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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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소설 전집 | 중국 근대화의 어두운 자화상

The complete works of Lu Xun's novel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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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소설 전집 | 중국 근대화의 어두운 자화상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루쉰 소설 전집』, 113쪽)

약방과 전당포의 위세 등등한 계산대보다 키가 작았던 시절 루쉰(LuXun, 魯迅)은 집안의 의복과 장신구를 가지고 전당포에 들려 돈을 마련한 다음 오랫동안 병을 앓은 아버지를 위해 한약방으로 향하곤 했다. 처방전에 적힌 약재는 겨울의 갈대뿌리, 3년간 서리 맞은 사탕수수, 교미 중의 귀뚜라미, 열매 맺은 자금우 나무 등 모두 구하기 쉽지 않은 희귀한 것들이었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차도가 있으면 다행이건만 루쉰의 기특한 정성과 염원에도 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 일로 한의학에 불신을 품은 루쉰은 ‘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면 나의 아버지와 같이 잘못된 치료를 받는 병자들의 고통을 구하고 전쟁 시에는 군의(軍醫)가 되리라’는 청운의 꿈을 품고 의학을 공부하러 일본 유학을 간다. 그러나 강의 시간에 본 슬라이드 필름이 발단이 되어 그는 의사의 꿈을 중국인 계몽으로 전환한다. 슬라이드 필름에는 러일전쟁의 현장이 담겨 있었는데, 그 중 한 사진에는 러시아를 위해 정탐 활동을 하다 일본군에 붙잡힌 건장한 체격의 중국인이 참수를 앞에 두고 무감각한 표정으로 묶여 있었고, 그 주변은 무슨 성대한 행사를 구경하듯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무릇 우매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멀쩡하고 건장하더라도 하잘것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관객이 될 수밖에 없으며, 병으로 죽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불행하다고 여길 것도 없다. (『루쉰 소설 전집』, 12쪽)

시대에 뒤떨어진 중국인의 정신을 뜯어고치고자 루쉰은 전도유망한 의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문예의 길을 선택한다.

루쉰이 보기에 중국인의 육체는 결코 다른 동양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건장했으나 이 육체를 지배하고 움직이는 정신은 썩었다. 루쉰이 자신의 소설을 통해 표현한 중국인은 근대화를 따라가기는커녕 새로운 문물을 배울 의지도 없으며 여전히 봉건적인 노예근성에 젖어 있었다. 유구한 역사, 넓은 땅덩어리, 많은 인구 등 거대한 잠재력을 품은 대륙이 탐욕적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전혀 개의치않았으며, 단결하여 외세에 저항하기보다는 약육강식으로 분열된 채 무지, 나태, 탐욕, 무기력에 빠진 우매한 민중이 바로 루쉰이 본 중국인이었다. 중국인은 사사로운 이권쟁탈에만 눈이 멀어 국내적으로는 내분과 혼란에 휩싸이고, 국제적으로는 고립되고 식민지 지배를 받는 역사적인 위기를 인식조차 못 하고 있었다.

“가령 말일세, 쇠로 된 방인데 창문도 전혀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것이라 하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오래지 않아 모두 숨이 막혀 죽겠지.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죽어가므로 결코 죽음의 비애 같은 걸 느끼지 못할 걸세. 지금 자네가 크게 소리를 지른다면 비교적 정신이 돌아온 몇 사람은 놀라서 깨어날 걸세. 자네는 이 불행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구제될 수 없는 임종의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 미안하지 않다고 여기나?” (『루쉰 소설 전집』, 15쪽)

루쉰은 친구 진신이(金心異)에게 당시 중국이 처한 위기를 혼수상태에 빠져 죽어가면서도 죽음의 비애조차 느끼지 못하는 비참함의 극치로 묘사했다. 그렇다고 루쉰이 중국의 미래까지 비관적으로 내다본 것은 아니었다. 루쉰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중국인이 처한 상황이나 모든 약점을 노골적으로 대중 앞에 드러냄으로써 그것들을 직시하고 극복할 수 있는 민족적 자각과 민족의식을 고무시켜 루쉰 세대가 경험해 본 일이 없는 새로운 생활을 후세들이 가지길 희망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루쉰 소설 전집』, 「고향」, 113쪽)
<루쉰 공원 Fulanke-Wong / CC0>

전염병처럼 무섭게 중국 전역으로 퍼져가는 자각된 민족의식과 더불어 풍선처럼 부푼 희망을 루쉰은 자신의 문예 활동을 통해 중국인 모두의 가슴속에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을 걸쳐 공산주의를 완성하겠다는 당찬 중국 공산당의 포부로 흡수되어 아직도 진행 중이기에 루쉰은 여전히 중국인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민족의 혼란 • 변혁기에 길을 찾는 한 젊은이로서 진실을 말한 루쉰의 큰 용기는 같은 시기에 수많은 변절자와 민족의 반역자를 낳은 조선 문단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우러러봐도 끝이 없다. 개인적 안위나 출세를 위해 민족적 결점과 약점을 미화 • 은폐하거나 합리화하고 정당화하지 않고, 또한 쉽고 편한 길이기도 했던 민족지상주의를 거부하고 무지와 나태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중국을 고발한 루쉰의 기상과 신념은 지식인이 가야 할 참된 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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