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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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공작 | 다윈주의 이론의 역사적 공백을 채우다

개미와 공작 | 헬레나 크로닌 | 다윈주의 이론의 역사적 공백을 채우다

책 리뷰 | 개미와 공작 | 헬레나 크로닌 | 다윈주의 이론의 역사적 공백을 채우다
review rating

이만한 수면제가 따로 없다

누군가 말했던가? 아는 것만큼 보고 아는 것만큼 이해할 수 있다고. 헬레나 크로닌(Helena Cronin)의 『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 Altruism and Sexual Selection from Darwin to Today)』은 내 졸렬한 독서력과 얕은 지식의 한계를 뼈저리도록 느끼게 해준 책이다.

그동안 ‘진화’와 관련된 책을 전혀 안 읽은 것은 아니었다. 많이 읽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을 정도로 나름 꽤 읽었다(물론 선택의 폭은 동네 도서관 수준 정도로 한정되지만). 이 분야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도 태양만큼은 아니더라도 화롯불 정도는 될 만큼 적당히 뜨뜻하다. 그런데도 『개미와 공작』은 따뜻하게 달궈진 호기심이 무색하게 나의 뇌를 급속 냉동시키는 것도 모자라 곧잘 자장가를 불러주는 친절한 여인으로 돌변했다. 잠재우려는 소리 없는 자장가를 힘겹게 뿌리치고 문장 속에 박힌 단어 하나하나를 이 잡듯이 쏘아보았으나, 그것은 무너진 개미구멍 밖으로 우르르 뛰쳐나오는 개미들 수를 세는 것만큼이나 고된 일이었다. 최면에 걸린 무기력한 사람처럼 개미들을 하릴없이 세고 있노라면 천하장사라고 해도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졸음이 이미 나른해질 대로 나른해진 두 눈꺼풀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그렇게 몇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의지박약아처럼 책장을 덮은 적인 한두 번이 아니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삼면(作心三页)’이다. 모처럼 실력 좀 발휘하러 들었다가 오히려 호되게 얻어맞는 바람에 주눅들대로 주눅 든 나의 지성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그저 의기소침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는 가련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한편으론 『개미와 공작』이 내가 지금까지 무난하게 읽어왔던 교양 도서들처럼 대중을 염두에 둔 책이 아니라 저자 헬레나 크로닌이 철학과에 제출한 박사 학위 논문이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약간 위안이 된다. 생물학과도 아니고 유전학과도 아니고 ‘철학과’란다. 철학이라면 말 다 했지 뭐….

책 리뷰 | 개미와 공작 | 헬레나 크로닌 | 다윈주의 이론의 역사적 공백을 채우다
<이타주의’를 대표하는 개미>

'현상'보다는 '이론'을 다룬 책

까딱하다간 소화불량 걸리기에 십상인 난해한 문장(혹은 번역이 문제일까?)에 내용도 무척이나 갑갑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그동안 내가 ‘진화’와 관련해서 쌓아온 지식이 무척이나 어설펐다는 사실 말이다. 선택한 단어의 의미에 세심하게 신경 쓸 만큼 철학적이고 원론적인 데다가 『개미와 공작』은 ─ 대중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보통의 진화론 책처럼 ─ 진화론에 대한 현대적인 업적이나 최신의 과학적 성과를 기술적 • 예시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고전 다윈주의 이론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비판, 그리고 유기체 중심적인 고전 다윈주의 이론이 유전자 중심적인 근대 다윈주의 이론으로 거듭나기까지 겪었던 흥망성쇠를 이론적으로 다루고 있다. 가설과 이론이 검증받는 과정 중에 겪게 마련인 호된 비판적 논쟁과 논박이 주류를 이루는 만큼 가설과 이론이 현실에 적용되는 실재적인 사건이나 그러한 과학적 지식에 관한 관심으로 이 책을 찾은 독자는 완전히 발을 잘못 들인 셈이다. 한마디로 보통의 독자가 주된 관심을 두는 현상보다는 보통의 독자가 가장 꺼리는 이론 자체를 다룬 논문이다. 여기에 정론을 공격하는 수많은 이설이 반론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언급되는 만큼 나처럼 확고하게 매듭을 짓지 못한 설익은 지식을 갖춘 사람이나 이론적 배경이 든든하지 못한 사람이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이설에 현혹되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수가 있다. 그동안 미천하게나마 쌓아온 지식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워지고, 그렇게 되면 ‘진화’의 개념 자체가 혼란에 빠지면서 자칫 잘못하다간 독자의 머릿속에 오롯이 박힌 진화론에 대한 개념 자체가 흔들리는 총체적 난국까지 갈 수도 있다. 고로 『개미와 공작』은 이제 진화론에 막 발을 들여놓으려는 독자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이론서이며, 진화론에 약간의 이해 정도를 가진 독자에겐 상당한 도전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내가 볼 땐 이론적 지식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나 튼튼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보면 좋을 듯싶다. 한마디로 전공 서적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다윈의 말처럼 잘못된 견해들의 오류를 입증하고 진실로 향하는 과학의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과정을 헬레나 크로닌의 (내 처지에서는 절대 명쾌하다고는 말할 순 없지만, 그 과정만큼은) 철두철미한 논증으로 되짚어볼 수 있는 심오한 시간을 가지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내 명석하지 못한 두뇌 때문에 다윈의 말처럼 유익한 즐거움을 누렸다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다.

