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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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문화사 | 책과 독서문화의 변천

From authors, books and pirate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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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문화사 | 데틀레프 블룸 |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갈 책과 독서문화를 가늠하다

지적 소유물을 강탈하는 성향은 호모 사피엔스 유전자에 잠재해 있다. (『책의 문화사』, 235쪽)

우리는 책의 역사에서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파급 효과를 일으킬 매체혁명의 과도기에 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전자책의 대중화인데, 전자책은 지금까지 책의 역사에 있었던 어떠한 매체혁명과도 다른 성격과 특징을 띄고 있다. 점토판을 시작으로, 파피루스, 양피지를 거쳐 지금의 종이 등 매체혁명의 주인공들은 물질적인 매체를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양피지든 종이든 지금까지의 책은 사람이 손으로 직접 만져 재질감을 느낄 수 있는 물질적인 매체에 인쇄됐다. 그러나 전자책은 지금까지 생산된 책의 재질과는 전혀 다른 매체인 전자 잉크 패널, LCD 패널 등의 디스플레이 기술을 사용한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복제라는 종이책에 비하면 가히 혁명적인 생산과 판매 방식을 사용하는 전자책은 비용과 자원도 그만큼 적게 든다.

Von Autoren, Büchern und Piraten: Kleine Geschichte der Buchkultur by Detlef Bluhm

이런 전자책의 장점은 우선 책의 부피와 무게의 제한에서 완전히 탈출했다는 것 이다. 더는 가방 속에 참고서나 수험서, 또는 여러 권의 책을 무겁게 넣고 다닐 필요가 없다. 전자책은 전자책을 볼 수 있는 태블릿, 스마트폰 등의 기기에 저장 용량이 허용하는 만큼, 혹은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다면 필요한 만큼 책을 보관하거나 내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책장을 한 손에 들고 다니는 격이 된다. 이렇게 가볍고 휴대가 편리한 전자책은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컴컴한 곳에서도 볼 수 있으며, 빠르고 간편한 색인 기능으로 본문 검색도 가능하다. 또한, 전자책 기기의 추가 기능으로 전자 사전과 인터넷 검색, 그리고 TTS(텍스트 음성 변화) 기능으로 기기가 전자책을 읽어주는 것도 가능하다.

반면에 단점으로는 인간의 눈은 반사된 빛을 감지하는데 맞추어 진화해 왔기 때문에 직접 조명으로 책을 읽는 전자책은 눈을 쉽게 피로하게 만든다. 그리고 전자책으로 출간한 책의 수는 종이책과 비교하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산 전자책은 타인에게 대여할 수 없어서 친구나 가족 등 지인끼리 책을 서로 권유하며 돌려보는 기존의 독서 문화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아쉬운 점은 종이 특유의 부드럽고 편안한 재질감이다.

이런 단점에도 전자책 시장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한다면 『책의 문화사: 우리는 어떻게 책을 쓰고 읽고 소비하는가?』의 저자 데틀레프 블룸(Detlef Bluhm)도 지적했듯 앞으로 종이책의 운명은 ‘소멸’보다는 ‘소외’로 전락할 듯싶다. 그렇게 된다면, 종이책은 중상위층의 허영을 만족시켜줄 고상한 장식품으로서의 옛 영광을 다시 찾고, 전자책은 보편적인 독서 문화의 주 매체로 자리 잡을 것이다.

데틀레프 블룸(Detlef Bluhm)의 『책의 문화사』는 지금까지 발견된 역사 기록 중 책을 최초로 거래한 것으로 알려진 《사자의 서》부터 현재의 ‘아마존’과 ‘구글’에까지 약 4,500년 동안 ‘책’이 거쳐온 문화를 다루고 있다. 더불어 책을 문화적이자 산업적으로 뒷받침해온 동반자로서 함께 변화를 겪어 온 출판과 서점 산업의 발전 과정도 세심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책하면 빼놓을 수 없는 표절과 지적재산권 개념의 역사적 진화 과정도 담겨 있다. 특히 저작권 시비나 논란이 호메로스나 호라티우스 시대부터 존재했었음에도 성문법으로 자리 잡기까지에는 무구한 시간이 흘렀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모든 내용이 독일 중심의 유럽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독일 중심의 ‘책의 문화사’만을 기술함에도 이만한 분량이 쓰였으니 지면의 한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구성일 수도 있겠지만, 유럽보다 무려 천 년이나 넘게 일찍 종이를 사용한 동양의 유구한 역사적 가치를 무시한 것 같아 동양인으로서 좀 씁쓸하다고 말한다면 억지 일려나.

아무튼, 책을 벗 삼고 책에 의존하는 내겐 단어와 문장의 텍스트가 아닌 물질적인 존재로서의 책, 즉 ‘내 친구가 이렇게 성장해왔구나.’ 하는 이해와 더불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갈 책과 그 변화에 따른 여파가 앞으로의 독서 문화에 미칠 영향의 갈피를 미리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는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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