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 준수한 범인의 의외성, 그러나 뭔가 아쉬운 트릭
원제: 人形館の殺人 by 綾つじ行人
어떤 이유가 있든,과거에 어떤 죄를 저질렀든 나는 지금 죽기 싫다. (『인형관의 살인』, 289쪽)
타고난 병약함으로 사교적인 사회활동은 못하고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는 히류 소이치는 어머니와 함께 교토의 녹영장으로 이사한다. 녹영장은 유명한 예술가였던 소이치의 아버지가 혼자 살다가 작년에 자살한 곳이다. 지금은 하숙집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세 명의 하숙생이 관리인 부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모자(母子)가 살게 될 낡은 단층집과 관리인 부부와 하숙생이 기거하는 서양식 2층 집이 서로 연결된 기묘한 구조의 녹영장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집안 곳곳에 마네킹이 세워져 있었는데 모든 마네킹의 얼굴은 반반하게 눈, 코, 입 등이 없었고, 이것이 끝이 아니라 여기에 왼팔이나 머리가 없는 둥 하나같이 몸의 한 부분이 모자란 기괴한 모습을 한 채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죽은 예술가의 유언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 마네킹들을 치울 수는 없었다.
처음 보는 이에게는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마네킹들에게도 익숙해져 갈 무렵 히류와 그의 주변에 이상한 일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한다. 작업실의 인형들이 누군가에 의해 움직여진 흔적이 보이는가 하면 피처럼 빨간 물감이 흠뻑 묻혀 있는 날도 있다. 누군가 우편함에 몰래 넣어둔 유리조각에 히류의 손이 베이기도 한다. 현관 앞에 누군가 돌을 갔다 놓는가 하면 어느 날에는 머리가 납작하게 눌린 고향이 시체가 놓여 있기도 했다. 히류가 산책갈 때 사용하는 자전거의 브레이크 와이어가 끊어져 있어 넘어져 다치기도 했다. 그리고 때맞춰 히류에게 도착한 협박 편지,
기억해내라. 네 죄를.
기억해내라. 네 추악함을.
기억해내라. 그리고 기다려라.
조만간 편하게 해주마.
혼자 고민하던 히류는 교토에 살던 옛 친구 가케바를 만나 상담한다. 그러면서 히류는 대화 도중 잠깐잠깐 현실 감각을 잃고 퍼즐 조각 같은 환영을 보게 된다. 아득한 풍경, 아득하게 들리는 소리와 목소리,쿡쿡 쑤시는 듯한 옛 기억……. 그러는 와중에 완전히 잊고 있었던 옛 기억을 되찾는다. 다름 아닌 친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친어머니는 히류가 여섯 살 때 열차전복사고로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히류는 히류 미와코의 동생 사와코 이모 부부에게서 키워졌다. 그렇게 조금씩 잃어버린 과거의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되찾으며 서로 맞춰갈 무렵 사와코가 화재로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조사 끝에 부주의로 말미암은 사로고 단정 지었지만, 그 이후 도착한 협박 편지로 히류는 사와코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 방화임을 알게 된다.
저자 아야츠지 유키토(綾つじ行人)는 후기에 일인칭 시점으로 화자와 어둑어둑한 내면을 끈적끈적하게 그려내는 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었다며, 『인형관의 살인(人形館の殺人)』이 그 첫 도전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건대 추리소설 특유의 단순명쾌한 문장을 버리지 않는 한 그것은 어려울 것 같다. J.M. 쿳시(J. M. Coetzee)의 『어둠의 땅』에 수록된 중편 「베트남 프로젝트」의 주인공 유진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평범한 문장으로는 평범한 인물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이치의 육체나 정신은 결코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와의 대화는 평범했다. 그러나 쉽고 재밌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장점으로 독자들이 찾는 추리소설에 유진처럼 무슨 심각한 심리 삼당을 받는듯한 난해한 대화를 지껄이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 또한 모순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추리소설에서 ‘영혼의 투시자’ 도스토옙스키 흉내를 내려는 의도 자체가 조금은 과도한 생각일 수도 있다.
책 끝에 첨부된 「구판 해설(오타 다다시)」에는 지극히 사견이라는 전제를 달고 아야츠지 유키토는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이고 그 ‘세계’를 파괴하는 작가라고 설명한다. 독자는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장소로 안내받고 저택의 정경과 유래에 대해 설명을 들은 다음 주변 인물들의 관계를 머릿속에 새겨 넣게 되면서 저택과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진다. 그러다 사건이 일어나면서 독자 앞에 보이던 세계가 순식간에 붕괴한다는 것이다.
모든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 나름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 이후 그것을 파괴하거나 변형하거나 아니면 고치든, 아니면 그대로 두든 작가 마음이지만 이런 식의 파괴는 영 찝찝하다. ‘파괴’의 정도가 너무 지나쳐 작품을 읽으면서 키우고 간직해 온 필자의 어쭙잖은 감흥마저 몰인정하게 파괴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또한, 범인의 의외성은 인정하지만, 그 트릭은 기발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트릭의 개연성은 충분했지만 신선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고로 필자가 추리소설 마니아는 아니라 그렇게 많은 작품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인형관의 살인』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또 다른 작품 『십각관의 살인』에 비해서는 조금 임팩트가 떨어지는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소감을 조심스럽게 밝힌다. 그래도 범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오타 다다시의 말대로 ‘그의 작품 세계에 푹 빠져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러한 몰입 때문에 더욱 실망이 컸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변화와 어이없는 상황이 사람을 기운 빠지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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