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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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스탈린 | 그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Young Stalin (2007년)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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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스탈린 | 몬티피오리 | 진실은 그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이 사람이 돌 같은 내 심장을 녹여주었는데. 그녀가 죽었으니 인간에 대한 내 마지막 따뜻한 감정도 죽었어.” 그는 자기 가슴에 손을 얹었다 . “이곳이 너무나 황량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이 황량해.” (p369)

가체칠라제 신부는 스탈린이 독재하는 동안 그때 그 동행자를 죽여버릴 걸 하고 후회했지만, 당시에는 “그는 모두에게 감명을 주었다. 난 그를 좋아하기까지 했다. 그는 절제력이 있었고 진지했고 멋있었다. 심지어 내게 시를 읊어주기까지 했다.” (p271)

그는 정말 ‘사악’하기만 한 사람이었을까?

우린 스탈린이 (레닌 사후 펼쳐진)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고 나서 무자비하게 정적들을 숙청하며 권력을 다지고, 그럼으로써 냉혹한 독재자로 올라선 다음 최종적으로 완성된 ‘사악한 독재자’라는 이미지에 익숙하다. 비록 그의 공포 정치가 확실히 기억에 남을 만큼 경악할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여기엔 어떤 일의 발단을 집요하게 추적하거나, 그런 결과를 낳은 근본적인 원인을 깊이 천착하는 일에 무한한 지루함을 느끼는, 그래서 간단하고 빠르게 결과만을 보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것에 익숙해진 좀비처럼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는 우리의 非사고적 일상도 한 몫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구태여 우리의 빈약한 정신적 삶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마다 통계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 책에서는) 대략 2,000만에서 2,500만 명의 죽음에 당당히 책임이 있는 ‘사악한 독재자’ 스탈린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식으로 완성됐는가 하는 의문이다. 또한, 그의 등장은 역사적 필연이었을까? 아니면 시대의 흐름이자 시대의 요구였을까? 하는 의구심 역시 뒤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질문에 유용할만한 대답을 짜내고자 하는 호기심 충만한 독자라면 그가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스탈린과 어떻게든 관련이 있었던 실존 인물들의 (그들의 생애에서도,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마지막이 될 듯한 진술과 스탈린의 성장 과정에 대한 진짜 기록이 담긴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Simon Sebeg Montefiore)의 『젊은 스탈린(Young Stalin)』이야말로 최선이자 (한국어만 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는) 유일한 선택이다.

Stalin: The Court of the Red Tsar by Simon Sebeg Montefiore
<레닌, 스탈린, 칼리닌, 1919년, ? (Retouched by AM (talk)) / Public domain>

잃어버린 연결고리들을 메운 문학적 소양

권력에 오른 사람이 자신의 명성에 흠집이 될, 혹은 반대자들에게 약점으로 잡힐 만한 오점으로 얼룩진 과거를 조작하거나 말살시켜버리는 파렴치한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굳이 예를 들면 문화대혁명 초기 자신의 과거 중 연애와 관련된 사항뿐 아니라 정치적 기록도 걱정한 장칭(江青)은 배우로 활동했던 상하이 시절과 관련된 자료를 집요하게 추적해 몽땅 태워버렸다), 그리고 스탈린 자신의 과거에 대한 콤플렉스와 그의 편집광적인 기질이 스탈린의 성장 과정을 진실하게 밝혀줄 만한 꽤 많은 자료에 끼친 악영향을 고려하면, 스탈린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몬티피오리는 스탈린만큼이나 강한 의지와 집요함으로 10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한 끝에 『젊은 스탈린』을 완성했다. 이 자리를 빌려 그의 존경할만한 학구적 능력과 그 성실함에 손바닥 발바닥에 불꽃이 튀기도록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비록 10년에 걸친 자료 수집이라 해도 이 책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저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발생한 일이었다. 자신의 인생 경험이 연구에 별 보탬이 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둘째치고, 무심한 세월이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의 기억이 띄엄띄엄 회상하는 과거를 경청하는 일은 말더듬증 같은 학습 장애나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말을 받아적는 것만큼이나 큰 인내심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스탈린 자신의 노력으로 훼손되고 손실된 자료까지 더해지면, 베일에 싸인 스탈린의 성장 과정을 밝혀낸다는 것은 완성된 그림을 알지 못한 채 엎질러진 직소 퍼즐 조각만을 만지작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무지하게 난감한 상황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조각만이라도 모두 모여있으면 다행이지만, 행방은 둘째치고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조각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연구는 결실을 보았고 책은 완성되었다. 그것은 유실된 조각들이 조롱하듯 남겨놓은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것 같았던 조각판 위의 빈 곳을 문학적 소양으로 매끄럽게 메웠기에 가능했다.

