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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3.

[책 리뷰] 지성조차 이기심에 묶여야만 하는가 ~ 산둥 수용소(랭던 길키)

Shantung-Compound-book-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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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조차 이기심에 묶여야만 하는가

Original Title: Shantung Compound by Langdon Gilkey
과연 우리는 지혜와 명철, 도덕적 힘을 최대한도로 발휘하여 굶주리는 세상과 우리의 것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위해 쌓아놓고 자기 배만 불리며, 인간성과 평화로운 세계 공동체를 얻을 수 있는 희망을 다 던져버릴 것인가? (『산둥 수용소(Shantung Compound)』, p445)

젊은이답지 않은 지적 날카로움으로 완성한 회고록

2차대전 때 일본은 중국 점령지역에 있던 영국인, 미국인 등의 외국인들을 위현(현재는 산둥)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수용했다. 당시 북경 연경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랭던 길키(Langdon Gilkey) 역시 2년 반 동안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다. 남부럽지 않은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랐던 그에게 수용소 생활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난의 나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비참하고 고단했던 수용소의 일상 속에서 젊은이다운 왕성한 호기심, 그리고 젊은이답지 않은 지적 날카로움이라는 혜안과 통찰력을 발휘하여 인간의 성품과 도덕성에 대한 예리한 성찰을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 『산둥 수용소(Shantung Compound)』이다. 길키는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현대적 낙관주의에 자부심을 느끼고 인간의 합리성과 도덕성을 낙관적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수용소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자신이 믿었던 낙관주의가 도를 넘어선 순진함과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에 입각한 터무니없는 망상이었음을 깨닫는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인간의 성품과 도덕성에 대한 흠집 정도를 넘어서 그 존재 자체와 근원적인 본질에 대해 뇌 속까지 파고들 정도로 깊은 회의를 품게 하였을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이기심’이다.

굶주림은 문명의 모든 가면을 벗겨버린다

소에 누렸던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수용소 사람들은 입소 당시만 해도 그토록 끔찍하게 여겨졌던 환경에 놀랍게도 몇 개월 만에 적응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 특유의 창조적인 활력을 발휘하여 쓰레기장 같았던 수용소를 사람이 살 만한 그럴듯한 공간으로 여겨지게끔 탈바꿈시킴으로써 이들은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일상’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수용소에서 창출한 ‘일상’은 어떤 환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적응하고 더 나아가 개척하려는 인간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증명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수용소의 식량 부족 문제가 표면적으로 불거지면서, 그리고 식량 문제가 앞으로 개선될 여지는커녕 현재의 배고픔이 지속적으로 장기화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자 수용소 사람들의 이기심은 폭발해버리고 만다.

군자도 굶주리면 붓을 내팽개치고 이빨을 드러내며 짐승으로 변하듯, 수용소에 전염병처럼 퍼지는 굶주림은 그동안 인류 문명이 줄기차게 부르짖었던 지적 우월함, 교양, 민주주의, 그리고 도덕과 정의가 개미가 뀐 방귀에도 흩어지는 뜬구름 같은 환상이었음을 폭로한다. 특히 길키가 수용된 수용소는 필리핀이나 싱가포르 수용소에 있는 군인 포로들의 상황과는 천지 차이였다. 일본군의 잔혹한 통치 아래에서 하루하루 죽음의 임박함을 느꼈을 군인 포로들과는 달리 산둥 수용소에는 고문 • 폭력도 없었으며 굶어 죽는 사람도 없었다. 길키의 경험은 인류 문명의 도덕적 견고함이 약간의 빈곤만으로도 너무 쉽게 무너졌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사람이 굶주리면 얼마나 파렴치해질 수 있는지는 미국 적십자에서 보낸 구호품 배분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적십자가 수용소에 보낸 (따로 수령인은 지정되어 있지 않은) 엄청난 양의 구호품은 수용소 사람들에게 골고루 분배된다면 최소 몇 개월 이상은 배고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당한 양이었다. 현명하게도 일본인 수용소 사령관은 미국인에게는 꾸러미 1.5개, 다른 국적 사람들에게는 꾸러미 1개씩을 배분함으로써 미국인의 자부심도 세워주고 다른 국적 사람들에게도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누가 봐도 탁월한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7명의 젊은 미국인이 수용소 사령관을 찾아가서 미국 적십자가 보낸 물품을 미국 시민이 아닌 다른 국적 수감자들에게 배포하는 것은 직권 남용이라고 항변한다. 만약 미국인에게만 구호품이 배분된다면 미국인 한 사람당 꾸러미 7개씩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7명의 젊은이가 어떠한 마음에서 수용소 사령관을 찾아간 것인지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의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수용소 사령관은 심사숙고 끝에 모든 사람에게 꾸러미 1개씩을 배분하고 나머지는 다른 수용소로 보내기로 한다. 7명의 미국인 때문에 200명의 미국인은 꾸러미 반 개씩을 잃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나머지 193명은 억울했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7명의 미국인 행동이 비도덕적이고 탐욕적인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던 길키(길키 역시 미국인이다)가 수용소 사령관의 최종 판결이 나기 전에 다른 미국인을 두루 만나며 의향을 타진해 본 결과 그들도 7명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고는 크게 실망하기 때문이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다만 이기적일 뿐이다

