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카니발 | 안드레아스 프란츠 | 유감스러웠던 독일 국민작가와의 첫 만남
Original Title: Todesmelodie by Andreas Franz, Daniel Holbe
그러나 그보다 훨씬 견디기 힘든 사실은 변태적인 욕구에 눈이 멀어 엄청난 돈을 주고라도 이런 비디오를 살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대서양 이쪽에만 있는 게 아니다. 수요에 따라 가격이 책정된다는 점에서는 섹스도 마약이나 무기 와 마찬가지였다. (『신데렐라 카니발』, p406)
원작자의 갑작스러운 죽음만큼이나 당황스러운 소설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신데렐라 카니발(Todesmelodie: Ein neuer Fall fuer Julia Durant)』은 절반 정도 완성된 안드레아스 프란츠(Andreas Franz)의 유작을 작가이자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팬이기도 한 다니엘 홀베(Daniel Holbe)가 이어 완성한 작품이다. 의도치 않은 공동 집필이니만큼 약간의 매끄럽지 않은 진행이나 탄탄치 못한 구성을 어느 정도 예상했음에도, 고인의 갑작스러운 죽음만큼이나 당황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범인 설정은 약간의 미흡함을 넘어서 작품의 완성도나 격을 떨어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때문에 독일의 유명한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 안드레아스 프란츠와의 첫 만남치곤 매우 유감스러운 자리가 되어버렸다.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다른 소설은 아직 읽지 않았기 때문에 『신데렐라 카니발』의 밋밋하기도 하고 억지스럽기도 한 범인 설정이 프란츠의 죽음이 초래한 원작자의 집필 의도나 구성의 상실이 가져온 부작용인지, 혹은 미완성 유작을 이어받은 다니엘 홀베의 미숙함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프란츠 작품은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 소설 읽기의 참맛을 개연성 있는 추리 과정이나 개연성 있는 범인의 의외성에서 찾는 나로서는 소설 앞부분에 지나가는 말투로 딱 한 번 언급된 인물이 막판에 범인으로 등장하는 무성의한 설정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내가 원하는 개연성 있는 추리 과정이란 모래성을 쌓듯 크고 작은 단서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범인의 윤곽을 조금씩 조금씩 그려나가는 것인데, 이 소설은 단박에 ‘짠’하고 튀어나와 버린다. 다시 말해 소설 초반에 아주 잠깐 언급되고 나서 마지막 범인으로 지목되기까지의 공백은 LA와 뉴욕만큼이나 너무나도 크게 떨어져 있다. 범인을 뒤쫓거나 특정 인물로 용의자를 좁혀가는 과정은 밋밋하고, 그래서 조각들을 모아 퍼즐을 완성하듯 뭔가를 풀어나가는 재미도 없다. 한마디로 범인 찾기 놀이의 미스터리한 재미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형편없다. 한편으론 (정체는 아직 드러내지 않은) 범인의 일인칭 시점으로 범행 동기가 부여되는 시점과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관한 서술을 좀 더 추가하거나, 아니면 이것을 좀 더 일찍 등장시켜 형사들의 수사 활동과 교차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나마 봐줄 만한 사회파 미스터리적인 요소
이런 고로 이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추리가 번득이거나 재치가 넘치는 것도 아니다. 추리적 요소보다는 (전편을 못 봐 정확한 앞뒤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던 율리아 뒤랑(Julia Durant) 형사의 힘겨운 복귀 드라마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물귀신처럼 붙잡고 늘어지는 과거와 트라우마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에 따르는 파트너와의 갈등,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새로운 살인 사건이 주는 압박감 등 삼중고에 시달리면서도 수사11반의 동료와 더불어 다른 지역 경찰과의 협조 수사도 유연하게 이끈 율리아 형사의 복귀는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뼈를 깎는 인고의 노력과 자기희생 정신이 빛을 발휘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외에는 변태적이고 이상야릇한 호기심을 일으키는 ‘스너프 필름’에 얽힌 잔악무도한 범죄를 묘사한 범죄 소설일 뿐이다. 