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비밀무기 V-2 | 트레이시 D. 던간 | 우주여행이라는 인류의 요원한 꿈으로 시작했던 로켓 개발
만약 우리가 이룩한 대부분의 획기적인 기술발전이 전쟁을 위한 무기 개발의 결과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인간이 훌륭한 영혼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일까? (『히틀러의 비밀무기 V-2』, 379쪽)
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는 최초의 탄도미사일인 V-2라는 신무기가 있었다. 북한이 모든 국력을 총동원하여 개발 중이기도 한 탄도미사일 시스템에는 여러 개의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인류의 멸종을 거론할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다. 하지만, 이런 현대적 미사일 시스템에 비해 형편없는 성능을 지녔기 때문일까? 아니면 패전국의 무기라는 오명 때문일까.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때 개발한 V-2는 당시 많은 전문가를 당혹하게 할 만큼 획기적인 기술의 집약체였음에도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며, 전문가들의 역사적인 평가 역시 시간과 노력, 자원의 총체적인 낭비였다는 매우 비판적인 논조가 주류를 이루었다.
V-2는 가혹한 역사의 평가처럼 실제 전쟁에서도 형편없는 무기였을까? 이에 대해 『히틀러의 비밀무기 V-2(V-2: A Combat History of the First Ballistic Missile by T. D. Dungan』는 그렇게 혹평을 받을 만큼 V-2의 활약이 미미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연합군의 전략기획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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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부터 네덜란드 해안에서 영국을 향해 발사된 미사일은 약 1,300발이었으며 이 가운데 런던 근교와 그 외 지역에 각각 500발 이상의 로켓이 떨어졌다. 나머지는 훗날 역사가들의 혹평대로 각종 오작동으로 말미암은 불발, 공중폭발 등으로 연합국에 큰 피해를 주지 못한 것들이다. 인명 피해에 대한 공식 통계로는 총 2,724명이 목숨을 잃었고, 6,467명이 중상을 입었다. 많은 사람이 영국만 V-1, V-2 무기의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과 달랐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연합군의 주요 보급기지로 쓰였던 안트베르펜은 총 6개월 동안 V-2 1,600발 이상이 떨어짐으로써 런던보다 더 많은 V-2 공격을 받았다. 사상자 수도 30,000명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V-2 공격의 진정한 위력은 공격받은 시민에 한없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공습경보 같은 조치도 취할 수 없을 정도로 V-2는 느닷없이 공격해 들어왔으며, 당시 연합군의 기술로는 음속을 돌파하는 엄청난 속력으로 대기권에서부터 곤두박질 쳐 하강하는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예고 없이 당해야 한다는 무력감과 공포심에 질린 시민은 하루하루 요행만을 바라며 불안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V계열 무기는 연합군의 무제한 폭격으로부터 독일이 잠시나마 한숨 돌릴 수 있는 틈을 주었다. 뉴욕타임스가 독일군이 마침내 연합군 폭격기를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연합군은 V계열 무기가 실전 배치되기 전부터 V계열 무기의 잠재먹인 위협을 분쇄하려는 ‘크로스보우작전’ 명에 따라 엄청난 규모의 폭격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연합군의 노력을 비웃듯 V-1(최초의 순항미사일), V-2의 공격, 즉 ‘펭귄작전’은 예정대로 시작되었다. 이후에도 연합군은 V-2의 이동식 발사지점을 찾아 파괴하느냐 무진 애를 썼지만 큰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
V-1, V-2 무기의 ‘V’는 ‘Victory’, 즉 ‘승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치선전장관 괴벨스가 전국 라디오 연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보복(vergelten)’에서 따온 ‘V’이다. 즉, 나치의 광신적인 파괴 의지 아래 무차별적인 살육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V계열 무기다. 이후 히틀러가 죽고 독일이 항복하고 그럼으로써 방대한 V-2 관련 자료와 V-2 개발에 종사했던 인력이 연합군 측으로 넘어가면서 V-1은 토마호크 같은 순항미사일, V-2는 악명 높은 스커드 미사일 같은 전술 탄도미사일의 개발로 이어졌다. 또한, V-2 관련 기술은 인류의 오랜 염원인 우주여행의 첫출발에 밑거름되어 아폴로 탐사를 성공하게 했다.
원래 로켓은 공상과학소설에만 등장했던 우주여행의 꿈을 현실로 옮겨놓기 위한 첫 단추였다. 그러나 전쟁이 없다면 인류의 요원한 꿈이었던 우주여행이나 우주탐험에 대한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지원과 연구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왜냐하면, 독일이 V계열 무기를 개발하고 있을 때 미국에선 고다드 박사 역시 로켓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당시 미국에서 로켓은 군사적 용도로는 저평가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 트레이시 D. 던간의 예리한 지적처럼 인간은 자신의 창의성과 교활함, 그리고 잔인성을 전쟁에서 증명해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효율적으로 인명을 살상하고 문명을 파괴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들이 그 기술들의 적대적 목표에서 벗어난, 예를 들어 우리 같은 운이 좋은 사람들에겐 죽음과 파괴가 아니라 편리함을 주었다. 여전히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현실의 인류를 보면 비록 인간이 이기적일지라도 영혼만큼은 수정처럼 맑고 깨끗하다는 변론은 정말이지 궁색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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