사와 관련된 책들을 좀 읽은 사람이라면 맹자 말씀대로 사람은 선천적으로 착하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그렇다고 사람이 마냥 악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다만 이기적일 뿐이다. 그리고 인류가 자부하는 도덕심 역시 이기심이라는 변덕스러운 바다 위에 표류하는 뗏목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때 도덕적 기준은 표류하는 뗏목 위에 위태롭게 매달린 깃발이 된다.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고 떠다니는, 때론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거나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깃발과 뗏목 말이다. 만약 이처럼 고정된 도덕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말은 보편적인 도덕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도덕이 사람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멋대로 변용되고 변질할 수 있다면 도덕의 존재 자체를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세상을 축소해 놓은 듯한 수용소의 ‘일상’을 다룬 길키의 『산둥 수용소』는 사람이 물질적인 궁핍함에 처하면 바깥세상에서 쌓아 올린 명예, 명성, 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이성, 합리성, 도덕, 양심, 정의 등 인류 문명을 빛낸다고 여겨졌던 보편적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해 준다. 그래서 국가가 경제성장에 목매다는 것도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풍요와 만족을 국민에게 제공함으로써 사회에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관이 설 자리를 제공해주려는 의지와 다름없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사람의 탐욕과 이기심도 증가하거나 다양해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중된 부는 또 다른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이 역시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이 사람을 도덕적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막상 행동으로 옮겼을 때 국가와 사회에 어떠한 재앙과 혼란이 일어날 수 있는지 통한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치 않을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관을 인류 문명 위에 확고하게 세운다는 것은 유토피아 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혹자는 길키처럼 영적인 무언가에서 찾을 수 있지만, 당연히 난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지성조차 이기심에 묶여야만 하는가

『산둥 수용소(Shantung Compound by Langdon Gilkey)』를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약간의 물질적 빈곤만으로도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버리는 양심과 도덕의 허술함보다는 제삼자 처지에선 명백히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사람들이 어떻게든 자신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변명하고 온갖 잡다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합리화하려는 의지다. 종교인은 종교적으로, 변호사는 법적으로, 그 밖의 사람들도 바깥세상에서 쌓아온 경험, 지식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든 합리화하려는 집요함은 역겹다 못해 구역질이 다 난다. 인간의 이기심은 단지 생존과 직결된, 혹은 탐욕을 부채질하는 물질적인 문제에서만 그 잔인한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자신이 하는 어떠한 행동도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떳떳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합리화 의지로서도 나타난다.

암울하고도 참혹한 상황에서도 인류를 구원해 낼 것이라 믿었던 지성과 의지조차 이기심을 위해 헌신하는 꼴을 보면, 정말 길키의 깨달음대로 우리는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약하고도 나약하며 어리석고도 어리석은 동물일지 모르겠다. 나 역시 이 책을 덮고, 그리고 오늘의 깨달음을 뒤로하고 내일이 오면 어느새 본연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으로 돌아가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정말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될까? 지난 2,000년 동안 종교가 신의 이름으로 인류와 그 이웃에게 자행한 온갖 잡다한 악행을 떠올려보면 종교 역시 인류처럼 미덥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어쩌면 길키가 고찰하고 성찰한 인류의 문제는 인류가 영원히 풀어야 할 숙제이자, 영원히 풀 수 없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소 희망적인 것은 인류는 이러한 문제들을 인지하고 풀어낼 수 있는 지성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 지성조차 이기심에 묶여 있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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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4.