책 리뷰 | 개미와 공작 | 헬레나 크로닌 | 다윈주의 이론의 역사적 공백을 채우다
<‘성 선택’을 대표하는 공작>

의도되지 않은 적응의 부산물로서의 지능

책 제목만큼은 쉽다. 진화론에 관심을 둔 독자라면 누구라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상징성이 명확한 두 종, 즉 ‘성 선택’을 대표하는 공작과 ‘이타주의’를 대표하는 개미가 ─ 때를 잘못 만났을 수도 있을 ─ 독자를 뱀처럼 유혹한다. 나처럼 이 유혹에 쉽게 굴복한 자가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는 앞서 말했으니 더는 거론하지 않겠다.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책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은 만큼 이후 리뷰는 ─ 여타 리뷰들보다 더욱더 ─ 두루뭉술한 서술이 될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자연 선택은 다윈 사후 약 반세기 동안 부분적으로 쇠퇴했으며, 성 선택은 그 두 배의 기간 정도 완전히 빛을 잃은 채 지냈다. 이타주의는 최근에 와서야 하나의 문제로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개미와 공작』은 다윈의 자연 선택이 과학사에서 꽤 긴 시간 동안 정주하지 못하고 주류에서 배척되던 부랑자 같은 처지를 ─ 정론과 이설 모두 포함한 ─ 이론적 탐구로 설명하려는 도전적인 시도다. 한때 다윈주의를 위협했던 이설 중에는 내가 보기에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론이 있는가 하면, 꽤 그럴듯한 설명처럼 보이는, 그래서 저자의 논박이 없었더라면 감언이설에 넘어갈 뻔한 함정 같은 이론도 있다. 독자는 논증의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정론이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이유와 함께 이설에 현혹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인데, 졸음과 싸우는 것으로도 벅찼던 나에겐 이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건진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 두뇌의 놀라운 능력은 ─ 그중에서도 마음과 같은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능력은 ─ 의도되지 않은 적응의 부산물일 수도 있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지능 진화의 근본적인 동인 중 하나가 실질적인 발명에 대한 필요였다는 오랫동안 널리 받아들여졌던 견해와는 다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 인류의 뇌는 다른 유인원이나 고래와 비교해 볼 때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능력 이상으로 발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어왔다. 그중에서도 복잡하고 변덕스럽고, 그래서 자신을 살펴봐야 할 때든 타인을 이해해야 할 때든 우리를 늘 혼란스럽게 하는 마음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이었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아니면, 모든 동물이 ‘마음’으로 불릴만한 요소를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데, 미처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자연 선택은 미래를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인류의 고도로 발달한 뇌와 그에 따른 놀라운 능력은 반드시 의도된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 인류 다음으로 높은 지능을 지녔다는 다른 유인원이나 고래도 ‘문명’이라 불릴 만한 업적을 이룰 정도로 진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모든 것을 적응적인 요소로 보기에도 탐탁지 않다. 하지만, 인류의 발달한 뇌가 몇 가지 단순한 적응적인 요소의 결과로서, 그리고 그 당시에는 아무런 쓰임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손해는 주지 않는 의도하지 않은 특징들을 가진 채 처음 나타났고, 훗날 이 의도하지 않은 특징들이 자연 선택으로부터 적합한 역할을 부여받아 유용하게 활용됨으로써 지금의 우리로 진화한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은 잠이 달아날 정도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쉽게 말하면, 인류가 발명한 ‘컴퓨터’와 비슷하다. 처음에 단순한 계산 목적으로 만들어진 컴퓨터는 작금에 와서는 사람이 관여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누리는 혜택도 엄청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떠올려봐라. 컴퓨터는 인류의 뇌 진화를 이해하는 데 좋은 모델이다.

