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위 미친 여자 | 쑤퉁 | 옷깃을 스치는 살근한 바람 같은 이야기
언뜻 보기에는 눈에 띄는 미모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시들시들했다. 다리 위 미친 여자는 유난히 외롭게 보였다. (『다리 위 미친 여자』, 「다리 위 미친 여자」, p10)
융산의 눈에 고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 그녀는 진심으로 이 거리를 벗어나 아주 멀리 떠나고 싶었다. 이제 진정으로 고향을 떠난 것이다. 그녀만 아는 약간의 추억을 제외하고, 이 거리는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정말로 이 거리를 떠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다리 위 미친 여자』, 「집으로 가는 5월」, p348)
자신은 과거를 기억하는데 과거는 일찌감치 당신을 잊어버린 것 같아 씁쓸함과 허탈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집으로 가는 5월」에 나오는 엄마 융산은 아들과 함께 몇 년 만에 고향을 찾아왔지만, 개발과 도시화로 폐허가 된 자신의 옛집에서 추억을 북돋아 주고 향수를 달래줄 아스라한 그 무엇도 발견하지 못한다. 얼마 전까지 고행에 살던 남동생은 연락도 없이 옛집을 팔고 이사를 가버렸고, 황폐하고 쓸쓸한 거리에는 죄다 낯선 사람들뿐이다. 사업차 고향을 방문한 샤오멍(「대기 압력」)은 중학교 시절 물상 선생님으로 보이는 듯한 노인네가 안내하는 숙소에 숙박한다.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썰렁하고 볼품없는 시설이 가져온 험악하게 일그러진 분위기 때문에 샤오멍은 사제관계를 밝히기 어려워한다. 짜증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찝찝한 기분을 뒤로하고 샤오멍은 베란다 밖으로 펼쳐진 황량한 주변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다 자신이 다니던 옛 학교가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채 철거 중인 것을 보게 된다. 「다리 위 미친 여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치파오를 뽐내고 다녔던 찬란했던 과거 속에서 자란 환영의 나무에 위태롭게 매달린 앙상한 잎사귀들로 현실을 덮어보려 하지만, 오히려 냉혹한 현실에 반격당한 그녀는 ‘미친 여자’로 낙인찍힌다 …… 그래서 과거는 과거 속에 묻어둘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인지로 모른다. 기억에서 나오는 순간 과거는 모진 세월과 냉정한 현실에 의해 오염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치파오는 이런 느낌? 그런데 좀 통통...> |
쑤퉁(蘇童)의 『다리 위 미친 여자(紙上的美女)』는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쓸쓸함과 애틋함, 혹은 잊고 싶은 과거에 대한 애도와 비애가 아롱아롱 스며 나오는 소담한 단편집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읽은 쑤퉁의 다른 작품들(『쌀』, 『화씨 비가』)과는 달리 인간성과 삶, 그리고 운명에 대한 소름 끼치는 묘사와 집요한 파헤침은 이 단편집에서만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그 자리에 과거와 현실에 대한 차분한 관조가 들어섰다. 그래서 생뚱맞게 물귀신이라든가, 태어나자마자 털이 난 거대한 고추를 가진 아기가 등장할지라도 단편집 『다리 위 미친 여자』는 지나치게 격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차분하지도 않은 채, 설교에 지친 중생들의 지루함을 해탈시키고자 14편의 짧은 이야기로 설법하는 스님처럼 유유자적 제 할 이야기를 다 한다. 그것은 뭔가 낯설고 이질적이면서도 삶의 한 단면을 발효시키는 효소가 되는 시금털털한 이야기다. 그래서 옷깃을 스치는 살근한 바람처럼 결코 우리와 동떨어지지 않은, 절대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사실 『다리 위 미친 여자』는 저자 쑤퉁의 다른 작품들처럼 뭔가 극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바라고 책장을 펼쳐 든 독자라면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는 단편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인 음식에 물린 사람들이 기필코 가정식을 찾듯, 이 작품은 엄마의 푸근한 사랑이 담겨 있는 가정식처럼 소박하고 소탈하면서도 푸짐하고 푸근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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