[책 리뷰] 철부지 청년에서 혁명가로 채색되어 가는 ~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The Motorcycle Diarie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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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청년에서 혁명가로 채색되어 가는 드라마 같은 여정

원제: The Motorcycle Diaries: Notes on a Latin American Journey by Ernesto Che Guevara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만일 위대한 영혼이 인류를 두 개의 적대적인 진영으로 나눈다면,나는 민중과 함께 할 것임을.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244쪽)

의사에서 혁명가로

“그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는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평가를 받은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 그가 의대를 다닐 무렵까지만 해도 가난과 착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민중의 해방을 위한 험난한 무장 투쟁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기미는 도통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어렸을 때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따지고 들던 타고난 정의감과 고등학교 시절 무기 없이는 데모에 참가하지 않을 거라는 투쟁 의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청년기에 접어든 젊은이들이 그렇듯 자신이 가야 할 길 앞에서 방황하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혈기 왕성하고 열정이 끓어 넘치는 한 젊은이로서 민중의 암울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암으로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아쉬움과 가난 때문에 질병에 시달리는 민중을 도와주고자 의사의 길을 선택한다. 훗날 그가 의사의 길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화학자이자 의사인 친구 알베르토와 1951년 12월 코로도바를 출발함으로써 시작된 기나긴 여정은 그 자신도 일지에서 밝혔듯 새사람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의사라는 직업도 민중을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시적이고 일시적인 해결책이다. 질병이 나타나는 증상만 다스리는 것으로는 병을 완치할 수는 없다. 완치를 위해서는 병의 근원을 밝혀내고 재발하지 않도록 밝혀진 근원을 뿌리 뽑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남미의 민중이 겪는 가난과 기아,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인 제국주의의 착취에서 벗어나는 혁명의 길이 될 것이었다.

언제까지나 민중의 편에 설 것을 다짐하다

게바라는 여행 초기까지만 해도 인상깊고 아름다운 풍경을 접할 때마다 연방 감탄하며 그곳에 머물고 싶어한다. 언젠가는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지치면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안데스 산맥 호숫가에 정착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한다. 칠레의 발파라이소에서 몰래 숨어 탄 산 안토니오 호에서 두 사람은 끝없이 펼쳐진 초록 바다를 바라보며 그들의 진정한 소명은 영원히 세계 곳곳을 방랑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여행 초기까지만 해도 꿈 많은 청년다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던 체는 코르도바에서 출발한 지 6개월 정도 지나 들른 산 파블로 나환자촌에서 아래와 같은 고무적인 작별 연설을 한다.

“우리는 아메리카 대륙을 여러 개의 불안정하고 실체가 없는 나라들로 쪼갠다는 것이 완전히 허구라고 믿고 있으며,이번 여행을 통해 이런 믿음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우리는 멕시코에서 저 멀리 마젤란해협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진 민족적 유사성을 가진 하나의 메스티조 민족입니다. 나 자신에게서 편협한 지역주의의 굴레를 벗어버리려는 뜻으로,페루를 위하여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연대를 기원하며 축배를 제안합니다.” (217쪽)

짧지 않은 여행 동안 체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체 게바라는 발파라이소에서 잠시 신세 진 라 지오콘다 술집에서 종업원이었던 늙은 여자를 알게 된다. 그녀는 체처럼 천식환자였지만 제때에 치료받지 못해 이미 손쓸 방도가 없을 정도로 병이 악화되어 심장질환으로 발전해 있었다. 의사로서 완전한 무력감을 느낀 체는 가난 때문에 가족마저 짐이 되고 생존경쟁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떤 변화가 생기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 불쌍한 여자가 헐떡거리는 심장을 끌어안고 살기 위해 식당 종업원으로서 돈을 벌어야 했던,바로 그 부조리한 체제를 타파할 변화 말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생계를 꾸릴 수 없는 가난한 가족의 성원들은 가까스로 서로에 대한 적의를 감추고 살아간다. 그들은 더 이상 아버지,어머니,형제,자매가 되지 못하고 단지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부정적인 요소로만 존재한다. 혹시라도 그들 중 한 명이 환자가 되면 그는 부양해야 되는 나머지 가족들의 원망의 대상으로 전락되기 마련이다. (86쪽)

산 안토니오 호를 타고 도착한 추키카마타 구리 광산에서는 제국주의 착취 현장을 목격한다.

