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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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땅 | 야만과 이성의 모호한 경계

Duskland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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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땅 J.M. 쿳시 | 야만과 이성의 모호한 경계

원제: Dusklands by J. M. Coetzee
나는 이미지들로 가득 한 검은 중심 과총 한 자루가 들어 있는 투명한 자루다. 총은 자기 외의 다른 존재가 있다는 희망을 위해 거기 있다. 총은 여행길에서 우리의 고립을 막아주는 마지막 방어물이다. 총은 우리와 세계를 연결해주는 구세주다. (『어둠의 땅(Dusklands)』, 133쪽)

노벨상 수상작가 J.M. 쿳시(J. M. Coetzee)의 『어둠의 땅(Dusklands)』은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시대에서 벌어지는 두 이야기로 짜여 있다.

첫 번째 이야기 「베트남 프로젝트」는 케네디 연구소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군사전문가 유진 돈의 이야기이다. 그는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베트남 전쟁을 연구하면서 전쟁 관련 문서와 사진 등을 통해 간접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사와 아내와의 갈등까지 겪으면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고, 자신의 아들을 칼로 상처 낸 다음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두 번째 이야기 「야코부스 쿳시의 이야기」는 18세기 식민지 시대에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이야기이다. 저자 존 쿳시의 (가상의) 먼 조상으로 등장하는 동명의 쿳시는 네덜란드 태생의 사냥꾼이다. 그는 하인과 소가 끄는 각종 짐을 실은 수레를 이끌고 케이프 북쪽으로 코끼리 사냥을 떠난다. 여행 도중 쿳시는 심한 설사 증세를 보이며 탈이 나자 나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사는 원시 부족민들의 호의를 얻어 마을에 머문다. 쿳시가 몸조리하는 동안 그의 하인들은 부족민들에 동화되어 쿳시를 배반하고 쿳시의 짐을 약탈한다. 오직 나이 많고 충실한 하인 클라버만이 끝까지 쿳시 곁을 지킨다. 부족 아이들과의 사소한 싸움이 씨가 되어 부족 마을에서 쫓겨난 쿳시와 클로버는 약간의 식량과 옷가지만 겨우 챙긴 채 집과 도시가 있는 남쪽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쿳시가 아니라 클리버에게 탈이 생긴다. 쿳시는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병이 난 클라버를 황량한 대지 한복판에 홀로 내버려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듬해 충분한 사냥꾼들을 데리고 다시 그 마을로 되돌아간 쿳시는 자신을 배반한 하인들과 원주민들에게 가혹한 복수를 한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지만, 이 두 이야기는 보통의 소설들과는 다르게 가해자 처지에서 진행된다. 「베트남 프로젝트」에서는 신경쇠약으로 아들을 해치는 유진 돈의 시점으로, 그리고 「야코부스 쿳시의 이야기」에서는 식민주의자 쿳시의 시점으로 말이다. 그러하다 보니 두 이야기는 때론 역겨울 정도로 가해자의 처지를 대변한다. 두 가해자는 자기중심적으로 주변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변호한다. 유진은 자신의 아들을 칼로 찌르고도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자신은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쿳시는 부족민 아이들의 장난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한 아이의 귀를 물어뜯지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한다. 그들에겐 폭력은 어쩔 수 없이 대처하는 자기 방어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일상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폭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유진은 베트남 프로젝트를 맡기 전까지만 해도 상사나 주변의 불만에 대해 용기 있게 반응하지 못하던 복종적이고 질서를 좋아하던 남자였다. 그런 그가 베트남 전쟁을 연구하면서 달라진 것일까. 유진은 베트남 전쟁 연구 자료를 설명하면서 몇 장의 사진을 보여준다. 첫 번째 사진은 거구의 미군이 어린 소녀로 보이는 베트남 여자와 섹스를 하는 사진이다. 유진은 이 사진에 엽기적이게도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아버지’라는 제목을 붙인다. 두 번째 사진은 특수부대 하사들이 적군의 잘린 머리를 든 사진이며 세 번째 사진은 수용소의 호랑이 우리 속에 갇힌 베트콩의 사진이다. 유진은 수위 높은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폭력이 폭력을 낳은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진은 거기에 한 술 더 떠 폭력을 어떻게든 정당화하려고 이성의 힘을 야만적으로 발휘한다.

내가 비통해하는 건 바로 그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은 어째서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걸까?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도 있었다. 그들에 대한 우리의 증오는 좌절된 희망에서 나왔다. (『어둠의 땅(Dusklands)』, 38쪽)

베트남 전쟁을 미국이 아닌 베트남 탓으로 돌리는 유진은 미국적 우월주의의 표상이다. 자국의 이데올로기나 존재하지도 않는 문화적 우월성을 과시하다가 도를 넘어 타국에 강요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야만을 제거하고 문명을 세운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났는가. 그들의 증오는 유진이 말한 ‘좌절된 희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좌절된 이익’에서 나온 것이다. 이익에 눈이 멀어 전쟁을 일으키고도 치사하게 전쟁의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거나 스스로 생각해도 떳떳하지 못함을 아는지 어떻게든 전쟁의 명분을 세우려는 야만적인 미국의 모습이 유진을 통해 표출된다. 그런 유진이 전쟁을 끝낼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지도 상의 좌표까지 지울 정도의 무차별 폭격이었다. 이 얼마나 미국적인 해결 방법인가?

