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골의 꿈 | 교고쿠 나쓰히코 | 탈선? 아니면 넘치는 박식함의 산물?
“그렇습니다. 이 뼈의 주인이 이번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의 진짜 범인이에요.” (『광골의 꿈 下』, p256)
탈선인가? 아니면 넘치는 박식함인가?
민간에 전승되는 요괴나 설화 등의 기괴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것으로 유명한 교고쿠 나쓰히코(京極 夏彦)지만 소재가 바닥난 것일까? 민속학과 종교학에 박학한 요괴 연구가인 그가 결국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고사기(古事記)에 등장하는 신화적 인물까지 끄집어내고 말았다. 엑스트라도 아니고 조연도 아닌 당당히 주연 격으로 말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등장인물들이 500년 묶은 숙원이니 1500년 묶은 숙원이라고 씨부렁대는 것도 과히 지나치지 않다. 분명히 독자는 (나처럼) 미스터리한 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읽는 가볍고 신선한 기대감으로 이 책을 선택했을 터인데, 그런 기대감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고대사 이야기는 따발총처럼 날아든다. 사건을 이해하려면 선택의 여지 없이 그런 이야기를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새겨들어야 하니 독자는 기겁할 수밖에 없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뱀처럼 길고 징그럽기만 한 인명은 읽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유령이나 요괴의 차이도 구분할 줄 모르는 나의 얕은 지식으로는 ─ 일본 사람들도 별로 관심 없거나 잘 알지 못할 것 같은 ─ 일본의 고대 신화를 앞세우는 교고쿠도의 세 치의 혀에 금세 넌더리가 날 수밖에 없다. 알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알고자 했던 것도 아닌 지식을 부지불식간에 받아들여만 하는 독자로서는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단군 신화’에나 나올법한 인물을 대뜸 범인이라고 지목하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사신 같은 사악한 풍모의 교고쿠도에게 제대로 걸린 것 같다. 좀 더 과장하면, 과연 이러한 이야기들이 일반인에게 얼마나 친숙한 이야기일지 의문까지 드는 지경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지만, ‘꿈의 해석’이나 ‘정신분석’, ‘종교적 회심’, ‘프로이트’, ‘정신분열’, ‘신경증’, ‘광신’, ‘양광’ 등을 운운하는 설교성 텍스트는 조금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이 정도 선에서만 유지해 줬으면 이전 작품처럼 현란한 교고쿠도의 말발에 호방하게 넘어갈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설교’인지 ‘현학’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그의 말발이 여전히 매력적으로 남았을 텐데, 이번에는 도가 지나친 것 같다. 지루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고자 선택한 책이 다짜고짜 일본 고사를 들이대니, 마치 따분한 옛 교과서를 보는 것 같아 낭패다. 지루함을 넘어서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당황스러운 것은 둘째치고 괜히 시간만 낭비한 것 같아 불쾌하다. 홍수 난 강처럼 철철 넘치는 작가의 박식함을 감당해내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간혹 일어날 수 있는 탈선일까? 나로서는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광골의 꿈(狂骨の夢)』은 이전에 읽었던 교고쿠 나쓰히코의 세 작품(우무베의 여름, 망령의 상자, 엿보는 고헤이지)보다 지루하고도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운, 인스턴트 라면이나 패스트푸드처럼 배가 고파 먹을 때는 그럭저럭 삼킬 만했지만, 막상 먹고 나면 왜 먹었을까 하고 후회할 수도 있는 그런 소설이 되어버렸다.
‘뼈’로 시작해서 ‘뼈’ 끝나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진지하게 결딴나는 이번 작품의 주요 모티브는 ‘꿈’과 ‘뼈’다. 하나가 정신적 모티브를 제공한다면 다른 하나는 물질적 모티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여기저기 널브러진 사건들을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하나의 큰 사건으로 뭉뚱그리고, 그 사건들 속에 철두철미하게 숨은 (오로지 교고쿠도만이 해독할 수 있는) 오래 묵은 숙원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이자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15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다. 이 신화를 알지 못하고는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사건들을 이해하지도, 해결할 수도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광골의 꿈(狂骨の夢)』이 다소 지루하고 고루하게 다가올 수 있음을 예견하고 있다.
‘꿈’이니 ‘뼈’니, 그리고 여기에 ‘신화’까지 들먹이니 ‘이번엔 정말로 범인이 요괴나 유령이라도 되는 건가?’ 하고 세키구치 같은 흐리멍덩한 의심이 들 수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결정적인 순간이면, “세상에는 말이지요, 이상한 일이라고는 무엇 하나 없어요. 그렇지, 세키구치 군?”이라고 능글맞게 말하는 교고쿠도의 여유만만한고 오만한 말로 대신 대답할 수 있다. 만약 그랬다면 정말 멍청한 요괴 소설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신화나 전설, 요괴 이야기의 신비롭고도 기괴한 점을 현재 펼쳐지는 사건을 해결하는 논리적인 열쇠로 변형하여 그럴듯하게 끼어맞추는 것이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을 읽는 현학적인 맛이 아니었던가? 또한, 추리소설에서는 드물게 종교와 철학, 그리고 이번에는 정신분석까지 끌어들이는 지적인 탐구 역시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에서나 맛볼 수 있는 강점이지 않았던가? 이번에는 신화에 깊게 천착했다는 점이 다소 지루하게 다가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강점이 묻힌 것도 소멸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번에는 너무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고, 그 주제가 나 같은 일반인이 다가가기에는 너무 먼 주제가 아니었던가 싶다.