아무리 미완성 유작이라지만, 독일의 국민작가라고 불리는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그렇고 그런 평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가혹한 평가에 공감하지 않는 독자가 더 많겠지만, 아마도 내가 『신데렐라 카니발』에 실망이 큰 이유에는 엄청난 작가라는 선전에 현혹되어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다른 소설은 어떤지 읽어봐야겠다는 호기심과 다른 소설들도 이처럼 실망스러우면 어쩌지 하는 망설임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성인 비디오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 놓고 발산하는 『신데렐라 카니발』은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사회를 향한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스너프 필름’은 마치 도시 전설처럼 어둠의 세계 속에서 기생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변태적인 욕망을 먹고 산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그물망처럼 얽힌 인터넷으로 범죄에 국경이 없어진 덕분에 ‘스너프 필름’의 더러운 생명을 끈질기게 유지해주는 줄기와 뿌리는 쉽게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었고, ‘스너프 필름’의 밥그릇은 사람들의 구역질 나는 추한 욕망으로 철철 흘러넘친다. 여기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즉, ‘스너프 필름’ 전설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좀비처럼 그것을 찾아 헤매는 수요가 좀처럼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남자라면 이러한 사실을 단호하게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개탄할 만한 현실에 대해 가공할 충격과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는 성범죄를 직접 겪은 피해자이고도 한 율리아 뒤랑 형사는 말한다. “자기가 강간 살해를 하는 장면을 녹화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정도면 대체 얼마나 미쳐야 하는 거야?” 그녀의 일침이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일어날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성 상실을 경고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상실된 보편적 도덕성을 저주하고 한탄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자신도 뒤랑 형사의 일침이 가늠하는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소설의 '카니발'은 전혀 이런 분위기가 아니다> |
마치면서...
여담으로 율리아 형사가 속한 프랑크푸르트 수사1반의 강력계 형사들의 성비는 좀처럼 보기 드문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 내근하는 베르거 과장을 제외하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5명의 형사 중 무려 3명이 여성이다. 선진국이라 그런 것일까? 한국인이 보기에 형사 업무 중 가장 고되고 거친 일을 하는 강력계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라는 것은 진보적이다 못해 가히 혁명적이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나이도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활달하고 매력적이지만, 좀처럼 사적인 면모는 드러내지 않는 베일에 싸인 20대 후반의 자비네 카우프만(Sabine Kaufmann) 형사, 늦은 임신으로 조심스럽게 행복에 겨워하는 30대 후반의 도리스 자이델(Doris Seidel) 형사, 그리고 40대 중반임에도 여전히 매력을 발산하고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을 정도로 과거의 일로 정신적 • 육체적 고통을 겪는 율리아 뒤랑 형사가 있다. 나머지 두 남자 형사는 도리스와 드림팀을 구성하는 팀 동료이자 동거인인 페터 쿨머(Peter Culmer) 형사, 뒤랑 형사의 오랜 파트너이자 팀에서 가장 연장자인 프랑크 헬머(Frank Helmer) 형사가 있다.
소설 마지막에 싸움에 익숙한 범인을 추적하던 도리스와 율리아 형사가 되레 범인에게 육체적으로 제압당하는 장면을 보듯, 여성 셋, 남성 둘이라는 남녀평등에 충실한 강력계 팀은 이색적인 구성인 것은 맞지만, 어떤 면에서는 취약한 구성이다. 결국, 범인은 현장에 출동한 다른 경찰관에 의해 제압당하고 이보다 앞서 범인의 정확한 신원은 다른 지역 경찰서에서 밝힌다. 율리아 팀은 나름 훌륭한 팀워크와 직무에 충실한 형사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범죄를 다룬 여타 소설처럼 영웅은 없다. 사건 해결은 약간의 운과 근면 성실함, 그리고 다른 지역 경찰들의 협조 덕분에 어줍게나마 마무리된다. 그들 하나하나는 나름 유능하지만 그렇다고 특별나지는 않은 보통 형사들이다. 철저하게 1인 영웅 놀이를 배제한 구성은 평범함 속에서 현실성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 또한 영웅 놀이의 속물성과 그것에 동반하는 상업성에 일침을 가하는 작품의 또 다른 긍정적인 부분이다. 한편으론, 과거에 ‘위대한 지도자’의 영웅 놀이에 독일 전체가 참가했다가 쓴맛을 톡톡히 본 독일 역사가 남긴 교훈이 아직도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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