책 리뷰 | 개미와 공작 | 헬레나 크로닌 | 다윈주의 이론의 역사적 공백을 채우다
<의도되지 않은 적응의 부산물로서의 지능>

‘마음’의 진화적 기원을 찾아

이러한 가정은 자연 선택이 사회적 동물의 의사 결정 시스템으로써 민주주의라는 전략적인 해결책을 꿀벌 집단에겐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으로써 행동의 세부 사항까지 구체적으로 설계한 반면에, 사람에겐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에 따라 적응적으로, 그리고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는 대처 수단으로써 발달한 뇌를 주었다는 (수렴 진화를 떠올려봐라!) 것이다. 같은 원리로서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나방이 촛불로 달려드는 것은 자살 시도가 아니라 ─ 나방에겐 나침반이라 할 수 있는 ─ 달빛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로서 설명해야 하는 것처럼 다윈주의자들이 설명할 필요가 있는 적응은 규칙이지 행동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일으킨 규칙, 즉 마음을 설명할 수 있어야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인류가 언뜻언뜻 내비치는 비적응적이고 모순적인 행동의 진화적 기원도 발견할 수 있다. 자연 선택은 사람을 여타 동물처럼 모든 세부적인 사항을 시시콜콜하게 유전자에 의존하도록 설계하지 않고 대신 환경에 맞는 유연한 행동과 규칙을 스스로 생성해 낼 수 있는 지적 능력, 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규칙들에서 상황에 따른 적절한 행동들을 도출해 내는 ─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해주는 ─ 마음을 갖춘 다재다능한 동물로 만들었다. 그 모든 것이 비록 의도되지 않은 적응의 부산물일지라도 거기에는 자연 선택이 인류 앞에 제시한 나침반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HGP)가 이미 완성된 지금,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가늠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은 진화심리학자들이지 않을까 싶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연 선택이 인류에게 컴퓨터 이상의 잠재력을 갖춘 뇌를 선물했고, 뇌는 타인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자아 인식’ 능력을 착상하면서 우리를 타고난 심리학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도록 설계됐는가?’ 하는 인간 행동의 기원을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면, 비록 우리가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에 제한받을지라도 진화심리학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다윈주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희망이다.

이래서 예전에 읽었던 진화심리학 관련 책들이 입에 착착 달라붙을 정도로, 아니 눈에 쏙쏙 들어오고 동시에 뇌세포에도 착착 감길 정도로 감칠맛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적 검증이 어렵다는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이런 방법론적인 문제만 극복한다면 진화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이 자연 선택과 적응의 기제로서 어떠한 위치에 있으며, 인류의 진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총체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유전자가 마음의 구조나 작동하는 방식 정도까지는 간섭할 수 있을망정 한 사람의 일생에 걸친 모든 행동을 일일이 다 지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난 사람의 마음은 유전적 결정론과 범적응주의 양단에 교묘하게 걸쳐져 있는 매듭으로 여겨진다. 고로 언젠가 이 매듭을 풀 수 있다면 동물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어려운 책이었던 만큼 리뷰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지난 며칠 동안 혹사당한 나의 가련한 뇌세포를 봐서라도 아무쪼록 넓은 아량으로 이 못난 글을 용서해 주길 바란다.

비록 보잘 것 없지만 광고 수익(Ad revenue)은 블로거의 콘텐츠 창작 의욕을 북돋우는 강장제이자 때론 하루하루를 이어주는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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