한 사람의 전기는 충분히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할지라도 단순하게 자료만 나열한다고 (그렇다면 그것은 그저 연보일 뿐이다) 해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무미건조하게 시체처럼 죽어 나자빠져 있는 자료들을 한데 엮은 다음 생명력을 불어넣어 누군가가 흥미진진하게 읽어볼 만한 한 권의 책으로, 즉 사실들을 그저 나열한 연대기에서 흡입력 있는 문학적인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전기 작가의 소임이라고 한다면, 몬티피오리는 스탈린의 성장 과정을 사실과 기록에 충실하게,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런저런 이유들로 발생한 단편적 사실들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들을 문학적 소양으로 매끄럽게 이어붙였다는 점에서 훌륭하게 소임을 다했다.

다만, 이 책은 몬티피오리도 밝혔듯이 스탈린의 생애에서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 군사, 국제관계, 사적 영역의 모든 측면을 담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탈린의 성장 과정에 대한 진짜 기록을 밝히면서 그의 영향권 속에 있었던 겉으로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은 정치적 • 사적 영역에 집중한 책이다. 그렇게 장단점이 명확한 책이기에 깊이는 있을망정 숲 전체를 보는 통찰력이나 통합적 조명은 조금 아쉬울 수도 있다. 이 부족한 부분은 스탈린 생애의 공적 삶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흔적이 역력한 로버트 서비스(Robert Service)의 스탈린 전기로 메울 수 있다(사실 한국에서 스탈린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두 작가의 책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올랜도 파이지스(Orlando Figes)의 『속삭이는 사회(The Whisperers)』는 스탈린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사적인 삶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스럽게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에덴동산의 사과처럼 강렬한 유혹을 발산하는 독기

이제 책에 대한 칭찬은 그만하고, 이 책이 만남을 주선해 준 젊은 스탈린에 대해 몇 마디 해볼까 한다. 사실 젊은 스탈린은 그의 사후 완성된 ‘사악한 독재자’라는 단순 명확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복잡한 사람이다. 복잡하다는 말은 그냥 ‘사악하다’라는 다소 세련되지 못한 평가가 부당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나름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뜻이다. 주근깨와 천연두 후유증으로 남은 얽은 자국, 그리고 몇 번의 사고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약간 절룩이는 다리와 뻣뻣한 짝짝이 왼팔이라는 그의 특이한 외모는 제쳐놓고 (사실 스탈린은 자신에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평생 짊어지고 살았지만, 스탈린의 화려한(?) 여성 편력을 보면 그의 그런 외모가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서는 콤플렉스로 작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성격만 놓고 봐도 그는 분명히 특출난 사람이었다. 산과 하늘에 대해서는 시적인 열정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사람에 대한 연민은 거의 없었던 스탈린은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하고 잔악무도한 짓거리를 서슴없이 행했다. 이처럼 지독하고 잔인한 면이 있었음에도, 그가 권력을 잡기 전부터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상당했다. 젊은 스탈린은 이렇다 할 명성도, 권력도, 돈도 없었음에도 혁명 활동을 처음 시작한 그루지야에서 이미 마피아 같은 무장 강도단을 이끌 정도로 충성스러운 추종자와 지지들을 모을 수 있었다. 스탈린은 전 세계 언론 머리기사로 보도될 정도의 은행 강도에 성공함으로써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 데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조직하고 선동하여 과감하게 행동으로 나서게 하는 일에도 특출난 수완이 있음을 매우 거친 방법으로 증명했다. 위험천만한 상황도 무릅쓰고 때론 목숨까지 걸고 젊은 스탈린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비록 복잡한 인물이었을지라도 한편으로는 현재의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스탈린의 무엇이 주변 사람들을 회오리바람처럼 빨아들이게 하였을까. 스탈린의 무엇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도 매혹적이었을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와 가까웠던 사람들 다수가 훗날 공포 시대에 닥칠 재앙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을 보면 그것은 치명적인 독기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금지된 과일임에도 따먹었을 수밖에 없었던 사과처럼 강렬한 유혹을 발산하는 독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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