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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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자연이 선택한 신경계 컴퓨터, 혹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스티븐 핑커 | 자연이 선택한 신경계 컴퓨터, 혹은 운영체제?

book review | How the Mind Works | Steven Pi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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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역설계하다?

마음을 역설계한다니, 마치 마음이 자동차처럼 쪼개고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는 기계장치라도 되는 듯하다. 과학주의에 대한 흔한 비판이 생물학적 복잡성을 물질이나 원자 수준으로 단순화시키는 기계론적인 환원주의인 것을 고려하면, 마음을 역설계한다는 것은 도전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이 당황스러운 발상만큼이나 마음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인류의 지식수준 역시 당황스러울 정도로 보잘것없다.

우리는 마음의 존재를 확신한다, 우리의 언행을 마음이 촉발하거나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함에도 왜 마음이 존재하는지는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왜 마음이 존재하지를 모르니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은 더더욱 알 도리가 없다. 그냥 존재하니까 존재하는 것이고, 작동하니까 작동한다. 당연한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고 비난해도 반박할 도리가 없다. 인류의 삶과는 동떨어진 우주에 대한 사실들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마당에 인류의 삶과 직결되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감조차 못 잡는 실정이니 과학의 편파성을 염려해야 할지, 과학자들의 게으름을 비난해야 할지, 아니면 인류의 무지를 한탄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만큼 마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마음 그 자체만큼이나 복잡하고 까다롭고 혼란스럽고 어렵다. 석학들의 그럴듯한 토론들도 마음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이 자리에서만큼은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미뤄두고만 있을 수도 없다.

우선은 ─ 당연히 나를 포함한 ─ 인류의 호기심이 가만 놔두질 않는다. 그리고 마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면, 세상을 이해하는 인류의 지식도 언제가 막다른 골목에 이를 것이다. 마음속에 존재하는 세계의 작동 방식에 대한 근원적이고 기초적인 전제를 끝끝내 알아낼 수 없다면,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고민과 마음의 가장 최상위층에서 일어나는 언행으로 마음의 작동 방식을 어림짐작하는 수준에서 끝끝내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점은 마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면 사람처럼 말하고 사람처럼 행동하고 사람처럼 생각하는 ─ 공상과학 장르의 단골 소재인 ─ 똘똘한 로봇은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알아낼 방법 중 역설계는 현재로선 최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중국어로 된 앱을 한국어화하기 위해 디컴파일(Decompile)하는 것도 일종의 역설계, 즉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기술이다. 바이두 넷디스크 앱만 해도 디컴파일하면 오만가지 파일들이 나오는데, 이보다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진 마음을 역설계하면 무엇이 나올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프다. 일은 벌이지도 않았는데 지레 겁먹은 뇌세포들이 불에 구워지는 오징어처럼 움츠러드는 것이 희미하게 감지된다. ZIP이나 RAR 같은 압축 파일 풀 듯 쉽게 풀리는 것도 아니고, 친절하게 설계도 같은 것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막막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이 단순하게 단 하나의 구조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이는가? 마음이 구조가 밝혀진다고 해서, 마음이 해체된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 그 믿음이 무엇이든지 간에 ─ 우리의 믿음이 무너진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마음의 비밀을 밝히는 것은 영혼의 부재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의 존재를 확신하는 그 믿음이 어디서 기원하는지를 밝히려는 것이다.

