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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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 너덜너덜한 삶에 대한 연민과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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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 위화 | 인민들의 너덜너덜한 삶에 대한 연민과 극적인 화해

사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피를 팔지 못한 것이다.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했는데, 이제는 자기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니……. 집에 또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허삼관은 울면서 가슴을 열어젖힌 채 길을 걸었다. (『허삼관 매혈기』, 325쪽)

같은 소재, 다른 분위기의 두 작품

오늘 소개하는 위화(余华)의 『허삼관 매혈기(許三觀賣血記, The Chronicle of a Blood Merchant)』와 더불어 내가 읽은 중국 문학 중 매혈을 소재로 한 작품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옌롄커(閣連科)의 『딩씨 마을의 꿈(丁庄夢)』이다.

『딩씨 마을의 꿈』은 혈두들의 악착스럽고 비위생적인 채혈 과정과 뒤처리 때문에 온 마을에 열병, 즉 에이즈가 퍼진 실제 일어났던 (실제 사건에서의 에이즈 전염 과정은 소설과는 사뭇 다르지만) 사건을 모티프로 인민들이 겪는 고통과 상처를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판타스틱 리얼리즘’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인민들은 에이즈에 걸린 것도 억울한데 지역 간부들에게 에이즈로 죽은 인민들을 위해 정부에서 무료로 지급한 관마저 착취당한다. 이것도 모자라 지역 간부들은 에이즈로 죽은 젊은 남녀의 영혼을 맺어주는 음혼으로 사리사욕을 채운다. 피를 착취당하고, 죽어서 누울 관도 착취당하고, 편안히 안식을 취해야 할 영혼마저 착취당하는 인민들의 고달프고 비참한 삶은 체제가 쌍심지를 켜고 비난하는 자본주의마저도 울고 갈 정도다.

소설 『허삼관 매혈기』의 주인공 허삼관은 시골 사람 따라 멋모르고 한 매혈 덕분에 동네에서 유명한 미인 ‘꽈배기 서시’허옥란과 결혼하여 아들 셋까지 얻게 된다. 그 이후에도 구차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넉넉하지도 않은 허삼관 가족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구세주 같은 허삼관의 매혈 덕분에 겨우겨우 상황을 모면해 나간다. 즉, 『딩씨 마을의 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빨아대는 흡혈귀 같은 혈두와는 달리 『허삼관 매혈기』에는 3개월에 한 번이라는 건강상의 규칙을 지키려는, 나름 직업 정신이 조금은 박힌 혈두 아래에서 매혈은 농사지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농민들에겐 결혼도 하고 새집도 지을 수 있는 매우 큰 소득이며 매혈을 불쾌하게 바라보는 도시 사람들에게도 적지않은 소득이다. 『딩씨 마을의 꿈』에도 매혈은 성에서 가장 가난했던 딩씨 마을이 길도 새고 깔고 집도 새로 지을 정도의 아주 큰 수익이다. 그러나 다사다난했던 역경을 이겨낸 끝에 소박한 안정을 누리는 허삼관 가족과는 달리, 십 년 세도(勢道)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는 속담처럼 딩씨 마을의 매혈로 말미암은 부귀영화는 에이즈라는 죽음의 병으로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The Chronicle of a Blood Merchant by Yu Hua
<헌혈 좀 합시다!>

결국, 한 작품은 금서로

두 소설 속의 매혈 옹호자들은 매혈을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나 샘물에 비유하지만, 매혈을 바라보는 두 작품의 입장은 조금은 엇갈린다. 매혈이 인민의 가난한 삶에 적지 않은 소득을 안겨준 것도 사실이고 매혈 때문에 에이즈가 퍼진 것도 사실이므로 두 작품은 매혈 관습의 서로 다른 이면을 들춰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에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에이즈 사건은 한 용감한 여의사의 폭로 덕분에 이슈화될 수 있었던 것처럼(그 이후 여의사는 진실을 폭로한 용기의 대가로 자택에서 거의 반감금 상태로 지낸다고 한다) 중국 정부로선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치욕스런 사건이다. 그래서 두 작품 중 한 작품은 출간 후 얼마 안 되어서 판금조치와 함께 발행과 재판, 홍보가 전면 금지되었다 .

인민들의 너덜너덜한 삶에 대한 연민과 극적인 화해

가족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피를 팔아가며 겨우겨우 상황을 모면해나간 허삼관은 말년에 이른 어느 날 거리를 걷다 우연히 (매혈 후 보양식으로 늘 먹던) 황주를 곁들인 돼지간볶음이 간절하게 먹고 싶어진다. 식당 앞에서 오 분이 넘도록 서성이며 고심한 끝에 음식을 사먹을 돈을 장만하러 병원으로 간 허삼관은 사십 년 만에 거절당한다. 그것도 자신의 막내아들보다 어린 새파란 젊은이한테 칠장이한테나 가서 피를 팔라는 모욕을 듣고서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아내 허옥란이 마구 욕을 퍼붓자 허삼관은 아내에게 근엄하게 한마디 한다. “ 그런 걸 두고 좆 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고 하는 거라구 .”

소설 『허삼관 매혈기』에는 세상을 달관한 듯한 해학과 골이 깊은 갈등이나 대립을 해결해주는 극적인 요소들이 적재적소에서 긴장을 완화해주기 때문에 옌롄커의 작품과는 달리 마음과 정신적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한마디로 『딩씨 마을의 꿈』은 꿈처럼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인민들의 삶을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들려주는 뜬구름처럼 막연하면서도 꿈처럼 환상적이며 몽환적인 이야기로 승화시킨 작품이라면, 『허삼관 매혈기』는 근근이 연명해가는 인민들의 너덜너덜한 삶을 연민과 극적인 화해와 용서, 깨알 같은 소소한 희망과 삶을 통달한 듯한 해학으로 낡은 옷가지를 덕지덕지 기우듯 그럴싸하게 꿰맨 작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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