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죄 프로파일링 | 레이미 | 무엇이 두 천재를 엇갈린 운명에 서게 했을까?
“저희의 자구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어요. 제 첫사랑은 머리가 잘렸고, 두 친구도 살해됐으니까요. 마지막 순간이 돼서야 전 범인이 독자 중 한 명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가 제게 말했어요. 첫 번째 살인은 복수를 위해서였지만, 그 후에 벌인 살인은 제가 발견한 도서카드가 영감을 준 거라고…… 전 유일한 생존자였어요.” (『심리죄: 프로파일링(心理罪: 画像)』, p440)
장르소설이라고 문장의 격을 논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난번에 무척이나 나를 실망시켰던 마옌난(馬燕楠)의 『사신의 술래잡기(以罪爲名)』도 프로파일링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었는데, 이번에 읽은 레이미(雷米)의 『심리죄: 프로파일링(心理罪: 画像)』 역시 (한국어 부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프로파일링’으로 범인의 인격과 심리적 특징을 추리해 범죄를 해결해 나간다는, 지능적인 범인과 그 범인을 추격하는 대학원생 팡무와의 심리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두뇌 싸움이 꽤 흥미진진한 범죄 • 추리소설이다. 사실 기대에 크게 못 미쳤던 마옌난 작품에 크게 데였던지라, 레이미 소설은 별 기대 없이 선택했고 별 기대 없이 담담하게 책장을 넘겼다. 별 기대 없이 읽다 보니 마옌난보다 조금 더 나을 뿐 역시 기대에 못 미치는 영양가 없는 문장은 크게 실망스러울 것도 없다.
사실 ─ 진정한 ‘문학’으로 쳐주지 않는 ─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 같은 장르소설에 품격 있는 텍스트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고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소위 ‘라이트 노벨’, ‘판타지’, ‘무협’ 등의 문장의 격이 현격히 떨어지는 삼류소설만 읽다 보면 과도한 TV 시청이 뇌 기능을 퇴보시키듯 독자의 독서력을 퇴보시킬 수 있다고 고집스럽게 믿는 나이기에 이 부분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당신과 나의 ‘뇌’를 위해서 말이다. 고로 이런 소설을 연속해서 다수 읽는 것은 반드시 삼가야 할 독서 습관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이고, 장르소설이라고 언제까지나 ‘문학’의 경계선 밖에서만 머무르라는 법은 없다. 그렇다고 츠쯔젠(遲子建)이나 셀마 라게를뢰프(Selma Lagerlof) 같은 뛰어난 문장력이나 감각적인 묘사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엔 교고쿠 나쓰히코(京極夏彦)처럼 작가의 개성이나 특색이 묻어나오는 문장이라면 장르소설 중에서는 상등급이라고 생각한다. 문장이 단순하면 그만큼 쉽게 읽힐 수 있을 거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지금 읽는 것이 결코 재밌을 수는 없는 것처럼 ─ 나 같은 사람에겐 ─ 지나치게 단순하고 건조한 문장은 흡입력과 몰입력을 떨어트리는 첫째 원인이다. 그런 만큼 이런 삼류 텍스트에 몰입할 수 있는 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뇌의 품질을 걱정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문장력이 평범한 수준을 넘지 못하다 보니 못에 찔린 타이어에서 바람 빠지듯 새어 나오는 산만한 느낌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스스로 과거의 상처를 되새김질하며 번뇌에 빠진 채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팡무(方木)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세상과 쌓은 담 사이의 유일한 소통 경로라 할 수 있는 ‘범죄’를 통해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조금씩 찾아간다는 설정, 그리고 팡무 못지않은 재능에 사람 심리를 탐구하는 걸 좋아하는 취미까지도 팡무와 같은 범인을 등장시킨 점도 나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벌이는 심리 및 두뇌 싸움도 장르소설의 매력이라 할 수 있는 빠져드는 듯한 긴장감을 유발시키에 충분하다. 특히 소설 초반에 형사 타이웨이가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 고마움의 의미로 팡무에게 준 사소해 보이는 선물이 막판에 생각지도 못했던 큰 역할을 한다거나, 범인의 사전활동을 암시하는 듯한 ─ 범인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그냥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장면 ─ 몇몇 장면 등 구성도 나름 치밀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레이미(雷米)가 주하오후이(周浩暉), 쯔진천(紫金陳)과 함께 중국 추리소설계 3대 인기 작가라니, 대단히 뜻밖이다(내가 볼 땐 세 사람 중에서 쯔진천 정도가 그런 명성을 누릴 자격이 된다고 본다).