유진이 전쟁이 전쟁을 낳고 폭력이 폭력을 낳은 경우라는 쿳시는 식민주의 이데올로기가 낳은 폭력의 표상이다. 그렇다면 식민주의는 무엇인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국의 권리나 타국민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으며 때론 마음껏 짓밟아도 된다는 서구식 이성주의가 고도로 농축된 국가적 이기주의의 결정체 아닌가.

이러한 튼튼한 방패막이가 있었기 때문에 쿳시는 자신이 행사하는 폭력에 따른 죄의식은 없다. 차라리 그가 쾌락적으로 폭력을 즐기는 정신병자라면 그나마 봐줄 수 있지만, 그는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쉽게 흥분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처럼 감정적으로 폭력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무뚝뚝하게 서류를 처리하듯 사무적인 태도로 폭력을 행사한다. 그에게 폭력은 일상이며 삶의 한 양식이다. 그는 짓궂은 소년이 새총으로 참새를 겨누듯 항아리를 이고 개울로 가는 부족민 여자아이를 총으로 쏴 죽인다. 자신의 부하가 부족민의 어린 소녀를 강간해도 발정 난 개새끼들을 쳐다보듯 별일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바라본다. 자신을 배반한 노예를 처형할 때 한 노예가 피를 쏟고 숨을 헐떡이면서도 쉽게 죽지 않자 가해자의 유희적인 동정심을 보이며 역겨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내가 여느 다른 남자 이상으로 죽이는 것을 즐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스스로 자임하고,내 자신과 내 동포를 위해 이 희생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원했던 검은 사람들에 대한 살인을 수행했다. (『어둠의 땅(Dusklands)』, 179쪽)

쿳시는 자신의 폭력을 ‘우리 모두가’ 원했던 일이라고 합리화시킨다.

Dusklands by J. M. Coetzee

이성의 이름으로 자행된 식민주의와 전쟁이 유일하게 증명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성의 야만성이다. 저자는 두 이야기를 통해 그 점을 밝히면서 인간이 인간만의 특징이라고 자부하는 이성이 한낱 뜬구름에 불과하며 오히려 그 이성이 폭력을 자극하고 합리화시킴으로써 인류의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또한, 저자는 자신의 성을 두 번째 이야기에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폭력을 부추기는 ‘이성의 야만성’은 자신도 결코 비켜갈 수 없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임을 시사한다. 남의 잘못을 꼬집고 비판하기는 쉽지만, 자신의 잘못을 의식 속에서 깨닫는 것을 넘어 공개적으로 자아비판 할 수 있는 용기는 드물기에 충분히 찬탄을 받을만한 일이다. 이처럼 진지하게 자기비판적으로 문제를 받아들이는 겸손 때문에 더욱 공감된다.

다른 유인원들도 폭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들은 때와 장소를 가려 적절하게 행사하며 폭력의 수위를 조절한다. 유인원에게 폭력을 위한 폭력은 없으며 그들에게 폭력은 서열을 가리거나 집단과 번식 또는 개체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할 때만 행사한다. 물론 서열을 가리는 경쟁에서도 폭력으로 말미암아 누군가 죽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야만적인 전쟁을 합리화하고 억압적인 식민지 정책을 태연스럽게 행한다. 이런 것을 보면 이성은 폭력을 제어하고 조절하는 장치가 아니라, 폭력을 장려하고 각종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여 극대화하는 기폭제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 만약 전 세계의 정치인들이 여성이라면 최소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감정적이고 동정심이 강한 여성의 마음으로는 처절한 살육으로 치닫는 전쟁만은 피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국제적인 문제를 다룰 때 최대한 전쟁은 피하고 가능한 외교적으로 평화스럽게 해결하려고 고심했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폭력에 전염되어 신경쇠약으로 치닫는 유진과 식민주의에 만행한 폭력을 대변하는 쿳시의 복잡한 내면은 문장으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들의 평범하지 않은 성향만큼이나 그들의 생각은 모호하고 난해하며 심하게 굴곡져 있다. 『어둠의 땅(Dusklands)』은 작품의 주제도 그렇지만 결코 가볍게 읽을만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읽히고 논의되어 인류문화의 유산이 될’ 소설을 썼다는 찬사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J.M. 쿳시의 작품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이성과 야만의 모호한 경계를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또한, 작중 인물의 성격에 따라 문장을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그의 탁월한 필력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이 리뷰는 2016년 5월 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비록 보잘 것 없지만 광고 수익(Ad revenue)은 블로거의 콘텐츠 창작 의욕을 북돋우는 강장제이자 때론 하루하루를 이어주는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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