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란 남자들 | 후쿠오카 신이치 | 사정(射精)의 다른 이름 가속감(加速覺)
아담이 이브를 만든 게 아니다. 이브가 아담을 만든 것이다. (『모자란 남자들』, 137쪽)
창세기의 쓰인 대로 여자는 정말 남자의 갈빗대 하나로 만들어진 걸까? 혹은,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남성중심적이면서도 기가 막힌 종교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당연히 과학은 “No”라고 대답한다. 여자가 만들어지고자 남자의 갈빗대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왜냐하면, 생명의 기본사양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모든 태아는 염색체의 형태와는 상관없이 수정 후 약 7주째까지는 여성의 길을 간다. 이후 Y염색체가 발현돼야 비로소 남성으로 분화한다. 이때 난관, 자궁, 질의 근원이 되는 뮐러관(Muller管)은 봉합된다. 만약 당신이 남자라면 음낭과 항문 사이 회음부에 있는 이 봉합된 흔적을 볼 수 있다. 생명의 기본사양에서 Y염색체의 주문에 맞춰 진로를 변경한 것이 남성이며, 거기에는 주문 생산에 따르는 부정합과 오류가 있다. 이 부정합과 오류는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없고 단지 환경적 사회적 요인으로 차이가 생긴다는 일반적인 사고를 뒤집고 여성의 생물학적 우위로 나타난다.
어떤 시대든 어떤 지역이든 연령층이 어떻든 간에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수명이 길다. 남성은 여성보다 암에도 잘 걸리고 쉽게 감염된다. 일본의 통계를 보면 자살률에서도 무려 3배나 높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이것은 무리하게 기본값을 변경해서 남성으로 만든 것에 대한 부작용으로써 남성 호르몬 중 하나인 테스토스테론으로 말미암은 면역력 저하가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 또한, 남자가 기본값을 벗어나 ‘모자란 남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어머니의 유전자를 다른 누군가의 딸에게 전해주어 유전자를 혼합하기 위한 ‘운반자’로서의 임무 때문이라고, 대부분 남자가 하고자 하는 일도 바로 이것이라고 『모자란 남자들(できそこないの男たち)』의 저자 후쿠오카 신이치(福岡 伸一)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리고 만약 이 지구 상에 여성만 남는다면, 또는 남성만 남는다면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여성은 난자와 결합하는 정자를 생산하는 기능 한 가지만 더 추가되도록 진화한다면 자가 번식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은 난자뿐만 아니라 자궁, 골반, 젖 등 자가 번식을 위해 추가되어야 할 생물학적 기능과 변화는 한둘이 아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모자란 남자들』은 여성의 생물학적 우위를 강조하는 페미니즘적 사고를 담은 책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책 마지막에 펼쳐지는, “남자는 왜 여성을 섬기는 것일까?”라는 철학적, 생물학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해설이 가능하지만 명확한 답은 없는 의문에 대한 후쿠오카 신이치의 기발한 가설을 펼치기 위한 미끼에 지나지 않다. 이 가설의 핵심은 제트코스터가 정점에서 막 하강하려고 할 때 느끼는 쾌감, 즉 기존의 오감에 이어 가속각(加速覺)이라는 새로운 감각의 정의이다. 그렇다면 가속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모자란 남자들’이 삶에서 느끼는 최상의 쾌감이고 이 세상을 사는 유일한 보상이자 목적인 바로 ‘사정(谢精)’이다.
동물은 매체 속에 잠겨 매체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이 매체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듯, 우리 인간은 매체로서의 시간의 존재를 자각할 수 없다.
시간의 존재를,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단 하나의 행위가 있다. 시간의 추월. 순항하고 있는 시간을 한순간이라도 추월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시간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시간의 풍압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가속각인 것이다.
순항하는 시간을 추월하기 위한 속도의 증가,그것이 가속도다. 가속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시간의 존재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은 최상의 쾌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직접적으로 삶을 실감하는 방법 이기 때문이다.(생략)
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모자란 남자들’이 이 세상을 사는 유일한 보상으로, 가속각과 연결된 사정(谢精)감이 선택된 것이다. (231~232쪽)
분자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의 책은 과학서로는 보기 드물게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좋다. 그만큼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과학서라는 얘기이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학술적 이야기를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 유학 시절 등 실제로 체험한 경험에 자연스럽게 엮는다. 마치 수필을 읽는 듯한 부드럽고 친근한 분위기가 과학서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이고 독창적이다. 또한,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일반적인 과학서의 절반 정도의 두께로 대폭 축소한 점도 장점이 될 수 있다. 책이 얇은 만큼 많은 주제를 다루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를 다루더라도 저자 특유의 유창하고 명쾌한 입담으로 독자를 확실하게 매료시키고 이해시킬 수 있는 과학서이다. 반면에 책이 얇고 주제를 축소하고 다양한 지식을 담기보다는 이해도를 높이는데 충실한 만큼 깊이와 세밀함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과학서적에서 깊이와 세밀함 같은 전문성을 갖추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는 책은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전문성과 대중성은 마치 시소처럼 적당한 균형점을 잡을 수는 있을지언정 어느 한 곳이 우세하면 그 반대쪽이 열세를 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하기는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이 ‘모자란 남자’라면, 아니면 생물학적으로 우세한 여자일지라도 저자가 들려주는 의아하고도 기발한 이야기는, 오늘도 적당한 상대를 찾으려고 우왕좌왕하는 수고스러운 과업으로 지치고 상처받은 당신의 울적한 기분을 치유하기 위한 사색의 시간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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