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사 | 진충밍 | 비판 의식에서 드러나는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자부심
우리의 혁명은 근본적으로 착취를 없애는 것이고, 처음으로 가장 많은 인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나라를 건설해서 마침내 모두 부유한 이상적인 사회제도를 건설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어떻게 힘든 고비를 넘기지 않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문화대혁명사』, 471쪽)
문화대혁명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공식 평가
중국에는 다시는 되새기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은 무려 10년이나 지속하였다. 중국 인민에게 이 10년은 감옥에 갇힌 절망스런 죄수처럼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한편, 문화대혁명이 반 정도 지났을 때 한국에서는 반공과 극우환자들의 난리법석과 제한된 자료에도 굴하지 않고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가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에서 보여주었던 원격 연구 방식으로 금단의 영역인 중국 근현대사에 대해 연구한 지식인이 있었으니 바로 故리영희 선생이다. 선생은 『전환시대의 논리』 제2부 「대륙중국에 대한 시각 조정」에서 문화대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은 대운동이기에 역사적으로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감이 있다. 긍정적인 입장도 부정적인 입장도 뭐라고 단정하기에는 전례가 없는 너무 크고 복잡한 실험인 것이다.”(『전환시대의 논리』, 96쪽, 리영희, 창작과비평사)라고 말하며 역사적 평가를 잠시 유보했었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공식 입장은 대단원의 막이 내리고 5년이 지나고 나서야 표명된다. 그것이 바로 1981년 개최한 중국공산당 11기 6중전회(中国共产党第十一届中央委员会第六次全体会议)에서 통과시킨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대한 결의(关于建国以来党的若干历史问题的决议)」이다. 이 결의에는 문화대혁명의 성질, 지도사상, 개요 과정과 주요 책임 및 주요 경험과 교훈에 대해 대답하면서 문화대혁명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단호한 역사적 평가가 담겨 있다. 공산당 역사 출판사(中共党史出版社)에서 출간한 『문화대혁명사(文化大革命間史)』는 중국공산당 11기 6중전회에서 통과시킨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대한 결의」를 근거로 하여 내린 문화대혁명에 대한 역사적 평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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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의 이상 사회를 위해 희생된 중국
이 책 『문화대혁명사』에서 밝힌 문화대혁명의 근본 원인은 최고영도층 내부의 권력투쟁이 아닌 마오쩌둥의 좌경적인 착오이다. 여기에 마오쩌둥(毛澤東) 한 사람에 과도한 권력 집중과 우상숭배가 더해지고 개인의 독단이 강화하면서 중국공산당의 근본적 조직원칙인 민주집중제와 민주집중제를 당의 지도사업에 구현한 집단지도원칙이 유명무실해짐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비극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마오쩌둥은 리영희 선생이 표현한 대로 ‘인류 사상 초유의 일대 실험’을 강행했을까.
중국공산당을 이끈 혁명가이자 지도자인 마오쩌둥은 천하대란(天下大亂)이 천하대치(天下大治)에 달하게 한다는, 즉 혼란은 적을 혼란시키고 혼란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중은 되레 단련됨으로써 ‘천하대치’의 이상 사회에 도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마오쩌둥이 지적한 적은 당내 자본주의의 길을 가는 실권파와 수정주의자이지만, 이것은 엄연한 마오쩌둥의 오판이었다고 이 책은 논박한다. 결국, 혼란시켜야 할 적도 없는 상태에서 혼란만 부추겼으니 혼란에 혼란이 겹쳐 문화대혁명이라는 대혼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또한, 마오쩌둥은 혼란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중이야말로 높은 수준의 교양을 갖춘 공산주의 신인간이며 그들은 혼란과 파괴와 지속적인 계급투쟁을 통해서 탄생할 수 있으며 그들이 이룩할 사회는 자급자족적인 자연경제의 기초하에서 평등주의적인 색채를 짙게 가지고 건립된 소생산자의 왕국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자신의 공상주의적인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그는 ‘대약진’, ‘인민공사화 운동’에 이어 ‘인류 사상 초유의 일대 실험’인 ‘문화대혁명’을 강행했던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남긴 유산
문화대혁명 하면 고깔모자를 씌고 죄명이 걸린 흑판을 목에 걸고 무릎을 꿇린 채 조리돌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주로 조리돌림을 당하는 사람은 혁명의 공을 세운 원로들과 당의 간부, 그리고 교사나 교수, 기술자, 과학자 같은 지식인이자 연장자들이었으며 가해자는 홍위병, 조반파(造反派)로 불렸던 소년소녀를 포함한 젊은이들이었다. 한 번 이들에게 꼬리를 잡히면 조리돌림과 재산 몰수는 기본이었고 집단 폭행으로 불구가 되거나 병신이 되기도 했으며 죽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마오쩌둥에게서 물려받은 좌경 오류에 빠진 조반파 무리는 이런 식으로 당의 간부들과 원로나 지주들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국가 조직은 마비되고 민주와 법제가 유린당함으로써 나라는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 생산과 건설은 지체되거나 후퇴되었고 인민들은 극심한 고통과 혼란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대재난을 겪었음에도 그들은 “영원히 문화대혁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외친다. “문화대혁명을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문화대혁명을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인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한 잡지사의 편집장은 역설한다.
반성 없는 역사는 발전할 수 없다. 오랜 봉건제를 혁명으로 종결시키고 마르크스-레닌의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토대로 세워진 중국공산당도 이러한 역사적 사명 앞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대한 결의」을 통과시켰으며 이 책에는 역사적 오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중국공산당의 당찬 의지와 각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 중국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이 보태져 탄생한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그들의 신념과 자부심, 그리고 끝내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가 담겨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자본주의 병폐에 식음을 전폐하는 전 지구적인 몸살 속에서 사회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가속화된 경제발전 뒤에 숨겨진 그 진의를 가늠할 수 있는 책이기도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중국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마오쩌둥이 철저하게 반대했던 수정주의의 길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문화대혁명사(文化大革命間史)』는 문화대혁명의 주요한 교훈 중 하나는 사회주의 건설은 반드시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지 계급투쟁이 중심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즉, 덩샤오핑(鄧小平)의 유명한 명언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면 좋은 고양이다”라는 말처럼 중국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경제발전 수단으로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것일 뿐이다. 자본주의 폐해를 절실히 느끼며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사람은 중국의 경제발전이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앞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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