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 데이비드 콰먼 | 팬데믹 원흉은 동물이 아니라 인간!
중국만을 탓할 수는 없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한 지도 어느덧 1년하고 9개월이나 지났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때처럼 지독하게 불운한 몇 명이 제물로 희생되는 불행한 사태가 계절을 타는 패션 유행처럼 잠시 세간의 이목을 끄는 약간의 부산함 끝에 잠잠해질 줄 알았던 것이 결국 팬데믹 종식은 불가능하다는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젠 '위드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지금, 이 세기적인 팬데믹을 일으킨 원흉으로 지탄받는 중국을 곱게 보는 사람은 없다.
─ 필요성은 충분히 긍정하지만, 개인적으론 귀찮을 수밖에 없는 ─ 정부의 세심한 방역 지침으로 일상의 동선은 제한되고, 사적인 만남이나 모임도 회피하게 된다. 무엇보다 어디를 가든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특히 나처럼 안경을 착용한 사람은 더더욱!!!). 나의 몇 안 되는 도락 중 하나인 산책의 즐거움이 1/3쯤 줄어든 셈이다. 한마디로 그동안 당연시 여겼던 평온한 일상은 금이 갔을 뿐만 아니라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사태가 이러하니 단순히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반중국 감정을 일으키고도 남는다. 이런 반중국 감정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이 모든 것을 중국만을 탓할 수는 없다!’라는 이단적인 외침을 던진다면 돌 맞아 죽기 십상이려나?
<그들과 우리의 생물권이 겹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팬데믹의 원흉은 박쥐가 아니라 인간이다!
알다시피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사스, 메르스를 일으킨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의 보유숙주는 박쥐다. 이뿐만 아니라 박쥐는 헨드라, 마르부르크병, 광견병, 에볼라(가능성이 크다고 함), 니파 등 무시무시한 인수공통전염병의 보유숙주로 악명높다. 생긴 것도 징그럽다(박쥐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일절 없다). 그런데도 중국인은 박쥐를 먹는다. 비단 박쥐뿐만이 아니다. 중국인은 날아다니는 것에선 비행기와 드론을 제외하고, 땅으로 기어 다니는 것에선 자전거와 자동차를 빼고는 다 먹는다. 팬데믹 전에도 중국의 과시적인 ‘야생의 맛을 추구하는’ 섭식 문화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박쥐가 코로나19의 보유숙주로 추정된 이후로는 그 ‘더러’가 ‘대부분’으로 확산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먹을 것이 많은 세상에 왜 그런 것을 먹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과거 중국뿐만 아니라 대부분 민족이 악몽처럼 되풀이되는 기근을 회피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아는, 아주 약간의 역사 지식만 있는 사람에겐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나나 당신이나 사람이 굶주리면 무엇이든 먹게 마련이다(조선왕조실록에도 기근으로 인해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이 엄연하게 남아 있다!). 하물며 감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박쥐보다 훨씬 가깝고 친숙한 개(DOG)를 잡아먹는 보신탕 문화를 가진 우리가 고작 박쥐 같은 야생동물을 먹는다고 해서 중국인을 혐오한다는 것은 똥 묻은 개가 겨 묻는 개 나무라는 격이다. 개가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의 숙주가 아니라는 사실이 천만다행일 뿐이다(과학적으로도 개는 바이러스 숙주로서 적합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태초에 그들이 박쥐를 먹게 된 이유는 단지 굶주린 사람 곁에 박쥐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보다 앞선 원인은 사람들이 굶주려야 할 정도로, 혐오스럽게 생긴 박쥐까지 잡아먹어야 할 정도로 많았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 살리고 급격히 팽창하는 도시를 살찌우려고 숲을 베고 늪을 개간해왔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교란되면서 인간의 삶과 야생동물의 삶을 적절하게 격리해 숲의 경계는 무너졌다. 그럼으로써 예전에는 있을 수 없었던, 혹은 있더라도 매우 희박했던 일이, 즉 박쥐와 박쥐가 실어나르는 바이러스가 인간과 접촉할 가능성은 더 커졌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팬데믹으로 발전하기는 어렵다.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하면 파괴적인 결과를 몰고 오는 에볼라가 간헐적으로 발생했다가 곧바로 잠잠해질 뿐 팬데믹으로 발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발생지역의 인구밀도가 대규모 유행을 일으키기엔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왕래도 적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악명 높은 바이러스들이 박쥐를 보유숙주로 선택했다면 그것은 박쥐의 개체 수가 아주 많고, 개체끼리 밀접한 접촉을 많이 하며 많은 박쥐가 엄청나게 큰 집단을 이루고 살기 때문이다. 지구 곳곳을 점령하다시피 해서 살아가는 호모 사피엔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류의 인구밀도와 이동성과 신체 접촉성은 박쥐를 훌쩍 뛰어넘고도 남는다.
바이러스는 단지 그곳에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을 뿐인데, 탐욕에 눈이 멀어 숲이라는 안전 장벽을 붕괴하고 바이러스에 종간전파라는 생물학적 기회를 준 것은 박쥐가 아니라 인류다. 바이러스는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그리고 늘 해왔던 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자연선택으로 걸러지고 진화를 거듭하고 나니 난데없이 인류에게 온갖 욕을 얻어먹게 된 꼴이니 나름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박쥐 같은 혐오스러운 야생동물을 잡아먹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굶주렸다는 것, 이것이 일회적인 삶의 방편으로 끝나지 않고 ‘야생의 맛을 추구하는’ 문화로 정착되었다는 것이 중국의 불행이었다면, 중국이 폐쇄적인 정책을 포기하고 개혁 • 개방 정책을 성공적으로 시행한 것이 세계적인 불행이었다고 할까나? 사정이 이렇고 보니 살 곳을 잃은 굶주린 박쥐가 사람이 심은 과일나무에 도둑처럼 무단 침입하여 쥐처럼 사과를 갉아 먹고 똥오줌 몇 번을 좀 싸지른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어쩌다가 이런 반역자 같은 생각을 품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데이비드 콰먼(David Quammen)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Spillover)』 때문이라면 너무 비겁하려나?