book review | How the Mind Works | Steven Pinker
<인류가 마음을 설계하는 날이 올까?>

자연이 선택한 신경계 컴퓨터, 마음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How the Mind Works)』는 마음의 복잡한 구조를 역설계라는 공학적 기술을 통해 설명하려는 현대적인 진화 이론이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계산할 수도 없고, 그려볼 수도 없는, 그리고 인류가 아직 만들어본 적이 없는 마음을 역설계하여 구조와 작동 방식을 파헤친다고 하니 정신 나간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이 조상들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준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역설계로 사람의 장기를 인공적으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한창인 요즘의 기술 수준을 생각하면 마음을 역설계한다는 발상이 그렇게 정신 나간 소리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다만, 이 책이 만족스럽게 번역되려면 최소한 다섯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옮긴이의 하소연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을 만족스럽게 이해하려면 그만큼의 바탕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독자의 정신을 가출시킬 수 있는 (보통은 ‘졸음’이라는 익숙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난해한 요소는 얼마든지 있음을 미리 충고해 주고 싶다. 한 번 정도의 읽기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물론 이해력이 뛰어난 독자라면 상황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마음의 작동 방식 중 가장 밑바닥이자 가장 모호한 부분을 파헤치는 내용(대체로 초반부)만 잘 극복한다면 중 • 후반부, 즉 마음의 작동 방식 중 가장 현실에 와닿는 부분이자 체감적이기도 한 감정, 생각, 지성 등이 나오는 부분부터는 가출한 정신이 제 발로 돌아올 정도로 앎의 기쁨과 깨달음의 짜릿함은 이룰 말할 수 없을 정도니, 고진감래가 따로 없다.

그렇다면 과연 마음은 어떻게 작동할까?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읽는 도중 종종 졸음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던 나로서는 뭐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고, 그럴 능력도 안 된다. 그런데도 뭔가 통찰을 얻었다면, 그것은 우리 주변에 널린 사물 중에서 마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비교 대상은 바로 컴퓨터 정도라는 것? 즉, 자연이 선택한 신경계 컴퓨터가 마음이다(실제적으론 더 복잡하고 정교하지만 말이다). 마음은 우리 조상들이 식량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특히 사물, 동물, 식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 자연선택이 설계한 기관들의 연산 체계다. 이것이 스티븐 핑커가 말하는 계산주의 마음 이론의 핵심이다.

여기서 하드웨어는 뇌이고 소프트웨어는 마음이라 볼 수 있다. 소프트웨어가 상위 요소에 하위 요소를 포함되는 계층적인 구조로 설계되어 있듯 마음도 그렇다. 스티븐 핑커는 각각을 요소를 ─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않은 ─ 모듈로 명명한다. 마음의 최상위층 기능에는 언어, 입체시, 감정, 지성 등이 있으며 그 아래층에는 생각, 사고가, 그 아래층에는 감각, 인지가, 그 아래층에는 표상, 심상으로 불리는 모호한 것들이, 좀 더 아래층에는 좀 더 모호한 마음어(mentalese)가 있다(이 분류는 순전히 자의적이니 그냥 참고만 하자). 윈도우에서 사용자가 특정한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EXE 실행 파일과 함께 많은 수의 DLL 파일들이 연계 모듈로서 로딩된다는 점을 상기하자.

계산주의 마음 이론은 물리적 세계에 포함한 믿음과 욕구로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는데, 굳이 비유하자면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사용자가 특정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사용자가 포토샵을 실행하고자 한다고 해보자. 포토샵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은 정보다. 사용자가 포토샵을 실행하고 싶다는 것은 욕구다. 포토샵 아이콘을 더블 클릭하면 프로그램이 실행된다는 사실은 믿음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산주의 마음 이론은 정신의 원동력을 에너지가 아니라 정보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포토샵이라는 프로그램을 모르면 포토샵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도 들 수 없다. 따라서 정보가 없으면 욕구와 믿음도 없다. 마음은 정보를 처리함으로써 지각하고, 상상하고, 흉내 내고, 계획한다. 윈도우라는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는 사용자의 입력을 인지하고, 그것을 처리함으로써 작동하고 뭔가를 실행한다.

당신은 무슨 ‘마음’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가?