상처와 고독투성이의 ‘아웃사이더’, 팡무
사실 이런 장르소설의 묘미는 사건을 어렵게 어렵게, 그러면서도 결국엔 깔끔하게 해결해 나가는 주인공의 개성이 어떠하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팡무가 내 마음에 든 것은 고독과 쓸쓸함을 삶에서 떨쳐버려야 할 부정적 요소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복잡다단한 요리에 응당 뒤따르는 디저트라도 되는 것처럼 태연하게 여기는 ‘아웃사이더’라는 점이다. 타인의 심리를 단박에 꿰뚫는 비범함으로 범죄에 작용한 미세한 심리 작용까지 간파해내는 팡무의 천리안은 나와 같은 범인(凡人)과는 견줄 수 없는 특출난 재능이지만, 그의 ‘아웃사이더’ 같은 기질에는 왠지 모르게 친근감? 혹은,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비록 그의 ‘아웃사이더’ 기질은 세상과는 견줄 수 없는 높은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고, 나의 ‘아웃사이더’ 기질은 세상과는 견줄 수 없는 낮은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 해도 말이다.
범죄에 왜 그렇게까지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두는지 그 자신조차 잘 모를 정도로 타고난 범죄학자라 할 수 있는 팡무에겐 뼈 아픈 과거가 있다. 이것 때문에 팡무는 끊임없이 악몽에 시달린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적대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떤 위협으로부터 무엇을 지켜야 할지도 모른 채 어디를 가든 군용칼을 휴대한다. 이것으로 말미암은 번뇌는 『심리죄: 프로파일링』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팡무를 괴롭힌다. 팡무는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 것일까?
그것은 자신이 넘겨짚은 추리가 발단으로 작용하여 일어난 연쇄살인으로 희생된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과 자책감,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 해주고 떠나보낸 연인에 대한 슬픔 가득한 상실감이다. 살인자는 애초 한 사람만 죽일 계획이었다. 그런데 살인자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보고 팡무가 내놓은 추리가 매우 그럴듯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살인자는 단지 팡무의 추리를 완성하고자 계획에 없는 살의를 일으킨다. 결국, 팡무의 재능이 일으킨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어 살인자에게 영감을 준 격이 되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팡무는 소중한 친구들을 잃었다. 그는 단지 추리를 했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살인자에게 살인을 부추기는 격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설익은 재능이 일으킨 이 지독하고도 쓰라린 참극을 평생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는 팡무의 비참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때야 팡무가 왜 그토록 범죄에, 그것도 범죄자의 심리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팡무는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 기숙사 옥상에 올라 범죄의 희생양이 된 피해자를 위해, 그리고 놀랍게도 그 피해자들을 죽인 살인자를 위해 지전을 불태우며 추모제를 지낸다. 사건을 빨리 해결하지 못해 희생된 피해자들에 대한 죄책감에서, 그리고 사건을 빨리 해결하지 못해 더 많은 사람을 살해하게 했던 살인자에 대한 죄책감에서.