누가 호모 사피엔스의 대유행을 끝장낼 것인가!
생태저술가인 데이비드 콰먼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이 어떤 종을 사라지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최초의 사건인 도도(Dodo)의 멸종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고발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도 멸종 리스트에서 예외일 수 없다며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한 명저 『도도의 노래(The Song of the Dodo)』의 저자이기도 하다.
아무튼 오래전에 ‘도도의 노래’ 리뷰를 쓰면서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숲이 사라지는 것도 슬프지만, 숲이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아 더더욱 슬프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읽고 난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가축들이 살처분되는 것도 슬프지만, 가축들이 살처분되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아 더더욱 슬프다.
라고 말이다. 여기에 망언 한마디 덧붙인다면, 왜 사람은 살처분되지 않는 것일까?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코로나19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인재라는 것에 소름이 돋는다. 사스도 메르스도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였다는 점에서 코로나19가 끝이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은 확신으로 굳어진다.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여전히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고 두렵기만 하다.
에이즈, 에볼라, 마르부르크병, 독감, 광견병 등 악명을 떨쳤던, 그리고 앞으로도 떨칠 가능성 큰 무시무시한 전염병들 대부분이 인수공통감염병(사람에게 전염되는 동물의 감염병)이다. 우리와 다른 동물 숙주들 사이에 장구한 세월에 걸쳐 끈질기게 이어지는 연관관계를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한 인수공통감염병이 최근 들어 팬데믹으로까지 그 기세를 확장하게 된 계기는 앞에서 말한 이유와 같다. 생태계 파괴, 서식지 교란, 그리고 인류의 대발생(생태학적 관점에서 대발생이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특정한 동물 종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유례없는 대성공을 거둔 경이로운 존재다. 지금 인류 사회에선 코로나19가 대유행하듯 지구에선 호모 사피엔스가 대유행이다. 아무리 비관적으로 봐도 호모 사피엔스의 유행은 당분간은 계속될 것 같지만, 유행에 관해 한 가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유행을 끝장낼, 우리 은하계에 이름을 날릴만한 영웅은 누가 될 것인가? 아마도 0순위는 바이러스, 그것도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될 것이다.
<Never end...> |
인류는 사라져도 바이러스는 남는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는 대하소설처럼 길지만, 읽는 이의 정신을 쏙 빼놓는 추리소설 같은 재미 때문에 결코 지루할 틈이 없는 과학저술이다. 과학적 근거와 이론에 밑바탕을 둔, 그래서 읽어보지 않은 사람에겐 어렵거나 지루하게 비춰질 수도 있는 책이지만 천리안으로도 볼 수 없는 바이러스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다음 마치 콰먼과 독자가 홈스와 왓슨처럼 한 팀이 되어 베일에 싸인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추론하는 이야기라 정말로 추리소설처럼 읽기 쉽다. 그뿐만 아니라 읽는 이의 지식수준과 관계없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주장하는 바를 잘 설명했기 때문에 최면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냥 책을 붙잡고 있게 된다. 한 번 이 책에 빠지면 오줌보가 곧 터져 죽을 지경이 아닌 이상, 혹은 굵고 딱딱한 똥이 항문에서 2㎝ 정도 삐져나오는 우려할만한 상황이 되지 않는 이상 손에선 책을 놓기란 쉽지 않다. 작금의 팬데믹 상황을,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또 다른 팬데믹을 인터넷의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않고 명철하고 냉정하게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일단 이 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에이즈가 1908년 카메룬 남동부에서 한 마리의 침팬지로부터 한 명의 인간에게 일어난 단 한 번의 종간전파로 시작되었듯 코로나19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이 변하지 않는 이상, 즉 숲이 회복되고, 그래서 야생동물의 삶과 인간의 삶이 겹쳤던 부분이 없어지거나 엷어지지 않는 이상 앞으로 제2의 제3의 코로나19 사태는 반드시 올 것이다. 이것은 바이러스가 원했던 상황도 아니고, 목적하는 바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바이러스는 그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할 따름이다.
콰먼의 주장처럼 우리는 작금의 암담한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합리적인 대처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똑똑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이기심과 탐욕이 그 똑똑함을 발휘하는 데 있어 장애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똑똑하지만, 때론? 혹은 자주? 이기심과 탐욕에 굴복하여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먼, 아니면 가까운 훗날 인류는 바이러스 때문에 멸종할 것인가?
답은 ‘네’, ‘아니오’로 매우 간단하지만, 그 간단한 대답에 이르는 숙고의 과정은 깊고 메마른 협곡을 지나는 것만큼이나 아찔하며 독사와 독충이 우글거리는 밀림을 횡단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지만, 한편으론 한 개인이 습득한 모든 지식을 짜낸 다음 보유한 지력으로 재주껏 버무린다는 점에서 지적으로 짜릿한 사고 유희다.
아무튼, ‘네’, ‘아니오’ 둘 중에 어떤 답을 내리든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인류는 사라져도 바이러스는 남는다는 것. 그래서 어쨌냐고? 라고 되묻는다면 특별히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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