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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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힘든 긴 밤 | 극야 같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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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힘든 긴 밤 | 쯔진천 | 극야 같은 길고도 긴 어둠에 갇힌 진실

“개소리하네! 그따위로 따지자면 사건은 어떻게 해결하나? 모두가 싸우지 않고 마음 편히 지내려고만 하면 누가 고인을 대신해 진실을 밝히고, 누가 자기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느냐고!” (『동트기 힘든 긴 밤』, p195)

잘 쓰인 사회파 추리소설

이런저런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가끔은 자기가 방금 읽은 것이 단지 소설 속 이야기로만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소설 속 이야기가 심장을 도려내는 날카로운 아픔과 가슴에 사무치는 슬픔, 그리고 분통을 금할 길 없는 기가 막힌 사연으로 독자의 심금을 사정없이 짓밟는다고 해도, 또한 독자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소설 속에 빠져있다고 해도, 독자가 끝내 오열을 터트리지 않고 견뎌낼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이 결국 소설 속 이야기일 뿐이라는 자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론 그런 바람이 순진한 이상주의자의 비현실적인 꿈처럼 공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것은 소설이 단순히 현실과 작가의 상상 속 나래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어두운 면과 불편한 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조타수 같은 역할로서도 본분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쯔진천(紫金陳)의 『동트기 힘든 긴 밤(長夜難明)』은 중국 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와 부정을 폭로하는 사회파 추리소설로서의 직분을 백 퍼센트 이상 완벽하게 수행함으로써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독자의 울분을 화산처럼 분출시켰을 뿐만 아니라, 10년 넘게 묵은 부정부패를 폭로하기 위해 가짜 살인사건을 꾸민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로 추리 • 범죄소설 마니아의 엉큼한 호기심도 십분 만족시켜주는, 아주 잘 쓰인 사회파 추리 • 범죄소설이다. 정말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추리소설을 만났다.

극야처럼 길고도 긴 어둠 속에 갇힌 진실을 파헤친다는 것

술은 10년을 묵으면 명주가 되어 뭇사람들을 기분 좋게 취하게 해주지만, 오심이나 오판이 10년을 묵으면 뭇사람들을 원한과 원통함에 치를 떨게 하는 처절하고 애통한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다. 라는 사실을 『동트기 힘든 긴 밤』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라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10년간 오판 사건을 바로잡기 위해 그들이 걸어온 길은 통한의 눈물 없이는 감히 마주할 수 없는 비극의 길이었다. 만리장성은 끝이라도 있고, 대장정은 함께 할 많은 동료라도 있었지만, ─ 단지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했을 뿐인 ─ 어느 올곧은 대학생에게 씐 누명을 벗겨내기 위한 여정은 우주의 심연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고독하고 위험한 길이었다.

권력과 재력으로 무장한 조직의 견고함은 철의 장벽과도 견줄만하지만, 그것보다 자신들이 저지른 온갖 더러운 악행을 은폐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함과 비열함은 범죄가 범죄를 낳는 악의 온상이다. 그들은 누군가 자신들의 치부에 한 발자국 다가올 때마다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영악함을 보이기도 했으며, 그들에게 맞서 진실을 밝히고 억울한 사연을 풀어야 하는 것이 직업이고 의무인 사람들조차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 혹은 개인적 출세에 눈이 멀어 그들을 외면했다.

아무도 진실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데, 어떻게 정의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 진실은 많은 사람이 알수록 감추기 어려운 법이지만, 진실을 듣기 위해선 세상을 올바로 볼 수 있는 용기와 무슨 일이 있어도 정의만큼은 수호하겠다는 의지도 필요한 법이다. 사람들이 진실을 외면할 때, 그 행동하지 않는 악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살찌우는 영양제가 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동트기 힘든 긴 밤’이라는 책 제목이 시사하듯, 진실은 극야 같은 길고도 긴 어둠에 갇히게 될 것이다.

책 제목조차 한 번 어둠 속에 파묻힌 진실에 광명의 빛이 비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지를 표현하고 있듯, 소설 속에서 소수의 용기 있는 사람들이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대장정만큼이나 길고도 험난한 이야기는 처절하고 눈물겹다. 성난 황소처럼 덮쳐오는 긴장감과 분노가 갈마돌며 나의 연약한 영혼을 지속해서 강타하는 바람에 읽는 내내 입술이 바짝 마르고 속이 다 타들어 갔으며,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엔 거의 녹다운 상태였다. 나도 이 정도인데 엄연히 자신들이 처한 현실이기도 한 중국인에게는 어떠했겠는가? 아마도 이 이야기가 중국 인민에게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한눈을 판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독자를 빠져들게 하는 몰입감 높은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중국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부정부패를 10년 묵은 체증을 뚫어주듯 시원하게 폭로하는 그 통쾌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Long night is hard to come by by Zijin Chen
<누군가에겐 긴 밤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겠지...>

우리는 과연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가졌을까?