그렇다. 언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지가 경찰의 관심사라면 팡무에겐 범죄를 막는 게 더 중요했다. 자신의 섣부른 추리로 안타깝게 희생된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을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처럼 늘 품고 사는 팡무는 그렇게 함으로써 친구들에게 진 빚을, 세상에 진 빚을 갚고 싶었던 것이리라. 겉으로는 괴팍하고 쌀쌀맞은 ‘아웃사이더’지만, 그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한 겉껍질 속에는 그 누구보다 정의를 사랑하는 고귀한 본성을 간직하고 있는 남자가 바로 팡무다. 한마디로 멋진 녀석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무리 텍스트의 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레이미의 다른 소설이 기대되는 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용한 점쟁이의 점괘를 보는 것만큼이나 신비로운 프로파일링> |
심리 범죄에 강한 ‘프로파일링’
사건 현장을 기록한 단서들만 보고 용의자의 외모, 가정환경, 업무환경, 생활습관 등을 유추해내는 ‘프로파일링’은 용한 점쟁이의 점괘를 보는 것만큼이나 신비롭다. 하지만,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을 악의 길로 내모는 것은 그 사람의 타고난 기질보다는 강력한 상황의 힘과 그 상황의 힘을 연출하고 조장하는 시스템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나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유명한 사회심리학 실험인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PE: Stanford Prison Experiment) 등의 연구 결과들은 범죄가 일어나는 요인을 개인적 기질에서 찾아내려는 프로파일링의 한계를 명확히 말해준다. 사이코패스 등 정신병리학적 질병을 앓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개인적 기질을 파악하는데 능숙한 프로파일링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평범한 사람이 강력한 상황의 힘에 압도되어 저지른 범죄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프로파일링이 귀신같이 용의자를 추려내는 일도 있지만, 헛다리를 짚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가 볼 땐, 뉴스를 통해 심심치 않게 보는 감정의 폭발로 말미암은 우발적 범죄, 즉 살인이 개인의 분노나 원한을 분출하거나 탐욕을 만족시켜주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범죄가 아니라 살인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연쇄살인 같은 냉철한 범죄, 그리고 범죄 현장에 평범한 사람들과는 확실하게 구분되는 물적 • 심적 증거를 남겨놓는 정신병리학적인 요소가 깊숙이 개입한 범죄라야 팡무 같은 프로파일러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결국, 범죄를 상황적 요인보다 심인적 요인으로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때 프로파일링이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책 제목이 ‘심리죄’로 정해진 이유도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초라하지만, 그 끝은 장대하다
─ 좋게 말하면 ─ 읽기 쉬운 텍스트, 마지막으로 갈수록 고조되는 긴장감, 그리고 쓸쓸한 ‘아웃사이더’ 팡무를 내세워 범인과 심리전 • 두뇌전을 펼친다는 이야기 등 범죄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꽤 반가운 소설이다. 한마디로 평하자면 치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은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초중반까지 읽고 있었을 땐, 그냥 그렇고 그런 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압도적이었지만, 소설 막바지에 팡무와 범인이 펼치는 숨 막히는 클라이맥스가 나의 안일한 평을 한순간에 뒤집어버렸다. 고로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사실 모든 범죄 • 추리소설이 그러하겠지만) 스포일러가 있는 리뷰는 반드시 삼가야 한다. 내가 책 리뷰에 스포일러를 애써 자제하는 것도 (그렇다고 항상 자제력이 충분히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좀 그렇지 않았던가?) 같은 이유에서다. 난 책을 읽은 사람을 위해서 글을 쓰기보다는 읽을 사람을 위해 글을 쓰기 때문이다. 범죄 • 추리소설 리뷰에 ─ 이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설명 수준을 초과해 범인은 누구인지, 트릭은 무엇인지 등을 대놓고 밝히는 ─ 스포일러를 남발하는 것만큼 무책임한 짓은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팡무와 범인은 재능도 비슷하고, 관심거리도 비슷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같은 학문을 공부했으며 스승도 같다. 그런데 한 사람은 정의의 편에 서서 범죄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악의 편에 선 범죄를 저지르는 자가 되었다. 무엇이 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을까! 범인이 자신의 재능을 범죄에 쏟아붓게 한 강력한 상황적 힘이 작용했을까? 아니면 범인 그 자신의 욕망 때문일까? 『심리죄: 프로파일링』 등의 범죄소설을 읽을 때만이라도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보면 좋은 질문일 것 같아 마지막으로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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