 발견하고 호빗 특유의 예리한 눈으로 스마우그의 약점을 발견한 것도 빌보의 지혜와 용기 덕분이었다. 물론 반지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또한, 빌보는 정정당당하게 얻은 전리품인 ‘아르겐스톤’의 소유를(영화에서와는 달리 원작에서는 빌보가 용의 소굴에서 아르겐스톤을 발견하고 감출 때까지 아무도 아르겐스톤과 그것이 가진 의미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는다) 난쟁이들과 요정/인간 연합군과의 전쟁을 막고자 하는 선량한 목적에서 기꺼이 포기하고는 바르드에게 맡긴다. 이 숭고한 장면을 곁에서 직접 목격하는 요정 왕과 간달프는 빌보의 과감한 행동과 깨끗한 마음에 감탄과 함께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빌보는 절대반지에 대한 끈질긴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노회하고 안타까운 모습을 종종 보여주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빌보는 적당한 욕심에 선량한 마음도 적당히 갖춘, 그리고 때에 따라 불굴의 의지와 뜻밖의 용기도 보여주는 꽤 괜찮은 호빗이다. 이러한 것들이 툭 집안의 기질이라고는 하나, 아무튼 그러한 절제와 양보의 미덕이 있었기에 빌보의 모험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모험 내내 꿈에 그리던 그립고 정겨운 고향 샤이어로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판티지소설의 고전 『반지의 제왕』을 읽고 『호빗』을 읽는다면 뭔가 부족함에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반지의 제왕』이라는 대작을 완성하기 위한 밑거름 정도로 보일 수도 있다. 특히 원작보다 더 방대한 이야기를 펼쳐낸 영화와 책을 함께 보면 원작의 허전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이 책을 봐야 한다면 그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그것은 모험 내내 틈만 나면 도지는 빌보의 향수병과 비슷하다. 외지에서 추위에 떨고 허기지고 지치고 피곤하면 당연히 집이나 고향 생각이 나듯 삭막하고 황폐한 도시의 삶에 지친 나머지 달콤해야 할 새벽의 꿈마저 단조롭고 메말라가는 현대인에게 톨킨의 문학은 위안과 휴식, 그리고 풍부한 꿈의 재료를 제공해주는 정신적 고향이다.

이 리뷰는 2017년 7월 3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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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4일 금요일

[책 리뷰] 두말할 필요 없는 고품격 판타지 ~ 반지의 제왕(톨킨)

The Lord Of The Ring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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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할 필요 없는 고품격 판타지

원제: The Lord of the Rings by J.R.R. Tolkien
“마땅하다고?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살아 있는 이들 중 많은 자가 죽어 마땅하지. 그러나 죽은 이들 중에도 마땅히 살아나야 할 이들이 있어. 그렇다고 자네가 그들을 되살릴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죽음의 심판을 그렇게 쉽게 내려서는 안 된다네. 심지어 우리 마법사라 할지라도 만물의 종말을 모두 알 수는 없거든. ….” (『반지의 제왕 1 – 반지원정대 1』, 145쪽)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그 이상을 해낸 영화, 영화만큼이나 뛰어난 원작

화의 문외한이라도 피터 잭슨(Peter Jackson) 감독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시리즈를 안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한 영화이고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호빗(hobbit)’이라는 작고 통통한 앙증맞은 종족은 쉽게 잊히지 않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다. 호빗뿐만 아니라 빼어난 아름다움과 고귀함이 돋보이는 엘프, 부를 사랑하는 완고한 드워프, 말도 행동도 굼뜨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도 숲을 사랑하는 엔트, 정의를 위해 샤두팍스를 타고 긴 수염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달려가는 마법사 간달프, 절대반지의 노예가 된 가련한 골룸 등 가운데땅의 다양한 종족을 대변하는 각양각색의 인물들과 이들의 무대가 되는 웅장한 대지, 그리고 신화와 전설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간직한 장엄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들은 ‘판타지’라는 장르를 평가함에 빼놓을 수 없는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시냇물처럼 끊이지 않고 영화 속을 흐르는 은은한 감동과 소소한 재미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상당히 길었던 상영시간조차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로 마약 같은 강력한 중독성을 내뿜는다. 그래서 필자는 SF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 스타워즈에 버금가는 판타지 영화를 꼽는다면 주저 없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꼽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영화 「반지의 제왕」을 두 번 이상 보아왔으면서도 바보같이 몰랐던 것이 있었다. 바로 톨킨(J.R.R. Tolkien)의 원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톨킨의 원작 6권을, 아니 해설까지 포함해서 7권 전부를 읽은 지금 영화가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를 축약시키기 위해 각색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으며, 뛰어난 원작이 있었기에 그만큼 좋은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영화의 상영시간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기에 원작의 상당 부분을 빼거나 줄이고, 이런 가위질로 어색해진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주고자 때론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지만, 영화는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의 거대한 뼈대를 충실하게 유지하고 있다. 영화 1부에서 이제 막 결성한 원정대가 깊은골을 출발하고 얼마 안 지나 호빗들이 보로미르에게 검술 수업을 받는 우스꽝스런 모습은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며, 영화 3부에서 사루만의 죽음은 원작보다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 원작에서도 사루만은 뱀혓바닷(그리마)이 휘두른 칼에 찔려 죽지만, 막 폐허가 된 오르상크에서가 아니라 호빗들이 영웅이 되어 돌아간 샤이어에서 죽는다. 원작에는 호빗들이 고향 샤이어로 되돌아갔을 때 다시 한 번 사루만의 비열한 음모와 대결을 벌이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루만의 죽음을 앞으로 댕긴 듯하다. 그리고 영화 3부 미나스 타리스에서 벌어지는 전쟁 장면 중의 하이라이트이자 관객에게 악의 부대를 폭풍처럼 거침없이 덮치는 짜릿한 승리감을 전해주는 아라고른이 데리고 온 사자(死者) 부대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미나스 타리스에 도착하기 전에 아라고른이 사자 부대의 저주를 풀어주기 때문에 영화처럼 미나스 타리스의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영화는 원작의 해설부분까지 충실히 참고했음을 알 수 있는데, 원작의 본문만 보면 보로미르와 파라미르 형제의 우애, 아라고른과 아르웬의 사랑의 서약, 감지네 샘과 초막골네 로즈와의 연인 관계 등에 대해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7권 해설을 봐야 알 수 있다.

