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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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라멘 | 라면, 그리고 나의 학창 시절

Tokyo Ramen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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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라멘 | 베쯔니 | 라면, 그리고 나의 학창 시절

라면과 뗄 수 없었던 나의 학창 시절

라면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국에서 태어난 이상 야심한 밤에 한국인의 출출한 배를 달래주는 라면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영상 매체의 직간접 광고와 크고 작던 어느 마트를 가던 터줏대감처럼 턱 하니 한 자리를 차지하며 위용을 뽐내는 라면은 낮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허기지는 우리의 가련한 배 속을 자비롭게 채워주는 기특한 녀석이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점심을 거의 매일 라면과 함께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라면의 유해성에 대한 자각이나 비판적 인식이 눈을 뜨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의심조차 없었던, 그저 배부르면 장땡이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옆에 같이 붙어 있던 중고등학교 매점에서 라면을 먹었었는데 가격은 250원이었고 국물만 사면 50원이었다(참고로 매점에서 팔던 삼X 호빵도 50원이었던 시절이다). 그런데 라면 국물이 일반적인 스프 맛이 아니었으며 그 맛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맛있었다. 그 후 5학년 무렵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상계동으로 이사 가고 난 전농동에서 강 건너 강동구로 이사 오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먼 통학 거리 때문에 전학해야 했고, 새로 다니게 된 학교에는 매점이 없었다. 그래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담치기’로 학교 옆 아파트 지하상가에서 점심을 해결하면서 만난 것이 바로 라볶이였다.

B상가 지하에 있다고 해서 ‘B 뽀빠이’라고 간판을 건 아파트 지하상가의 분식집 할머니가 만들어 준 난생처음 먹어보는 라볶이는 모양도 신기하고 맛도 역시 최고였다. 가격은 천 원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내 생각으로는 그 당시(80년대 중후반)에는 지금처럼 라볶이가 아직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근처 분식집에서도 라볶이를 파는 곳은 없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매점에는 우동과 라면, 그리고 밥류의 식사를 한 가지씩 팔았다. 이때도 역시 난 이 중에서 가장 저렴한 700원짜리 라면을 먹었는데, 한창 허기진 나이였음에도 그다지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얼마나 형편없었느냐 하면 고등학교 졸업한 해에 학교 축전 일로 후배를 찾아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오랜만에 다시 먹어본 그 맛은 가히 ‘폭력’이었다. 역시 시장기가 최고의 반찬이었던 것이다.

도쿄라멘 by 베쯔니

너무 빨리 등장했던 ‘라멘’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진짜 일본식 라면을 먹어봤다. 1994년 강동구 길동 사거리 롯데리아 옆 건물 1층에 일본 라면 전문점이 들어섰는데, 아마도 그 당시에는 정말 보기 드문 가게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라면 한 그릇에 거금 4,500원을 주고(아마도 그 당시 일반음식점의 백반류가 보통 3천 원 정도 했을 것이다) 먹을 형편을 논하기보다는 그러한 돈이 수중에 있었더라도 선뜻 사 먹을 배짱이 안 되었다. 차라리 그 돈이면 바로 옆 건물 1층 레코드 가게에서 카세트테이프 앨범을 샀을 것이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여자친구의 도움으로 먹게 되었는데, 가게에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그 맛은 ‘어, 이런 것을 4,500원씩이나 주고?’였다. 아마도 인스턴트 봉지 라면에 길들어진 나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진짜 육수로 끓인 그런 고급스러운 맛은 시기상조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가게는 몇 달 못 가서 문을 닫았다. 한국에는 돼지 뼈나 닭 뼈로 진하게 육수를 우려내고 기름에 튀기지 않은 수재 면발의 일본식 진짜 라면보다는 인스턴트 봉지 라면이 먼저 선을 보였고, 하필 그 당시에는 국민 대부분이 배고픈 시기였던 데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를 거뜬히 때울 수 있는 먹을거리가 별로 없었던 모든 면에서 부족한 시기였기에 라면은 곧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음과 동시에 라면은 싼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요즘에는 인스턴트 라면에도 고급화 바람이 불면서 다양한 제품들이 나오고 경제적 풍요 덕분에 다양한 먹을거리를 찾게 된 우리는 일본식 정통 라면에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지만, 일본처럼 라면 한 그릇을 먹으려고 한 시간 이상 기다릴 인내심이 한국 사람에게도 있는지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는 맛에 그리 까다롭지 않기에 아무리 맛있다는 소문이 난 집이라도 줄 서서까지 먹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한다.

진짜 라면은 어떤 것인가?

베쯔니의 『도쿄라멘』은 라면의 본고장 일본 각 지방의 특색이 담긴 다양한 소스와 육수로 국물을 낸 ‘라멘’과 그 라멘을 파는 식당을 소개한 책이다.

라멘을 끓이는 냄새가 아주 좋아 곰도 불러들인다는 무시무시한 ‘곰라멘’, 통조림처럼 깡통에 들어 있어 바로 뚜껑을 따서 바로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캔라멘’, 한 그릇에 10만 원이 넘는 최고급 라멘과 그 가격에 걸맞은 회원제 라멘 전문점 등 기상천외한 발상의 나라답게 다양한 라멘과 식당이 소개되어 있다. 더군다나 지은이 베쯔니는 각 라멘집을 순방하며 직접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먹음직스러운 라멘의 생생한 컬러 사진까지 친절하게 책 속에 담아 야심한 밤에 무방비 상태에서 이 책을 감상할(?) 독자의 허전한 뱃속을 요동치게 하기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다. 고로 야심한 밤에 이 책을 보며 평소의 금기를 깨고 무의식적으로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일 냄비를 올려놓는다고 하더라도 애꿎은 책을 탓할 수는 없으리라. 그보다는 본인의 나약한 의지력을 탓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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