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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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역열차 | 밑바닥 인생의 진솔한 토로

추천하는 책

고역열차 | 니시무라 겐타 | 밑바닥 인생의 진솔한 토로

새벽 일찌감치 동트기 전에 집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고 집을 나와 한강 둔치에 있는 생태공원에서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보면, 요즘 같은 아침저녁으로 쓸쓸한 계절에는 그제야 희미하게 날이 밝기 시작하고, 아파트 후문에 있는 사거리 한 모퉁이에는 허름한 복장에 운동화나 작업화를 신고 배낭을 멘 아저씨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문을 보는 사람, 멀거니 서 있는 사람, 담배를 피우는 사람 등 그들의 가지각색의 모습에서 자세한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일용할 양식을 위한 일터로 데려다 줄 차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그들을 조금 치켜세우면 우리 사회의 밑거름이 되는 기초적인 일을 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대접이나 관심을 못 받는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우리가 안전하게 쉬고 편하게 잠을 자는 집과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지어 주었고, 우리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반듯한 길과 쭉 뻗은 도로를 닦아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우리가 필요한 상품을 날라다 주었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과 전기, 그리고 가스를 집까지 공급할 수 있는 기반시설을 지어주었다. 우리가 보고 만지는 것, 발을 디디는 곳, 어디 하나 빠짐없이 그들의 땀과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 대해, 그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苦役列車 by 西村 賢太

내가 문득 이런 감상적인 생각을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니시무리 겐타의 『고역열차』를 읽고, 그들의 황량한 뒷모습에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간타가 아침 일찍 회사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그날그날 바뀌는 작업 장소로 출근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야마 가타이로부터 시작되어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로 완성된 일본 특유의 사소설(私小說)의 전통을 이었다는 니시무라 겐타. 그래서 그의 작품 『고역열차』는 그가 중학교 졸업 후 집을 나와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온 처절한 삶의 황량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렇게 작가의 치부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가방끈 짧았던 작가의 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그대로 담은 『고역열차』는 독자에 따라서는 불쾌감과 동시에 거부감을 안겨줄 수도 있는 진솔한 작품이다. 솔직히 한낱 실마리 같은 희망하나 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하루살이 같은 고달픈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거기에는 행복한 결말도 없고 더는 떨어질 곳도 없는 밑바닥 중의 밑바닥 인생만이 있을 뿐이다. 특히 표지 안쪽에 실린 한 성격 할 것 같은 작가의 사진을 보면, 순탄치 않음을 넘어 작품의 제목 그대로 작가의 험난한 인생을 고역스런 열차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달려온 고행 같은 삶의 흔적이 느껴진다.

작가의 체험을 소재로 한 소설로서는 막심 고리키의 단편집 등 다수의 작품이 존재하지만, 그러한 작품들과 니시무라 겐타의 『고역열차』 분위기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니시무라 겐타의 소설에는 꾸밈이나 과장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독자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작가의 의지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더불어 희망도 없다. 아니 애써 희망을 품으려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진정한 밑바닥 하루살이 인생이 아니겠느냐는 식이다. 『고역열차』를 읽는 내내 나는 40년 넘은 으슥하고 허름한 공동주택을 혼자 떠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나사 한두 개를 넘어서 수십 개는 빠진 듯한 축 처진 어깨와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듯한 유령 같은 몰골로 복도에서 마주치는 말이 없는 주민들, 재래식 공동화장실에서 공동주택 구석구석으로 풍기는 방문자에게 충격을 넘어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끔찍한 악취. 그래서 그럴까.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꼭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제대로 뒤처리를 하지 않은, 뒤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다.

그래도 난 『고역열차』를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밑바닥 중의 밑바닥 인생을 보고 그나마 내 삶은 다행이라 여기는 나약한 자의 염치없는 감상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작품 속의 주인공 간타가 외줄 타기 같은 아슬아슬한 하루하루를 패배자의 인생이라고 낙담하면서도 구차스럽게나마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이 나태하고 우유부단으로 점철된 나의 게으르고 염치없는 삶보다 훨씬 값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까지 읽지 않고 도중에 포기한다는 것은 왠지 작가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죽을죄를 저지르는 것 같은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조금은 험상궂어 보이는 작가의 사진 때문일까. 꿈에서라도 작가가 날 찾아와 흠씬 두들겨 패줄 것 같았다. ‘포기할 거면 애초에 시작하지를 말지 뭐하러 읽었느냐.’라고 꾸짖으며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툭하면 시비를 걸고 짜증도 잘 내지만 그런 불량배기질을 끝까지 밀어붙일 배짱이 턱없이 부족해서 결국 아무것도 아닌 소심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간타의 처량하고 쓸쓸한 뒷모습에서 진정 내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 책을 덮고 후기를 다 쓴 지금도 영 뒤가 개운치 않다.

뿌리가 그런데다 후천적으로 다른 사람과 사귀는 일에 일종의 체념과 두려움 같은 것을 지닌 채 인격 형성기를 지내버린 그에게는 어차피 백 명의 친구보다 한 잔의 술이 훨씬 더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오로지 물질적인 것에서 곤란을 느낄 따름이었다. (『고역열차』,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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