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꾼들 | 발따사르 뽀르셀 | 과거를 향한 뿌리칠 수 없는 노스텔지어의 마법
그러나 지금 비센 바랄은, 차츰차츰 그것들이 실제 대중의 세계, 진짜 존재하는 인간의 세계이며, 자신은, 비센 바랄이란 인간은 단지 하나의 소외된 피조물로, 과거의 추억의 하나로서 그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납득하기 시작했다. (『밀수꾼들』, p296)
들어가면서
흔히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혼란과 시련을 ‘풍랑(風浪)’이란 단어에 비유한다. 이것은 자연 속에서 크고 작은 ‘물결’과 ‘바람’ 잘 날 없는 것처럼 사람의 삶도 크고 작은 시련의 연속이란 뜻이다. 끈질기고 지속적인 풍랑의 힘은 아무리 크고 뾰족한 바위라도 모래알처럼 작고 매끄러운 돌조각으로 변화시키듯, 만물의 영장인 사람도 세월과 시련의 풍화를 겪고 나면 한껏 부푼 풍선처럼 팽팽했던 얼굴은 호두처럼 쭈글쭈글해지고, 하늘을 찌를 듯 곧추섰던 등도 다 익은 벼처럼 구부정해진다. 이러하니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맞닥트리게 되는 시련의 연속을 ‘풍랑’에 빗댄 것은 실로 탁월한 비유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인생의 ‘풍랑’뿐만 아니라 자연 속의 ‘풍랑’과도 맞닥트리며 싸우는 사나이들이 있다. 바로 발다사르 뽀르셀(Baltasar Porcel i Pujol)의 『밀수꾼들(Los argonautas)』에 등장하는 마도로스들이다.
기억의 닻을 올려 과거로 항해하라!
선장 레오나르, 마담 선장 뿌익-사발, 갑판장 요렝, 요리사 빼나, 기관사 비센과 쁘루덴시, 선원 미르꼬 등 총 7명의 마도로스는 보따폭 호 위에서 짧고 굵은 인생의 한 시기를 교차시킨다. 이들이 비록 한배를 타고 있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의 위험과 재량껏 피해갈 수 있는 사회적 위험에 목숨을 건 도박을 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공통점은 없다. 성장 배경, 각기 살아온 길, 신념, 그리고 현재 처한 상황도 제각각인 이들에게 밀수는 위험이 따르는 만큼 빠르게 큰돈을 벌 기회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에게선 여타 건전한 사회 조직에서 볼 수 있는 뜨겁고 진한 동지애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은 항해 초기부터 심하게 앓아눕기 시작한 기관사 비센에 대한 선원들의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쁘루덴시를 제외한 모든 선원이 죽어가는 비센을 외면한다. 참다못한 쁘루덴시가 비센을 육지 병원으로 호송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항의해도 선장은 외면한다. 끝내 두 사람이 주먹다짐까지 하고 나서야 레오나르는 마지못해 한발 양보한다. 하지만, 그것은 죽어가는 비센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쁘루덴시가 배에서 내리겠다는 협박이 유효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비센을 제외하면 쁘루덴시가 배의 유일한 기관사였기 때문에다. 그가 배에서 내리면 항해는 지속할 수 없고 그러면 밀수도 끝장이다.
불법을 자행할 만큼 삶의 풍랑을 겪을 대로 겪고 벼랑 끝에 선 이들에겐 매사가 마지막 기회일 수밖에 없다. 항해를 어떻게든 성공하겠다는 독이 오른 의지 앞에 양심과 보편적 상식은 두부조차 썰 수 없는 녹슨 칼처럼 무뎌진다. 이들에게는 바다를 감상적으로 바라보는 육지 사람들과는 달리 바다는 투쟁의 대상이다. 설령 그것이 이길 수 없는 괴물 같은 상대라도 말이다. 생명의 보고이자 인류 문명의 발전과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바다는 인류가 짐승을 길들여 가축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봄처녀 같은 종잡을 수 없는 바다의 변덕 앞에 선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무사히 항해를 마칠 수 있기를 신께 기도하거나 약간의 재물을 바쳐 어르고 달래는 일뿐이다.
하루하루를 잊을만하면 존재감을 과시하는 경찰의 감시망에 덥석 걸려들까 봐, 혹은 지금은 연인과 질퍽한 사랑을 나누고 난 후의 달콤하고 몽롱한 피로에 못 이겨 새근새근 잠든 봄처녀처럼 얌전하지만, 언제 어느 때 일어날지 모르는 바람맞은 노처녀의 히스테리 발작 같은 거친 풍랑에 꿀꺽 삼켜질까 봐 걱정하고 가슴 졸이는 고도로 긴장된 뱃 생활을 사는 이들의 하릴없는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것은 바로 기억이다. 사실 이런 걱정을 머리와 마음속에서 마법의 칼로 깔끔하게 도려낸다면 선원들에게 보이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과 청명한 푸른 하늘 아래 비단처럼 펼쳐진 쪽빛 물결뿐이고, 선원들의 귀에는 고즈넉한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항해하는 배가 파도를 가르는 청명한 물소리와 프로펠러를 돌리는 엔진 소리만이 엄마의 자장가처럼 리드미컬하게 들릴 뿐이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과거로의 항해는 현재의 시름을 잠시나마 덜어주고, 조마조마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데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밀수꾼들』의 선원들은 항해에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난 후의 남는 시간에는 기억의 닻을 올려 과거로의 항해에 빠져든다.