냉혹한 효율과 무기력한 분노가, 증오심에도 불구하고 함께 손을 잡고 그 거대한 광산을 움직이고 있었다. 한쪽 편은 생존 때문에,다른 한쪽 편은 이윤을 위해….
언젠가 우리는 광부들이 노동의 대가를 즐겁게 받아가고 먼지 낀 폐를 웃음으로 씻어낼 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101쪽)

체는 이들을 ‘생존 전쟁의 이름 없는 영웅들인 가난한 노동자들’이라고 부른다.

체는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에서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이 찬란했던 그들의 문명을 잊은 채 체념적이고 운명론적인 삶을 사는 것을 보고는 안타까워한다. 체는 그들이 과거의 영광에 자부심을 품고 정복자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원주민들은 백인들을 못마땅해하면서도 뭔가 변화를 가져올 능동적인 삶을 살지는 않는다. 그들은 가난과 질병, 그리고 착취에 찌들대로 찌들어 현실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감각마저 잃었으며 그들의 아이들은 배가 불룩 튀어나온 앙상한 모습으로 소심하게 기아를 선전한다. 거대 자본의 착취 때문에 만성적인 가난, 기아, 질병에 시달리는 부조리한 삶을 살면서도 개선하려는 의지보다는 고개 숙인 채 자포자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체는 깨닫는다. 만일 위대한 영혼이 인류를 두 개의 적대적인 진영으로 나눈다면,나는 민중과 함께 할 것임을.

철부지 청년에서 혁명가로 채색되어 가는 드라마 같은 여정

게바라는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The Motorcycle Diaries: Notes on a Latin American Journey)』에서 청년다운 낭만적인 기질을 마음껏 드러내며 한 편의 아름다운 로드무비처럼 남미를 경쾌하고 시원스럽게 질주하면서도, 경이로운 겉모습에 감추어진 삶의 이면에 드리운 암울한 그늘도 놓치지 않는다. 고대 도시가 남긴 흔적과 그 위에 새로 솟아난 식민시대 건축물 사이의 상스러운 조화는 그를 예술적인 감상에 빠트린다. 무기력한 원주민의 삶과 계급제도라는 부조리한 이념에 기반을 둔 현실의 질서에 굵직한 변화를 주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사라는 직업은 너무 작게만 느껴진다. 아직 철들지 않은 그들은 장난꾸러기 기질을 맘껏 발휘하며 무전여행의 파렴치한 특권을 만끽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왕빈대인 그들은 적중률 높은 구걸 메뉴얼까지 따로 준비할 정도로 철면피에다 막무가내다. 여행 내내 거지나 다름없던 그들은 살인자 같은 험악한 인상을 한 사람이라도 밥을 사주면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할 정도로 어린애 같은 단순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갈 곳 없으면 경찰서에 스스로 출두하여 구걸하거나 급할 땐 아무 병원의 의사를 찾아가 대놓고 뭔가 먹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뻔뻔하다. 무전취식도 마다하지 않으며 무임승차는 말할 것도 없다. 순전히 호의로 그들을 초대한 어느 독일인의 집에서 하루를 묵었을 때 체는 창턱 위에 걸터앉아 설사하고는 다음날 아침 재빨리 도망치기도 한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혁명가이자 카리스마 넘치던 체 게바라가 손님으로 초대받은 집의 창가에 설사하고 줄행랑을 치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낯선 손님이 급하게 남기고 떠난, 아침에 ‘햇빛에 말라붙어 복숭아 빛을 띠고’ 있던 ‘아주 볼만한 광경’을 본 집주인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이처럼 순수하고 철없는 청년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와 알베르토의 우여곡절 많은 여행을 기록한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거침없이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막 지기 시작한 단풍처럼 울긋불긋한 가슴 아픈 사연들로 검붉게 물들어 있다. 솔직담백함이 듬뿍 묻어나는 문장 하나하나에는 꿈꾸는 젊은이의 뿌리를 땅에 내리고 가지를 하늘로 뻗어내는 양분으로 가득하다. 철부지 청년에서 민중을 위해 헌신한 혁명가 체 게바라로 서서히 채색되어 가는 8개월간의 긴 여정이 담긴 이 한 편의 드라마는 언제봐도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 인간, 그리고 청년 체 게바라의 진솔한 모습이 담긴 소중한 기록이다.