아무튼, 유괴하는 스님, 뼈를 파내는 신주, 되살아나는 사자나 전생의 기억, 살이 붙어 가는 해골, 바다에 떠오른 금색 해골, 젊은 남녀의 집단 자살, 머리가 잘린 병역기피자 등 현실에서 일어난 서로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해괴망측한 사건들과 불꽃 속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해골 앞에서 교접하는 남녀를 보는 꿈, 바닷속에 빠졌다가 머리뼈만 기세 좋게 수면으로 떠 오르는 꿈, 어릴 적 기괴한 체험으로 뼈를 무서워하게 된 목사가 서로 뭐가 어떻게 관련된 건지 복잡해서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쓸데없이 말발이 서는 교고쿠도처럼 쓸데없이 복잡한 인물과 사건 관계 때문에 나중에는 아예 이해하기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마치 독자를 은근슬쩍 세키구치로 둔갑시키려는 것 같다. 그래도 결국 사건은 해결된다. 당연히 교고쿠도의 그 휘황찬란한 세 치의 혀와 특정 분야에서만큼은 브리태니커 뺨치는 그 박식함으로 말이다.
하지만, 신화까지 들먹어야 해결이 되는 것은 너무 멀리 나간 것 같고, 작가 혼자만 알고 있는 사실들만으로 추리를 완성하는 것은 치사하고 시시하다. 또한, 반전을 짜내고자 비겁한 속임수를 사용하는 것은 여태껏 작가의 추리와 논리대로 잘 따라온 독자를 배신하는 짓이자 독자의 기대를 한순간에 내동댕이치는 짓이다. 지난 작품을 재밌게 읽었고, 교고쿠도의 장광설 같은 궤변에 나름 맛을 들였던지라, 기대감이 너무 지나쳤나 보다. 너무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광골의 꿈(狂骨の夢)』은 마쓰모토 세이초(松本 清張)의 소설 『푸른 묘점(蒼い描点)』처럼 유명 작가의 평작으로 남을만한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Hyakki Yakō" (百鬼夜行) by Kawanabe Kyōsai From Wikimedia> |
여전한 교고쿠도의 못 말리는 친구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서로를 마구잡이로 바보 취급하는 교고쿠도의 들러리 같은 존재이자 못 말리는 친구들인 에노키즈, 세키구치, 기노가 여전히 간헐적인 유쾌함을 선사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과 혼선을 부추기는 경우가 더 많은 교고쿠도의 친구들은 실로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보통의 소설에서도 보기 드문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다. 이들은 상식적인 인물이라고 말하기는 당연히 어렵고, 일반적인 지인이라고도 하기에는 너무 유별나고, 기인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재능이 특출난 것도 아니고, 모자란 재능을 덮어줄 의욕이 왕성한 것도 아니다.
에노키즈는 사람들이 모여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태평하게 잠이 들 수 있을 정도로 방약무인이다. 세키쿠치는 원숭이라고 놀림당하는 것이 하나도 불쌍하지 않을 정도로 칭찬하는 보람보다는 헐뜯는 보람이 더 큰 얼뜨기다. 범죄를 좋아하는 대불(伏佛) 같은 얼굴의 남자 기바는 머리보다 몸이 앞서야만 하는 형사이니 어려운 고사를 들먹어야만 실마리가 겨우 풀리는 교고쿠 나쓰히코가 창조한 사건에서는 더더욱 도움이 안 된다. 이들은 서로를 악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우정을 유지하는 특이한 친구들이지만, 그런 해괴망측한 우정 속에서도 그럭저럭 의리를 견지하는 것이야말로 실로 미스터리다. 이들이 훌륭하게 조연 역할을 해주고 있기에 지루하고 방만하게 느껴지는 이번 작품도 나름 볼만하다고 우길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교고쿠 나쓰히코의 지난 세 작품이 무미건조한 세상을 재밌게 해주는 많은 소설 중 하나인 것은 분명했지만, 『광골의 꿈(狂骨の夢)』에게 그러한 명예를 짊어주는 것은 당분간은 유보하고 싶다. 막상 이러한 글을 쓰고 보니 교고쿠 나쓰히코의 다음 작품을 선택하기가 망설여진다. 고민이다. 도서관에 비치된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 중 읽지 않은 작품은 다 읽으려고 마음먹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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