<망망대해에서 그들이 의지할 것이라곤 ‘기억’뿐일 수도...> |
과거는 과거일 뿐, 결국 내일은 좋은 날이 되기를 희망하게 된다
선원 레오나르는 배에서 가장 큰 책임과 의무를 짊어진 사람임에도 배를 타는 것은 자기가 진정 살아가고자 하는 삶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잃어버린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돈을 마련하여 자신을 떠난 아내 바르바라를 되찾을 생각뿐이다. 아빠의 손에 이끌려 열네 살 때 처음 밀수일에 참여한 갑판장 요렝은 아내 또니나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삶도 죽었다고 생각한다. 육지에서의 삶은 죽었다고 판단한 요렝은 바다에서 다른 삶을 시작하고자 배를 탔다. 요리사 빼나는 자식 가운데 누군가가 이틀이나 먹을 것을 들고 오지 않으면 엄한 몽둥이질을 했던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궂은 과거의 기억이 그를 험난하지만, 잘만 하면 한밑천 단단히 잡을 수 있는 밀수의 길로 떠밀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고독하게 자란 기관사 비센은 한때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개들과 함께 있는 것을 더 좋아하던 등대지기였다. 그러나 밀수꾼들의 은닉처를 제공해 준 일이 들통나는 바람에 6개월 동안 감옥에 갇히고 등대지기 직도 박탈당했다. 그래서 그는 애들을 대학에 보내 사회에서 강한 인간으로 키울 돈을 마련하고자 밀수선을 탔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무가치했던 삶과 기나긴 방황, 자기와 가족의 파멸 원인은 한 국가와 한 인간이 겪은 재난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우울해하는 기관사 쁘루데시는 지긋지긋한 스페인을 떠나 남미에서의 새 삶을 시작할 돈이 필요했다. 쇠락한 명문 가문에서 지루한 유년 시절을 모험 소설로 근근이 달래가며 성장한 뿌익-사발은 한때는 아내와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둔 어엿한 선장이었다. 그러나 술에 취해 충돌 사고를 일으켜 선원 두 사람을 잃고 나서는 완전히 끝장나버렸다.
멀고도 험난한 인생의 바다에서 포부의 돛을 올리고 저마다 가리키는 지침이 다른 꿈의 나침반을 간직한 채 항해를 시작한 7명 선원은 인생의 ‘풍랑’에 휩쓸린 나머지 난파선의 생존자들처럼 보따폭 호에 표류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그들에겐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두려움과 지루함을 달래줄 과거라는 마약이 있었다. 하지만, 중독성 강한 마약들이 그러하듯 추억과 회상이라는 마약은 잠시 아픔을 잊게 해줄 뿐 고통의 근원이 되는 상처를 치료해 주지는 않는다. 과거의 은은한 살굿빛 영상을 상영하는 빛바랜 스크린은 현실이라는 얌체 같은 불청객에게 찢어지기 마련이고, 그럼 그 틈새로 현실의 강렬하면서도 우울한 잿빛 영상이 쏟아지면 보따폭 호의 선원들은 마지못해 오늘과 내일을 생각한다. ‘내일은 좋은 날이 될까?’
우리들의 항해, 우리들의 이야기...
스페인의 대표 작가이자 열정적인 기자 발따사르 뽀르셀이 『밀수꾼들』은 보따폭 호에서 7명 선원의 결코 합치될 수 없는 개인적 삶이 과거에서 캔 기억의 조각들과 교차하고 부대끼는 순간을 잘 익은 콩깍지가 벌어지듯 톡톡 튀고 별처럼 반짝이는 문장으로 묵직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그려낸 항해 소설이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육지에서의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마지막 남은 기회는 그나마 감시의 눈과 경쟁의 압력이 육지보다는 느슨한 바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틈만 나면 육지에서의 삶을 회상하며 추억한다. 그리고 큰돈을 모아 육지에서의 새 삶을 시작할 희망에 젖는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이라도 흙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서는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 중의 한 종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숙명일까. 어찌 되었든 지중해에서 한 곳은 파도가 잔잔한데도 다른 곳에서는 거친 파도가 치는 것처럼 인생의 풍랑은 시도 때도 없이 닥치고 얄밉게도 공평하지도 않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가득 차 있다 해도 우리는 보따폭 선원들처럼 ‘내일은 좋은 날이 될까?’라는 막연한 희망에, 그리고 가장 행복했던 과거를 추억하며 고단한 하루하루를 이겨낸다는 점에서 우리와 보따폭 선원들은 슬프고 애처로운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래서 그들의 항해는 우리의 항해이고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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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레 합니다.
답글삭제https://singingdalong.blogspot.com/2017/10/Free-mp3-download-app-CrazyMusic.html
QQ음악 PC버전은 없나요?
노래 다운로드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제 블로그에 다른 프로그램들이 몇 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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