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한없는 쓸쓸함
Original Title: 羅生門 by 芥川 竜之介
인간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이 있다. 물론, 누구라도 타인의 불행을 동정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불행을 어떻게라도 극복하게 되면, 이번에는 그것을 바라보던 쪽에서 왠지 섭섭한 마음이 된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같은 불행에 빠뜨리고 싶다는 마음조차 생긴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소극적이기는 하나, 어떤 적의를 그 사람에게 품게 된다. (『라쇼몽(羅生門)』, p25)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라쇼몽(羅生門)』(영화에 사용된 실제 줄거리는 동명의 단편 「라쇼몽」이 아니라 「덤불 속」이다)의 저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竜之介)는 일본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까지 있고 일본 근대문학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소설가지만, 나에겐 그런 사실이나 그의 유명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나쓰메 소세키(夏目 漱石)의 제자이기도 했으며 몇몇 작품은 나쓰메 소세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더 흥미를 끌었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고 읽기 전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조금은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라쇼몽(羅生門)』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들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한없는 쓸쓸함은 필자마저 오싹한 한기에 떨게 할 정도로 서릿발 같은 냉기를 발하고 있었으며, 탐욕, 이기, 불신, 어리석음, 망상, 광기, 질투 등 사람의 어둡고 탁한 면을 인간 세상 밖에서 관조하는 듯 차분하다 못해 때론 냉담해 보이기도 하는 차갑고 쓸쓸한 필치로 무덤덤하게 그려낸 점은, ‘그저 막연한 불안’이란 유서를 남기고 요절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염세주의적인 불안감이 읽는 이에게 그대로 스며드는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일례로 이등석과 삼등석도 구분 못 하는 어느 한 시골 소녀가 기차를 타고 도시로 떠나는 날 배웅하러 나온 남동생들에게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의 따뜻한 햇살로 물든’ 귤을 던지는 활기찬 모습이 짤막한 한편의 광고처럼 아련하게 스쳐 가는 「귤」에서는 사랑하는 가족과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로 떠나야만 하는 소녀의 쓸쓸함이 물씬 배어 나온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미세한 교집합이라 볼 수 있는 출퇴근길에서의 뜻하지 않은 작은 인연으로 새싹처럼 살포시 솟아난 연정을 더는 진행하지 못하고 추억으로만 되새기는 「인사」에서는 못 이룬 사랑에 대한 처량함이 느껴진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Yokohama045 / CC BY-SA> |
한껏 싱그러움을 머금은 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가을이 성숙해지면 중력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에는 땅으로 어김없이 곤두박질치는 낙엽처럼 자신의 삶이 ‘그저 막연한 불안’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어둡고 깊은 곳으로 떨어지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저 막연한 불안’이라는,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뿐더러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유로 자살을 단행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복잡 미묘한 내면세계가 투영된 그의 작품을 배부르고 등 따스하게 사는 평범한 독자에겐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터질 듯이 배가 부르고 타들어 갈 듯이 등이 따스해도 결국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남들이 보기엔 별 시답잖은 고민일지라도 늘 번민하며 사는 것이 또한 사람의 삶이다. 그래서 생에 한 번이라도 삶에 대해 진지한 고뇌를 해본 독자라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을 것 같다.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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