이야기 신의 재림과 영웅의 귀환

1권 서문에서 저자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쓴 동기와 의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일차적인 동기는 정말로 긴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욕망이었다. 읽는 이의 관심을 끌어, 그들을 즐겁게 하고,기쁘게 하고, 때로는 흥분시키기도 하고 또 깊은 감동까지 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반지의 제왕 1 – 반지원정대 1』, 24쪽)
무슨 심층적인 의미나 ‘메시지’의 존재와 관련해 말하자면,작가의 의도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이 작품은 알레고리적인 것도 아니고 시사적인 것도 아니다. (『반지의 제왕 1 – 반지원정대 1』, 25쪽)

일찌감치 신랄한 비난에 대한 방패막이를 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평론가들의 부정적 평가와 비주류 문학이라는 평가절하는 피해갈 수 없었다. 반면에 그런 전문가들의 가혹한 평가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항변하는 듯 일반 독자들은 톨킨과 그의 작품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왔다. 그것은 톨킨이 이 작품을 쓴 일차적인 동기, 즉 독자를 ‘즐겁게 하고,기쁘게 하고, 때로는 흥분시키기도 하고 또 깊은 감동까지 줄 수 있는’ 이야기꾼으로서 매우 성공적인 작품을 썼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교하고 웅장한 구상과 섬세하고 깊이 있는 묘사와 방대한 지리적 및 역사적 배경으로 현실과는 무관한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해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초현실적인 판타지 문학의 기초를 튼튼히 했으며,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절대반지’의 마력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키는데도 성공했다. 왜냐하면, 투명인간은 인간의 은밀하면서도 도발적인 욕망을 안전하게, 그리고 비밀스럽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완벽한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현실에서는 문명인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었던 별 희귀 망측한 짓을 투명인간이 되어 도덕과 양심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저지르는 자신을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그런 헛된 망상은 부질없다는 듯이 절대반지도 결국엔 파괴되고 만다. 그 파괴로 말미암아 절대반지에 대한 간절했던 상상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스러운 아쉬움 속으로 추락하면서 안개산맥의 모리아 입구에 있던 돌문에 각인된 룬문자처럼 독자의 뇌리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또한, 우리는 거룩한 반지원정의 위업을 달성한 영웅들, 그중에서도 가장 연약해 보이는 호빗들을 빼놓을 수가 없다. 키는 인간의 절반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먹고 노는 것도 좋아하는 순박한 그들은 겉보기와는 달리 굳센 의지력과 무쇠 같은 용기를 발휘하여 반지원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완수하면서 일약 가운데땅의 영웅으로 부상한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그저 그런 시골농부 같은 호빗들이 자신들의 평화롭고 고요한 삶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반지원정을 위해 의연하게 목숨까지 내놓으며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영웅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체현한다. 부와 명성만을 좇는 너저분한 인간들이 득실대는, 진정한 영웅을 상실한 현실에서 그들은 귀환한 영웅이다. 부와 명성을 위해 음흉한 계략과 앙상한 인내만이 횡횡하는 시대에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인내, 우정과 신뢰, 그리고 변치않는 신념과 희망은 가치 있는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위안과 희망을 준다.

초록이 우거진 전원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하루일과를 마무리하는 저녁이면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흥에 겨워 춤을 추는 호빗 종족의 전원적이고 소박한 삶에서 첨단 문명의 이기가 결코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우리는 산업화가 가져다준 황폐하고 삭막한 삶에 자신도 모르게 서글퍼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슬픈 것은 아직 ‘원정’이 완벽하게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절대반지’는 파괴되고 절대악 사우론은 제거되었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사악함은 여전히 건재하며 ‘절대반지’가 우리의 작은 영웅 호빗들의 마음을 유혹하고 지배하려 했다면, 현실에서는 ‘물질’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프로도는 끝내 자신의 의지로 반지를 파괴하지 못하고, 반지는 골룸의 운명적인 배신을 통해 파괴된다. 부정하게 축적한 돈다발을 자신의 자유의지로 미련없이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갑자기 고개를 쳐든다.

마치면서...

M. 쿳시(John M. Coetzee)는 오랫동안 읽히고 논의되어 인류문화의 유산이 될 소설들을 썼다는 이유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또한, 도시는 인류가 뱉어난 가래침이라고 루소(rousseau)는 말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인류가 뱉어난 가래침 속에서 더러움과 비참함, 순수함과 깨끗함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도시인들에게 오랫동안 읽히며 풍부한 꿈과 아름답고 낭만적인 공상의 재료를 제공함으로써 위안과 휴식, 때론 도피처를 제공하기에 손색없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끝으로 무협소설에는 『영웅문』과 『소오강호』로 유명한 김용(金庸)이 넘볼 수 없는 존재로 우뚝 서 있다면, 판타지소설에는 바로 톨킨이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리뷰는 2016년 6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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