이 리뷰는 2016년 5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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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2.

[책 리뷰] 먼저 간 친구에게 보내는 생애 마지막 편지 ~ 루스 베네딕트(마거릿 리드)

Ruth Benedict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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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친구에게 보내는 생애 마지막 편지'

Original Title: Ruth Benedict: A Humanist in Anthropology by Margaret Mead
인류학이 아주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 새 학문에서 자신이 존중할 수 있는 어떤 실체를 발견했다. 이 학문에 모든 재능을 쏟아 부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왜 나는 현대 미국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개인적 질문에 답변을 얻을 것 같았다. (루스 베네딕트』, p52)

자기 정체성 고민에 빠진 조숙한 소녀

찍 아버지를 여의고 과부 생활의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호소하던 어머니 밑에서 한쪽의 청력까지 잃은 우울한 아이였던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는 소녀 시절 일기장의 한 페이지에 "인생의 문제점은 해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다" 라고 적었을 정도로 또래의 평범한 소녀들처럼 명랑하고 활기차고 약간의 허영심도 내세우는 수줍은 소녀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 깊숙이 침체한 내성적이고 차분한 소녀로 성장한다.

조숙한 그녀는 사회가 권장하는 가치와는 상관없이 진정한 자아를 찾고자 갈망했으며, 이로 말미암아 세상에 보이는 ‘나’와의 내면에 침체한 ‘나’ 사이에서 무엇이 진정한 나인지 갈등을 겪으며 끊임없이 고뇌한다. 이것은 훗날 그녀가 명상과 화두를 통해 무아(無我)의 도를 깨닫는 일본의 선종(禪宗) 사상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자기 정체성 문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그녀는 주변의 생활을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주체하기 어려운 우울증을 억제하기 위해 애를 썼으며, 속으로는 대혼란을 겪으면서도 겉으로는 침착하고 눈물 없는 외양을 꾸미려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일기에는 “이 세상과 마찰하고 부딪히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잃지 않는 확고한 신념, 그게 필요하다” 라는 성찰이 담겨 있는데, 이 짤막한 문장에서 그녀가 주변과의 혼란과 마찰, 무언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우선 그녀는 여자로서 쉽게 떠올리고 선택할 수 있는 결혼을 통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화목하지 못한 부부생활에 어려운 수술을 받지 못하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의사의 날벼락 같은 판정까지 겹치자 베네딕트는 가정에 대한 희망과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 길은 '노력과 창조의 개성적 세계'를 만들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었다. 그렇게 찾은 해법은 바로 인류학이었다.

일탈자가 되더라도 내 갈 길을 걷는다는 것

녀는 자신과 사회를 속이는 위선의 삶을 버리고 비록 사회의 일탈자로 낙인이 찍힐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동성애자의 길을 선택한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확실히 받아들였기 때문에 더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새로운 각오와 자신감으로 학문에 몰두할 수 있었고, 노골적인 성차별과 사회적 편견 속의 무수한 난관까지 극복한 그녀는 문화의 상대성과 문화가 개인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세 부족의 예증으로 명철하게 설명한 인류학의 영원한 고전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을 완성함으로써 위대한 인류학자로 거듭 태어나는 데 성공한다.

루스 베네딕트가 몸담았던 컬럼비아 대학은 대학원에 여학생을 받아들이는 등 당시로써는 좋은 전통을 가진 대학 중 하나였다고 평가를 받았지만, 여자 교수들은 남자 교수들의 식당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성차별은 시대의 지성인이라 자부하던 교수들 사이에서도 당연시되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그녀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베네딕트의 전기를 두 번이나 지은 마거릿 리드조차 솔직하게 밝히지 못했을 정도로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 박해도 대단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베네딕트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결정한 이후에도 공개적으로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힐 수가 없었고 이것은 마거릿 미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회적 역경 속에서도 베네딕트는 청각장애와 수줍은 성격, 우울증을 극복하고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겨 학자로서 대성공을 거두었으니, 미드의 『루스 베네딕트』는 인류학자이며 동시에 20세기 위대한 여성인 루스 베네딕트의 감동적인 드라마이다. (참고로 1980년대 이후에 마거릿 리드의 딸이 두 사람의 관계를 공개함으로써 베네딕트의 성 정체성에 대한 의심이 밝혀졌다.)

