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수업 | 조정로 | 혁명이라는 밑그림으로 채색된 쓸쓸한 첫사랑’
민주가 무엇인가요? 민주는 강산을 호령하며 용감히 분노하고 욕할 수 있는 자기 믿음이자, 평등하게 참여해 말하는 게 효과를 갖는 작은 일상적 분위기이자, 자기 집처럼 주인이 되는 책임감이죠. (『민주수업(民主課)』, 505쪽)
중국공산당 11기 6중전회(1981년)에서 통과시킨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대한 결의」에서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은 철저하게 부정되었고, 이후 문혁은 개혁 • 개방 이후 중국의 새 역사와 단절되었다. 문혁에 대한 부정은 중국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이제 더는 혼돈과 파괴로 얼룩진, 그리고 정치와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대중 선동이나 혁명 같은 과격한 방법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단호한 표명 이다.
혁명은 고통스럽고, 투쟁은 잔혹하며, 희생은 피할 수 없다. 혁명은 구질서를 파괴하고 새질서를 세운다. 그러한 과정에서 정치적 • 사회적 혼란은 통과의례다. 천하대란(天下大亂)이 천하대치(天下大治)에 달하게 한다는, 즉 혼란은 적을 혼란시키고 혼란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중은 되레 단련됨으로써 ‘천하대치’라는 이상 사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마오쩌둥은 말하지 않았는가. 진정한 무산계급은 잃을 것이 없기에 혼란도, 파괴도 두렵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그 누구보다 혁명에 열성적으로 임하며 미련없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 그러나 개혁 • 개방 이후 부유해진 중국은 잃을 것이 많아졌다. 겉으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고는 하지만, 자본주의적 제도가 도입되면서 사회주의 사회의 주도 계급이었던 노동자와 농민이라는 무산계급은 자본주의적 착취와 억압, 그리고 소외 대상인 하층계급으로 전락했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가난하지만, 과거엔 모두가 가난했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나 중산층이 대거 떠오르면서 그들의 빈곤도 상대적으로 더 드러나게 되었고, 그래서 참기 더 어렵게 되었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임을 표방하는 이상 노동자, 농민, 혹은 농민공(農民工: 중국에서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하급 이주 노동자)은 겉으로는 여전히 무산계급이지만, 자본주의적 착취와 소외, 그리고 상대적 빈곤과 후퇴하는 사회주의 복지 정책에 좌절하는 그들은 철면피가 아닌 이상 더는 무산계급이라 지칭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개념으로 설명하기에는 모호해진 그들의 위치를 중국인들은 ‘저층(底層)이라고 부른다.
<중국에도 민주주의의 날이 올 수 있을까?> |
문혁을 세밀하고 농후하게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조정로(차오정루, 曹征路)의 『민주수업(民主課)』에서 문혁은 현재의 중국과 단절시키고 현재의 중국이 부정해야 할 실패한 혁명이 아니라 현재 중국 사회의 문제와 앞으로 중국식 사회주의가 나아갈 길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경험으로 접근 한다.
혁명 과업을 위해 하나뿐인 자식마저 팔아넘긴 혁명 원로는 혁명의 목표는 왕조를 교체하는 도구도 아니고, 노래를 부르며 자신이 무대에 오르는 것도 아니다. 혁명의 목표는 중국 사회의 기본 제도를 철저히 바꿔 인민이 진정 정신적 자립을 이룸으로써 국가의 주인이 되도록 하고, 이를 인민 전체가 인식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공산당원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혁은 일시적이었지만 논공행상하며 작위를 세습하고, 무리를 짓고, 파벌을 만들어 대중을 기만하고, 억압하는 관료주의의 어두운 면을 대명, 대방, 대자보, 대변론 등을 통해 아래로부터 위로의 방식으로 폭로하는 문화 혁명이었다 .
이 말은 곧 공산당은 구국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민 대중의 요구와 외침을 쓰든 달든 모두 새겨들을 필요가 있으며, 한편으로 인민은 ‘천하라는 건 우리의 천하고, 국가라는 건 우리의 국가다.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말하겠어요?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요?’라고 당차게 의사를 개진하는, 혁명을 위해 풋풋한 첫사랑마저 희생한 소명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중국이 혁명으로 일어선 나라임은 틀림없으나 첫술에 배가 부를 수 없듯 한두 차례의 혁명으로 대동(大同) 사회가 건설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문혁은 실패한 혁명이 아니다. 그저 한 차례의 실험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실험은 바로 자신이 자신을 교육하는 ‘민주수업’이었다 .
조정로의 『민주수업』은 10여 년의 문혁 시기 중 인민해방군이 문혁에 참가하게 된 4년여간의 좌파 지지 시기를 인민해방군 출신 주인공의 회상이라는 밑그림에 주인공의 첫사랑이자 혁혁한 혁명가 기질을 지닌 소명의 일기를 채색하여 완성 해 냈다. 혁명적 사유와 고찰이 한국인에게는 조금은 낯설고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그런 와중에 아련하고 애틋하게 펼쳐지는 주인공과 소명의 이루지 못한 첫사랑 이야기는 숨 가쁜 혁명 운동이 일으키는 혼탁한 먼지를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소나기가 되어 다소 딱딱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법한 혁명과 사상, 이념의 독해를 정화해주는 시원한 청량제다.
『민주수업』의 혁명 이야기가 따분하다면 주인공과 소명의 사랑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감질나는 소설이다 .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청춘 시절의 첫사랑, 그 이후 다른 사람을 만나 여러 번 사랑을 나눈다고 해도 잊을 만하면 다시 생각나는 첫사랑, 그렇게 세월이 흘러 수십 년이 지나 지천명에 이르렀을 무렵, 거리에서 우연히도 첫사랑을 만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러한 분위기는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를 들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애틋한 최면에 빠지게 되는, 아련하면서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는 그 감상 그대로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늘그막에서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순전히 서로 간의 오해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만큼 억장이 무너지는 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 겪을 고통은 뿌질뿌질하고 후회 막심함에 마음을 고시르다가 결국 가슴이 아리다 못해 갈가리 찢어발겨 지는 영혼의 고통이리라.
보는 이에 따라 주인공과 소명의 첫사랑 이야기가 문혁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등지고 펼쳐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문혁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에 희생된 가련한 한 떨기 장미 같은 사랑이야기로 비치기도 한다. 낡고 꾀죄죄한 군복에 땀과 피가 뒤범벅된 퀴퀴한 냄새를 피워 올리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첫사랑, 그 사랑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혁명 과업과 이상, 그리고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을 훼방 놓는 동지들의 우연찮은 야심과 야망, 역사와 운명의 장난.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꼭 집어 뭐라 말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다난했던 읽기수업이다. 그럼에도,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체한 것처럼 육중한 뭔가가 내의 가슴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진행 중인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미련일까. 아니면 주인공처럼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일까. 그도 아니면 또 다른 미련이 남아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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