『심리죄: 프로파일링(心理罪: 画像)』의 레이미(雷米)와 『사악한 최면술사(邪惡催眠師)』의 주하오후이(周浩暉), 그리고 『동트기 힘든 긴 밤(長夜難明)』의 쯔진천을 중국 추리 소설계의 3대 인기작가라고 하는데, 이 세 권을 모두 읽어본 나로서는 앞선 두 소설을 이 책과 비교한다는 것은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동트기 힘든 긴 밤(長夜難明)』은 종잡기 어려운 이야기 전개부터 명확한 사회적 메시지, 그리고 폭발적인 플롯과 군더더기 없는 구성에 문장삼이(文章三易)까지 갖춘 뛰어난 소설이다. 이렇게 인상적인 감명을 준 추리소설은 찬호께이(陳浩基)의 『기억나지 않은, 형사(遺忘.刑警)』 이후로는 오래간만이다.

『동트기 힘든 긴 밤』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들추어내고 그곳에 진실의 빛을 밝히는 일은 소수의 용기 있는 결단과 소수의 단호한 의지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소수는 사회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누군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면서도 그 누구도 하려 들지 않는 위험하고 고생스러운 일을 기꺼이 떠맡았을 뿐만 아니라 때론 자신의 젊음, 일, 명예, 미래, 가정, 심지어는 목숨까지 바치는 이 사회의 진정한 숨은 영웅이다. 오로지 악으로 치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막장 사회가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고 그나마 유지되는 것은 그들의 혁혁한 공로 때문이리라. 하지만, 소설은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소수의 영웅으로부터 시작된 일이 마무리되는 데는 대중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 역시 말해주고 있다.

한두 사람이 던지는 돌멩이는 기껏해야 창문 한두 개 깨트리는 보잘것없는 수준의 무기지만, 수천수만이 던지는 돌멩이는 한 정권을 굴복시킬 수 있는 엄청난 힘을 지녔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그리고 ‘민주화 운동’이라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뼈저린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진실도 이와 마찬가지다. 성폭력은 한두 사람이 알고 있었을 때는 그저 개인적인 상처와 아픔 정도로 취급되었지만,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일으킨 파장과 그 영향력을 보면 진실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고 공감할수록 그 진실을 억누르는 어둠의 세력을 이겨낼 힘도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불편한 진실’을 포함하여 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이고,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은 그 진실을 억누르는 어둠의 힘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어둠의 힘은 범죄 집단이나 부패 조직처럼 거대한 세력일 수도 있고, 세상에 불평등과 불공정함을 낳고 그것을 지속시켜온 우리의 시스템일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우리의 나약함일 수도 있고, 악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려는 우리의 비겁함일 수도 있다. 그것이 단지 나약함과 비겁함에 대한 개인적인 비난 정도로 끝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하는 것 외에 내가 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나 역시 그런 사람인 것을.

중국의 고질병, 부정부패

만약 중국이 스탈린 시대의 소련 같은 억압적인 독재 체제였다면, 체제의 치부를 드러내는 『동트기 힘든 긴 밤』 같은 책은 당연히 출판되지 못했을 것이며, 책을 쓴 작가도 당연히 ‘굴라크’라는 악명 높은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을 것이다. 이 책이 금서 목록에 오르는 영광을 얻지 못한 이유는 철저한 부정부패 척결을 표방한 시진핑 정부의 노선과도 무방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정부가 도시부터 작은 마을까지 암처럼 번식하는 ‘갖가지’ 부정부패에 경악했다면, 이 책은 그 ‘갖가지’에 세밀함을 더한 것뿐이다. 아무리 큰 ‘호랑이’라도 결국엔 낙마하고 만다는 이 책의 통쾌한 결말은 중국 정부의 단호한 의지와도 일치하니 일말의 선전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한편으로 이 책의 출판과 성공은 중국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대한 심각성을 중국 정부나 인민이 암묵적으로나마 인정하는 것이며, 작가는 이런 분위기를 잘 이용해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권력과 재력을 가진 자와 그들 밑에서 떡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는 한심한 자들이 야합하여 온갖 추태를 저지르는 것은 일상다반사라지만, 부정부패의 엄청난 규모와 그 수단과 방법의 기상천외함에서 중국을 능가할 국가가 또 어디 있을까? 중국은 국가 일인자가 부정부패 척결을 핵심 슬로건으로 내걸고 정풍운동을 벌어야 할 정도로 여전히 정치적인 면에서는 후진국이다. 하지만, 전직 두 대통령이 연달아 감방에 갇히고 대법관까지 구속되는 마당에 우리라고 뭐 나은 것 있나?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않을까? 아니면, 더 심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교활함에서 앞서고 오랫동안 단련해 온 은폐 기술이 좋은 덕분에 잘 걸리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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