두 권의 전기를 집필할 정도로 특별했던 사랑

1922년 바너드대학 프란츠 보아스의 인류학 입문 강좌에서 베네딕트를 처음 만난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A Humanist in Anthropology)』의 저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베네딕트보다 15세 연하였지만, 그 이후 두 사람의 사이는 동료 학자이자 다정한 친구, 그리고 비록 한참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때때로 연인 관계를 유지하며 베네딕트가 사망하는 1948년까지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했다.

친구에 대한 사랑과 우정이 오죽했으면 한 권도 모자라 두 권의 전기를 집필했을까. 그만큼 미드의 베네딕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특별했으며, 베네딕트의 학문적 성취에 대한 존경도 남달랐다. 이에 대한 평가는 부록의 추천사를 쓴 낸시 러트키호스의 말이 정말 가슴에 찡하게 와 닿는다.

이 전기는 마거릿 미드가 먼저 간 친구에게 보내는 생애 마지막 편지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루스 베네딕트』, p402)

당시 (1970년대) 인류학 분야에서 베네딕트에게 쏟아진 비판이 미드에게는 무척이나 견디기 어려웠을 것일까. 첫 번째 전기와 비교하면 이 두 번째 전기는 그러한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베네딕트의 학문적 성취에 대해 좀 더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래서 베네딕트의 삶을 담은 부분은 비교적 적은 페이지를 차지하고 대신에 베네딕트의 주요 연설문과 논문들이 실려 있다.

난 이 전기를 읽기 전에 『문화의 패턴』을 읽었고, 베네딕트의 또 하나의 명작 『국화의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을 읽기 전에 그녀의 배경을 좀 더 알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전기는 베네딕트의 학문적 성취에 대한 강조가 꽤 주요하게 다뤄지니만큼 『문화의 패턴』과 『국화의 칼』을 다 읽고 이 전기를 보는 것이 그녀의 삶과 학문을 이해하기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을 부적응자라고 느끼는 한 여성이 사회 내에서 자기 자리를 찾고 또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감동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확고한 신념과 그에 따른 단호한 행동, 그리고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의 “완벽한 설명 스타일이다. 절제되어 있고, 자신감에 넘치고, 보석을 세공하는 듯하고, 무엇보다도 단호하다. 단정적으로 표현된 단정적 견해”라는 극찬을 받은 베네딕트의 논문을 통해 어설픈 교양서적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지적 호기심의 충족과 그로 말미암은 지적 만족감과 성취감을 만끽하는 데는 충분하리다 본다.

이 리뷰는 2015년 8월 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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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21.

[책 리뷰] ‘라면’, 그리고 나의 학창 시절 ~ 도쿄라멘(베쯔니)

Tokyo Ramen book cover
review rating

‘라면’, 그리고 나의 학창 시절

Original Title: 도쿄라멘 by 베쯔니

라면과 뗄 수 없었던 나의 학창 시절

면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국에서 태어난 이상 야심한 밤에 한국인의 출출한 배를 달래주는 라면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영상 매체의 직간접 광고와 크고 작던 어느 마트를 가던 터줏대감처럼 턱 하니 한 자리를 차지하며 위용을 뽐내는 라면은 낮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허기지는 우리의 가련한 배 속을 자비롭게 채워주는 기특한 녀석이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점심을 거의 매일 라면과 함께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라면의 유해성에 대한 자각이나 비판적 인식이 눈을 뜨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의심조차 없었던, 그저 배부르면 장땡이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옆에 같이 붙어 있던 중고등학교 매점에서 라면을 먹었었는데 가격은 250원이었고 국물만 사면 50원이었다(참고로 매점에서 팔던 삼X 호빵도 50원이었던 시절이다). 그런데 라면 국물이 일반적인 스프 맛이 아니었으며 그 맛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맛있었다. 그 후 5학년 무렵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상계동으로 이사 가고 난 전농동에서 강 건너 강동구로 이사 오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먼 통학 거리 때문에 전학해야 했고, 새로 다니게 된 학교에는 매점이 없었다. 그래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담치기’로 학교 옆 아파트 지하상가에서 점심을 해결하면서 만난 것이 바로 라볶이였다.

