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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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왕 | 허를 찌르는 미스터리

The Beggar King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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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왕 | 올리퍼 푀치 | 독자의 기우에 허를 찌르는 또 다른 미스터리

“레겐스부르크에서는 시민이 아니라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해!” (『거지왕』, 248쪽)

달갑지 않은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된 악몽

숀가우의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목욕탕 주인과 결혼해서 오래전에 먼 제국 도시 레겐스부르크로 떠난 누이동생 리즈베트가 중병에 걸려 위급하다는 급보였다. 다급한 퀴슬은 도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법원 서기 요한 레흐너의 허락도 받지 않고 치료에 쓸 약을 챙겨 급하게 숀가우를 떠난다. 그러나 퀴슬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잘 짜인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교묘하고 악의적인 함정과 가혹한 고문이었다.

한편, 숀가우의 제빵업자이자 시의원인 미하엘 베르히틀트는 자신의 하녀를 임신시키고, 하녀는 아무도 모르게 낙태하는 과정에서 시의원이 준 약초를 과다복용하고는 죽는다. 약초에 대한 지식이 있던 지몬과 퀴슬의 딸 막달레나는 음흉한 베르히톨트의 속마음을 꿰뚫어보지만, 마을 사람 중에서 그 누구도 사형집행인의 딸, 그리고 그 딸과 놀아나는 지몬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베르히톨트는 막달레나가 더는 이 일을 떠들지 못하게 사람들을 선동하여 위협을 가한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막달레나의 고모 리즈베트처럼 도시를 떠나기로 한다. 목적지는 고모가 있는 레겐스부르크로 정하고 간단하게 짐을 꾸린 두 사람은 도나우 강 위를 흐르는 뗏목에 몸을 싣는다.

Die Henkerstochter und der König der Bettler by Oliver Pötzsch

본격적인 미스터리의 맛이 조금은 느껴지는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거지왕(Die Henkerstochter und der Koenig der Bettler)』은 아담한 숀가우를 벗어나 제국을 이끄는 거대한 중세 도시 레겐스부르크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예나 다름없는 우리의 고집 세고 호기심 많은 주인공들은 제국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는 음흉하고 거대한 음모에 맞서느냐 어느 때와 다름 없이 험난한 시련과 마주친다. 고문의 대가 퀴슬은 얼핏 이름만으로는 어떤 고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처녀의 무릎’, ‘스페인 당나귀’, ‘못된 리즐’ 등 자신이 즐겨 사용하던 고문 도구의 희생양이 되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함정에 빠진 퀴슬은 감옥에 갇혀 가혹한 고문을 받으며 하지도 않은 짓에 대해 자백을 강요당하고, 뒤늦게 도시에 도착하여 이 사실을 알게 된 막달레나와 지몬은 퀴슬을 구하고자 안간힘을 짜내며 고군분투하는데, 이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이번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자 재미다.

숀가우를 떠나 도시에 도착한 막달레나와 지몬이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뗏목 마스터이자 외의원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카를 게스너이다. 그다음으로 카를 게스너의 소개로 찾아간 고래 여관에서 만나는 베네치아 대사 실비오 콘타리니가 있다. 그리고 지몬의 치료를 받은 거지의 소개로 만나게 된 거지왕 나탄, 마지막으로 주인공들과는 그리 긴밀하게 접촉하지는 않지만, 사건의 배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레겐스부르크의 회계국장이자 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파울루스 맴밍거가 있다.

이번 작품의 묘미는 주인공들과 얽히고설키는 주변 인물 중에서 누가 정의의 편이고 누가 악마의 편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그들은 언뜻 보면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그러한 때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쉽사리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치밀함을 시종일관 유지하기 때문에 누가 정의의 편인지 구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특히 일반적인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또한, 저자 올리퍼 푀치(Oliver Pötzsch)는 제국을 파괴하려는 음모의 핵심을 추리할 수 있는 소재를 작품 초반에 드러내는 대담성을 과시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켜 있기 때문에 독자는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으며 한여름이 훨씬 지났음에도 손은 올챙이들이 헤엄칠 정도로 땀으로 웅덩이를 이룰 것이다. 물론 아둔한 나는 모든 단서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완성된 지그소 퍼즐처럼 보기 좋게 맞추어진 다음에야 사건의 진상을 깨닫기는 했지만, 눈치 빠른 독자는 꼭 내가 밟은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드디어 드러나는 퀴슬의 과거

전작들처럼 『거지왕』도 역사적 검증을 거쳤으며 거대한 부를 상징하는 화려하고 육중한 유력자들의 주택, 깨끗하게 포장된 거리, 위엄 있는 의회 건물과 성당으로 장식한 도시와 그 이면에 감춰진 지저분하고 악취 나는 그늘지고 후미진 골목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곰팡이처럼 기생하는 도시의 이중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놀랍지 않은가. 예나 지금이나 도시의 그늘진 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도시가 제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무자비한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때론 적대적이기도 한 도시 속의 이 두 체계가 놀라우니만큼 조화를 이루고 산다는 것을.

아무튼, 『거지왕』에서 주인공들의 삶에 많은 변화가 오고 그들의 어둡고 침침했던 과거의 베일도 어느 정도 걷힌다. 특히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숀가우를 과감하게 뛰쳐나온 막달레나와 지몬의 운명이 어떻게든 결정되며, 그리고 15살에 아버지가 물려준 양손검을 등에 메고 용병으로 군에 입대한 퀴슬이 ‘두 사람 몫’을 한다는 이유로 하사관으로 승진하고 그런 와중에 겪은 악몽 같은 전쟁 경험이 퀴슬이 빠진 함정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쓸쓸하게 회상된다. 그것은 주변에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지옥처럼 불길이 타오르는 전쟁 중에 만난 아내 안나와의 금기시돼왔던 과거의 베일이 조금씩 걷히기도 하는 불편한 되새김질이기도 하다.

올리퍼 푀치의 전작 두 편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거지왕』 역시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특히 앞의 두 작품의 주요 소재였던 ‘보물찾기’와는 전혀 다른 미스터리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비슷한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것은 아닐지에 대한 이유 있는 기우를 갖은 독자라면 아무 걱정 없이 이 작품의 첫 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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