물론 내 비유적인 설명이 완전히 헛다리 짚은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의 호기심을 적절히 간지럽히는 싱그러운 바람일 될 수도 있다(오직 이것만이 내 의도이고 내 의지다!). 한편으론 독자의 이해를 방해하는 최악의 설명일 수도 있다는 불안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의 리뷰가 나의 빈곤한 이해와 초라한 지식을 증명하는 반역 행위가 되더라도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시각기관이 어떻게 망막에 비친 증거로 이 세계의 가장 그럴듯한 상태를 계산해 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행복의 비극 3막까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착상으로부터 그 누구도 깨닫지 못했던 마음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스티븐 핑커의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지적 유영을 놓친다면 천추의 한일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컴퓨터 작동 방식을 몰라도, 또는 리눅스나 윈도우 같은 운영체제 소프트웨어의 세부적인 작동 방식을 몰라도 사용법만 익히면 누구라도 컴퓨터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모든 운전자가 자동차 정비공처럼 자동차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세세하게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들을 모른다고 해서 운전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마음의 세부적인 구조와 마음의 작동 방식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 최소한 우리가 살아있는 한 ─ 작동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정보에 기인한 욕망과 믿음을 연료로 마음을 운전하면서, 때로는 운전당하면서 하루하루를 쏜살같이 살아간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운전하는 운전자이자 유일한 소유자다. 하지만, 컴퓨터나 윈도우처럼 우리의 마음 역시 때때로 오작동한다. 멀미하고, 환상이나 환청에 시달리고,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다. 자신과 타인을 속이거나 죽인다. 아마도 이러한 오작동들은 마음이 자연선택의 부름을 받았던 아무 먼 과거(좀 더 정확히는 수렵 • 채집 시대)와 현재와의 환경적인 차이에서 기인한 일종의 통과의례일지도 모르겠다(산업 시대 이후 살인율은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주장을 방증한다). 한편으론 컴퓨터처럼 버벅댈 때도 있다. 이것은 단 한 번이라도 짜장면과 짬뽕을 사이에 두고 고뇌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는 순간적으로 사람을 멍때리게 만드는 예기치 않은 상황과 맞닥트렸을 때도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의 부재일까? 아니면 하드웨어 성능이 부족한 탓일까? 이 업데이트를 완성하거나 하드웨어 성능을 끌어 올리는 데 필요한 것은 시간일까? 아니면 우리의 자유의지일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마음의 과정은 어디서 발생하고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어떻게 마음은 도형으로 된 글자를 언어로써 인식할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명확해지기보다는 전기충격에 정신을 잃고 물 위로 떠오른 물고기들처럼 궁금한 것들만 둥둥 떠오른다.

book review | How the Mind Works | Steven Pinker
<마음을 설계할 수 없다면, 생각하는 로봇도 없다?>

우주만 경이로운 것은 아니다...

끝으로 마음의 다층적인 구조와 복잡한 작동 방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다면 본능이 적어서가 아니라 많다는 점에서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큰 차이점을 보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본능은 세계의 작동 방식에 대한 최소한의 전제이자 마음 가장 밑바닥에 있는 모듈과 일정 부분 겹치는 가장 근원적인 정보다.

이 모듈은 세계를 인식하는 데 꼭 필요한 유전적으로 고정된 틀이라고도 볼 수 있다. 본능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환경, 다양한 상황, 다양한 기회, 다양한 위험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도 다른 동물처럼 ─ 매우 긴 세월이 있어야 하는 ─ 유전적 변화를 기다릴 필요 없이 마음이라는 매우 유연한 소프트웨어와 이를 추동하는 수많은 본능이 있어서 가능했다. 생각해봐라. 우리의 육체는 치타나 말보다도 느리지만, 마음은 자동차를 발명하여 그들을 앞선다. 우리의 육체는 새처럼 하늘을 날 수는 없지만, 마음은 비행기를 개발하여 새를 앞지른다. 꿀벌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면, 마음은 순전히 이성과 지성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했다. 이래서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중요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려나? 아무튼, 마음 덕분에 인류는 팔방미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편으로 인류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은 우주를 경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동물일 수도 있다는 의미도 된다. 현실 세계에서 사람의 삶은 대부분 갈등과 경쟁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고, 마음은 이것을 ─ 폭력을 사용하든 타협을 통해서든 ─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자연선택의 적응적 의지라 해도, 나의 마음을 운전하는 주체는 ‘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마음의 설계 뒤에 숨은 궁극적인 목표는 그 마음을 창조한 유전자의 복사본을 최대한 많이 퍼뜨리는 것이라 해도 우주를 바라보라고 한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바로 ‘나’의 마음이라는 점에서 마음은 우주만큼이나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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