B상가 지하에 있다고 해서 ‘B 뽀빠이’라고 간판을 건 아파트 지하상가의 분식집 할머니가 만들어 준 난생처음 먹어보는 라볶이는 모양도 신기하고 맛도 역시 최고였다. 가격은 천 원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내 생각으로는 그 당시(80년대 중후반)에는 지금처럼 라볶이가 아직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근처 분식집에서도 라볶이를 파는 곳은 없었다 .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매점에는 우동과 라면, 그리고 밥류의 식사를 한 가지씩 팔았다. 이때도 역시 난 이 중에서 가장 저렴한 700원짜리 라면을 먹었는데, 한창 허기진 나이였음에도 그다지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얼마나 형편없었느냐 하면 고등학교 졸업한 해에 학교 축전 일로 후배를 찾아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오랜만에 다시 먹어본 그 맛은 가히 ‘폭력’이었다. 역시 시장기가 최고의 반찬이었던 것이다.

너무 빨리 등장했던 ‘라멘’

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진짜 일본식 라면을 먹어봤다. 1994년 강동구 길동 사거리 롯데리아 옆 건물 1층에 일본 라면 전문점이 들어섰는데, 아마도 그 당시에는 정말 보기 드문 가게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라면 한 그릇에 거금 4,500원을 주고(아마도 그 당시 일반음식점의 백반류가 보통 3천 원 정도 했을 것이다) 먹을 형편을 논하기보다는 그러한 돈이 수중에 있었더라도 선뜻 사 먹을 배짱이 안 되었다 . 차라리 그 돈이면 바로 옆 건물 1층 레코드 가게에서 카세트테이프 앨범을 샀을 것이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여자친구의 도움으로 먹게 되었는데, 가게에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그 맛은 ‘어, 이런 것을 4,500원씩이나 주고?’였다. 아마도 인스턴트 봉지 라면에 길들어진 나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진짜 육수로 끓인 그런 고급스러운 맛은 시기상조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가게는 몇 달 못 가서 문을 닫았다. 한국에는 돼지 뼈나 닭 뼈로 진하게 육수를 우려내고 기름에 튀기지 않은 수재 면발의 일본식 진짜 라면보다는 인스턴트 봉지 라면이 먼저 선을 보였고, 하필 그 당시에는 국민 대부분이 배고픈 시기였던 데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를 거뜬히 때울 수 있는 먹을거리가 별로 없었던 모든 면에서 부족한 시기였기에 라면은 곧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음과 동시에 라면은 싼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요즘에는 인스턴트 라면에도 고급화 바람이 불면서 다양한 제품들이 나오고 경제적 풍요 덕분에 다양한 먹을거리를 찾게 된 우리는 일본식 정통 라면에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지만, 일본처럼 라면 한 그릇을 먹으려고 한 시간 이상 기다릴 인내심이 한국 사람에게도 있는지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는 맛에 그리 까다롭지 않기에 아무리 맛있다는 소문이 난 집이라도 줄 서서까지 먹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한다.

진짜 라면은 어떤 것인가?

쯔니의 『도쿄라멘』은 라면의 본고장 일본 각 지방의 특색이 담긴 다양한 소스와 육수로 국물을 낸 ‘라멘’과 그 라멘을 파는 식당을 소개한 책이다.

라멘을 끓이는 냄새가 아주 좋아 곰도 불러들인다는 무시무시한 ‘곰라멘’, 통조림처럼 깡통에 들어 있어 바로 뚜껑을 따서 바로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캔라멘’, 한 그릇에 10만 원이 넘는 최고급 라멘과 그 가격에 걸맞은 회원제 라멘 전문점 등 기상천외한 발상의 나라답게 다양한 라멘과 식당이 소개되어 있다. 더군다나 지은이 베쯔니는 각 라멘집을 순방하며 직접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먹음직스러운 라멘의 생생한 컬러 사진까지 친절하게 책 속에 담아 야심한 밤에 무방비 상태에서 이 책을 감상할(?) 독자의 허전한 뱃속을 요동치게 하기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다. 고로 야심한 밤에 이 책을 보며 평소의 금기를 깨고 무의식적으로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일 냄비를 올려놓는다고 하더라도 애꿎은 책을 탓할 수는 없으리라. 그보다는 본인의 나약한 의지력을 탓하길,

이 리뷰는 2015년 6월 21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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